‘증세’에 초점 맞춘 李정부 세제 개편안
글로벌 IB “韓 비중 줄여라”…증시 찬물
글로벌 IB “韓 비중 줄여라”…증시 찬물
‘진보정부에서는 세금이 오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공식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이재명정부가 취임 초기부터 법인세 인상,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세제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시장이 시끌시끌하다.
가뜩이나 중국발 저가 공세에 미국 관세 폭탄 등 통상 전쟁으로 경영난에 내몰린 기업들은 급증한 법인세 부담까지 감당해야 할 처지다.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 확대, 배당소득 분리과세 기준 강화로 코스피 지수가 급락하자, 개미투자자들은 성토를 쏟아내는 중이다. 씨티은행, JP모건 등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급등세를 타던 국내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정부의 세제 개편안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부동산 시장도 살얼음판이다. 정부가 머지않아 세수 확보를 위해 주택 보유세, 양도세율을 높일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정부가 처음으로 내놓은 세제 개편안은 철저히 ‘증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인세, 증권거래세를 올리고 주식 매각 차익에 양도세를 물리는 대주주 기준 보유액을 대폭 낮춰 과세 대상을 늘리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31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2025년 세제 개편안’을 확정했다. 2022년 이후 윤석열정부가 시행한 감세 정책을 3년 만에 원점으로 되돌렸다는 평가다.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단 법인세율부터 인상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법인세율 과세표준 4개 구간의 세율을 각각 1%포인트 올린다. 과세표준 3000억원을 초과할 경우 적용하는 법인세 최고세율은 24%에서 25%로 높아졌다. 과세표준 2억원 이하는 10%,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는 20%, 200억원 초과~3000억원 이하는 22%로 오른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이명박정부 당시 25%에서 22%로 인하된 뒤 문재인정부 시절 다시 25%로 올라갔다. 윤석열정부는 2022년 세제 개편안에서 법인세율을 1%포인트 인하했는데 3년 만에 원상 복귀됐다. 정부는 금융소득 세제도 대폭 손질했다.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현행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증권거래세율도 0.15%에서 0.2%로 높인다.
이재명정부가 대대적인 세제 개편에 나서면서 논란이 뜨겁다. 당장 기업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무늬만 분리과세’ 배당소득세 논란
기획재정부는 이번 세제 개편안으로 향후 5년간 세수가 35조6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법인세(18조5000억원)와 증권거래세(11조5000억원) 수입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덕분이다. 늘어나는 세 부담의 절반가량인 16조8000억원을 대기업이 짊어진다. 중소기업 세 부담도 6조5000억원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기업이 전체 증세분의 3분의 2를 책임진다는 의미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 리스크로 기업 경영 부담이 커졌는데, 자국 기업을 보호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법인세율을 올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개미투자자 불만도 극에 달했다.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 확대로 주가가 급락한 탓이다. 세제 개편안 발표 다음 날인 8월 1일 코스피는 3.88%(126.03포인트) 폭락했다. 지난 4월 7일 이후 4개월 만에 최대 낙폭이었다. 양도세 납부 대상자가 급증해 국내 증시를 떠나는 큰손이 늘어나면 주가 하락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개미투자자들이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올린 ‘대주주 양도소득세 하향 반대 청원’은 게시된 후 8월 6일 기준 14만명 이상 동의를 받았다. 청원인은 “대주주 양도세를 회피하기 위한 물량이 연말마다 쏟아지면 코스피 지수는 미국처럼 우상향할 수 없다”며 “국장(국내 증시)에서 미국과 똑같은 세금을 내게 하면 누가 국장에 투자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증권거래세 인상을 두고서도 시끌시끌하다. 증권거래세는 수익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거래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증권거래세 인상으로 거래량이 감소해 주가 하락 압력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논란이 커지면서 외국계 IB들도 일제히 정부 세제 개편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씨티은행은 “한국의 세제 개편안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려던 정부의 그동안 노력과 180도 대치되는 내용”이라며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이 최근 코스피지수 상승을 견인해온 만큼 이번 개편안이 지수 추가 하락을 부추길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콩계 IB인 CLSA도 “실망스러운 정책 때문에 금융·지주사 관련주를 중심으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두고서도 말이 많다. 정부 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고배당 기업에 투자해 얻은 배당소득은 6~45%의 소득세 기본 세율로 과세하는 기존 과세 대상에서 제외돼 14~35% 저율로 분리과세된다. 배당·이자 등 금융 소득이 연 2000만원 이하인 투자자는 종전대로 14% 저율 과세하고, 2000만원 초과 3억원 이하 투자자는 20%, 3억원 초과 투자자는 35%의 세율이 적용된다.
정부는 고배당 기업 기준을 배당 성향(배당금 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비율)이 40% 이상이거나, 배당 성향이 25% 이상이면서 직전 3년 평균보다 5% 이상 현금 배당이 늘어난 기업으로 정했다. 하지만 분리과세 요건이 워낙 까다로워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국내 간판 기업 투자자들은 대부분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대상 기업이 전체 상장사의 1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대선 이후 추진되던 주가 우호 정책과 달리 증시에 비우호적인 증세안이다. 정부의 주가 부양 정책에 의구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 역시 “상장사 상당수가 배당 성향 25% 이상 등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주요 상장사를 배제하는 개편안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라고 꼬집었다.
인터뷰 |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中企 법인세 부담 줄이는 노력 계속할 것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획재정부 2차관을 지낸 조세·예산 분야 전문가다. 당내 조세정상화특별위원회 소속 위원이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 의원을 만나, 정부 세제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中企 법인세 부담 줄이는 노력 계속할 것
윤관식 기자 |
Q. 정부 세제 개편안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A. 이번 개편안은 무너진 세수 기반을 복원하려는 조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법인세 인상 복원이 기업 전반에 부담을 주는 가운데,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버틸 여력이 없다. 이 때문에 과세표준 200억원 이하 기업에는 세율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법인세 부담이 증가하는 중소기업은 전체 99만개 중 320개에 불과해 대부분 중소기업은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Q.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과 관련해 논란이 뜨겁다.
A. 이번 정부안은 고액 배당자에 혜택이 집중되는 구조다. 배당소득 2000만원 이하인 일반 투자자는 현행과 같게 14% 세율을 유지하지만, 고액 배당자는 최고 45%에서 35%로 낮춰졌다. 다만 형평성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일반 투자자도 실질적인 감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분리과세 세율을 9%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했다. 또한 당 내에서 배당 성향 35% 이상 기업에 혜택을 주자는 의견이 나오지만, 배당 성향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 특성과 구조적 제약을 고려한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삼성전자, 현대차처럼 설비투자·연구개발(R&D)에 집중해야 하는 기업은 고배당이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Q.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을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개선 방안은.
A. 정부안의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은 종목당 10억원 이상 보유자에게 대주주 요건을 적용한다. 이는 연말마다 과세 회피를 위한 매도가 반복돼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과세 기준 종목당 보유액이 아닌 총주식 보유액으로 바꿔 합리적 기준을 책정하자고 제안했으며, 정부도 실무 검토에 들어갔다. 현재 코스피 기준 종목당 10억~50억원 사이 주식 보유자는 약 1만1000명이고, 이들의 평균 보유액은 약 19억원 수준이다. 과세 기준 설정 시, 어느 수준부터 고액 보유자로 판단할지 보다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Q. 코스피 5000 달성을 위한 세제 정책 방향은.
A. 핵심은 장기 투자 유인과 자본 시장 신뢰 회복이다. 배당을 확대하는 기업에 실질적인 세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양도세와 증권거래세를 합리적으로 정비해 과세 균형을 잡아야 한다. 동시에 상법 개정, 주주권 강화, 불공정거래 근절 등 제도 개혁도 병행해야 한다. 부동산 규제 강화로 자산이 주식 시장으로 이동할 여건은 마련됐다. 코스피 5000 달성은 국민이 신뢰하는 시장, 이익을 공유하는 기업 생태계가 만들어질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다. 조동현 기자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2호 (2025.08.13~08.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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