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이 진행된 7월3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2010년 보편적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한국 사회가 걸어가야 할 암묵적 합의로 자리 잡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적어도 선거 국면에서는 보수정당도 이 합의를 부정하지는 못했다. 물론 암묵적 합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약자 복지’라는 탈을 쓰고 공적 복지의 축소를 시도한 윤석열의 등장과 함께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개혁적인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보편주의는 여전히 한국 사회가 가야 할 길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보편적 돌봄과 소득 보장이 제조업 중심인 대기업 집단이 숙련 노동자의 고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자동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수요를 해외 시장에 의존하는 한국의 성장 방식과 양립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돌봄에 대한 과감한 재정지출을 결심하고 전담 부처를 만들고 제도를 개혁하면, 한국이 돌봄 중심의 보편적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소득 보장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보편적 복지의 실현이 성장 방식과 무관한 것처럼.
물론 가능할 수도 있다. 대기업, 제조업, 자동화, 수출 중심의 성장이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위험을 완화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지출을 늘리면 된다. 문재인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지출을 매년 거의 1%포인트씩 늘렸다. 덕분에 시장 소득으로 측정한 소득 불평등과 빈곤율은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처분가능소득으로 측정한 불평등과 빈곤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문제는 복지지출을 계속 늘릴 수 있겠냐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성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전략인 것 같다. 한계에 직면한 대기업 집단, 제조업, 자동화, 수출이라는 지난 30년간의 성장방식에 더해 인공지능의 경쟁력을 높여 경쟁력과 성장률을 제고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부가가치를 사용해 사회·경제적 위험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제조업만 특별하지 않다면, 설령 인공지능을 활용해 생산성과 품질을 제고한다고 해도, 제조업의 경쟁력은 가격 경쟁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 제품은 대부분 대체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준의 제품 가격을 유지해야 하고, 이는 생산 비용의 통제를 수반한다. 더욱이 한국 제조업은 여전히 고부가가치의 핵심 소재, 부품, 장비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현재와 같은 성장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는 부가가치의 총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비용 통제를 위해서는 임금을 조정하고, 기업의 사회보험료 부담을 포함한 조세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핵심 노동자의 생활 비용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해야 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돌봄과 대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광범위한 저임금 일자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제조업 역량을 강화하는 것만으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보편적 복지의 실현도 쉽지 않다. 실제로 고품질 제조업의 수출에 기반을 둔 독일 노동시장이 괜찮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로 나뉘고 복지 수급자가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수급자로 나뉘는 노동시장과 복지의 이중구조를 막지 못했던 이유다.
제조업과 보편적 복지국가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애플은 제품 부문의 총이익률이 30~40%인 데 반해, 서비스 부문은 60%가 넘는다(2019년). 반면 삼성전자는 전체 이익의 90% 이상을 제품에서 얻는다. 서비스 부문의 매출·이익은 모두 미미하고, 경기 변동에 따라 영업이익이 크게 출렁인다. 2007년 애플보다도 컸던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2025년 애플의 17분의 1로 쪼그라든 이유 중 하나이다.
양질의 돌봄과 적정한 소득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꿈꾼다면, 이를 뒷받침할 성장 방식이 필요하다. 지난 30년간 놀라운 성장에도 한국 사회가 사회·경제적 위험을 완화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첨단 제조 역량을 고품질 서비스로 연결해 고부가가치를 만드는 산업구조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적 방식으로 고품질 제조업과 서비스업, 수출과 내수가 균형적인 성장 방식을 찾아야 한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구 선진국들이 걸어간 길도 처음엔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었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