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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기업 ‘태광산업’은 왜 교환사채를 발행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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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기업 ‘태광산업’은 왜 교환사채를 발행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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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은 현금성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에도 교환사채를 발행하려고 시도해 자사주 소각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 중구에 있는 태광산업 본사. 연합뉴스

태광산업은 현금성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에도 교환사채를 발행하려고 시도해 자사주 소각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 중구에 있는 태광산업 본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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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력이 65년이나 되는 태광산업은 섬유나 아크릴, 페트병의 기초원료로 쓰이는 석유화학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 한때 티브로드(T-broad)라는 케이블방송사도 운영했는데, 2020년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와 합병되며 지분만 보유했다. 그리고 2025년 5월에는 갖고 있던 주식 모두를 SK텔레콤에 7776억원에 양도하면서 완전히 손을 뗐다.



섬유와 케이블방송이 사양산업이라 평가받지만, 그래도 태광산업은 한때 최전성기를 누렸기에 재무구조가 무척 좋은 편이다. 2025년 1분기 말 현재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만 5229억원이다. 은행에 예치한 예적금인 단기금융상품은 1892억원, 주식과 채권으로 이뤄진 공정가치금융자산은 8141억원이다.



이 외에 보유한 투자부동산의 장부가액이 2259억원인데 회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공정가치가 1조274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만약 이 자산들을 모두 매각해 현금화한다면 손에 쥐는 돈은 총 2조5천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5월에 받은 주식 매각대금 7776억원까지 합치면 현금화 가능한 자산은 3조3천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갚아야 하는 차입금 잔액은 877억원에 불과하다.





시장의 차가운 반응





이렇게 재무구조가 좋은 회사가 갑자기 6월 말에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3186억원을 조달한다고 공시했다. 회사는 기존 사업의 업황 악화로 신성장 동력이 필요해 화장품, 에너지, 부동산 관련 기업들을 인수하고 설립하는 데 1조5천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신사업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교환사채를 발행한다는 공시가 나온 다음날 주가가 11% 넘게 급락해버렸다. 일반사채를 발행하면 이 정도까지 주가가 빠지지는 않을 텐데 교환사채를 발행하겠다고 하니 시장 반응이 매우 좋지 않은 것이다.



교환사채는 일반사채처럼 채권자에게 이자를 지급하고 만기 때 원금을 지급하는 형태지만 교환권이 부여됐기 때문에 교환사채라고 부른다. 채권자가 갖게 되는 교환권은 그 회사의 자사주와 교환할 수 있는 권리다. 태광산업은 채권자에게 1주당 117만2251원으로 주식을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주식시장에서 태광산업의 주가가 이 가격 위에서 형성된다면 채권자는 만기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회사에 교환권을 행사해 주식을 교환받고 주식시장에서 매도하면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참고로 이 교환사채의 이자율은 0%이다. 주식으로 돈을 벌 기회를 줬으니 채권 이자는 안 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회사의 주가가 올라가면 교환사채를 가진 채권자가 주식으로 바꿀 것이므로 유통되는 주식 수가 많아지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기존 주주들의 가치는 희석된다. 그리고 대량의 매물이 풀리면서 주가 변동성도 확대될 수 있다. 회사의 주가가 올라 채권자들이 교환사채 전액을 자사주로 교환한다면 자사주 27만1769주가 주식시장에 나올 수 있다. 이는 전체 발행주식 수 대비 24.41%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주주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데, 다행히 태광산업의 4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가처분 신청을 제기해 발행 절차는 중단됐다.



현금화 가능한 자산이 많아 신사업을 자체 자금으로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태광산업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이재명 대통령이 6월에 당선된 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이른바 활황장이 됐다. 특히 자사주를 많이 보유한 기업과 지주사들이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이 대통령이 민주당 경선 시절에 제시한 케이(K)-주식 활성화 정책이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공약집에 상법 개정안 재추진도 있지만 상장회사의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소각해 주주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게끔 제도화하겠다는 문구가 주주들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았다. 그래서 자사주를 많이 보유한 기업들과 지주사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 자사주 소각이 현실화된다면 주주 입장에서는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태광산업이 교환사채 발행 공시를 하기 전날의 시가총액은 1조2280억원이었다. 발행주식 수가 111만3400주이고 1주당 주가는 110만3천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만약 이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27만1769주를 교환사채 발행에 이용하지 않고 전량 소각한다는 공시를 했다면 발행주식 수는 84만1631주가 된다. 기업가치 1조2280억원이 변함없다는 가정에 따라 이 회사의 이론상 주가는 145만9167원이 된다.



이렇게 자사주 소각은 주가 상승의 큰 동력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애플 같은 기업은 매년 평균적으로 발행주식 수를 3%씩 없앤다. 이를 위해 100조원 넘는 돈을 들고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해 소각한다. 번 돈의 대부분을 주주가치 제고에 쓰는데 우리나라도 이제 이 길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해소할 수 있고 자본시장도 살아나 다시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만들 수 있다.





자사주 과감히 소각해야





그러나 일부 기업은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이번 태광산업이 대표적 사례다. 과감하게 자사주를 소각하고 보유한 현금과 다른 방식의 자본조달 방법을 통해 신사업을 펼치면 좋았을 것이다. 비싼 돈 주고 산 자사주를 그냥 소각하기 아까워 현금화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기본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업의 인수, 합병, 분할 과정을 거치며 많은 자사주를 보유하게 된 지주사와 과거에 주가 부양을 위해 열심히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들이 최근에 주가 상승의 단맛을 봤다. 당장 손에 쥐고 있는 자사주를 매각해 현금화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주가 폭락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태광산업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았으면 좋겠다. 과감히 소각하는 결정이 결국은 기업가치를 더 끌어올리고 회사의 미래를 더 좋게 하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동흠 공인회계사·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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