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문기 기자] 애플(대표 팀 쿡)은 6일(현지시간) 6000억달러(약 800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투자를 내년부터 본격 집행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미국 제조 프로그램(AMP)’을 통해 애플워치·아이폰 커버글라스부터 차세대 칩 패키징, AI 서버, 희토류 자재까지 미국 내에서 완성하는 공급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은 이 계획을 통해 TSMC의 애리조나 파운드리 확대, 글로벌웨이퍼스 국산 웨이퍼 증산, 애플라이드 머티리얼즈 장비 및 암코의 패키지라인과 동기화 등 반도체 전 과정에 대한 미국 내 재구축 의지를 분명히 했다. 칩부터 서버, AI 데이터센터까지 제조망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눈에 띄는 투자는 텍사스 휴스턴에 짓는 25만 평 규모의 서버 공장이다. 이곳에서는 AI 처리용 프라이빗 서버가 생산될 예정이며, 애플 인텔리전스 기반 콘텐츠 연산과 생성형 AI 기능을 위한 인프라 공급의 핵심 거점이 될 전망이다.
또, 코닝 유리 커버, 희토류 자석, 고급 아날로그 칩까지, 부품 하나하나를 미국 내에서 생산하겠다는 메시지가 애플의 발표 곳곳에 담겨 있다. 이러한 행보는 단지 제조 회귀에 그치지 않고, 공급망에 대한 전략적 재편으로 읽힌다.
이는 미국 정부의 ‘미국 우선’ 경제 프로그램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애플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칩스법(CHIPS Act) 같은 인센티브와 정책 보호망 아래 AMP를 추진한다. 동시에 정치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기업 전략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주의적 제조 회귀’를 강조할 경우, 애플은 이미 그 기반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 가능성도 주목된다. 애플은 향후 4년간 미국에 2만 명을 직접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협력업체들까지 포함하면 수십만 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예상된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이 같은 미국 내 투자 확대 속에서, 관련 부품과 소재 시장의 경쟁 조건이 강화될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 벨류체인 균열에 韓 기민한 대응 요구돼
애플이 6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내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애플이 공개한 AMP 초기 파트너십 리스트에는 미국·대만·일본 중심의 기존 협력사들이 이름을 올렸지만, 한국 업체는 포함되지 않았다. 삼성은 오스틴(Austin) 팹의 신규 공정 적용 파트너로 언급됐지만, 이는 특정 공정 기술 협력에 한정돼 있다. LG이노텍, 삼성디스플레이, 한화, 두산 등 기존 공급사들이 참여하는 부품군은 아직 AMP의 직접 수혜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먼저 애플이 미국 내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 역량을 강화하는 데 있어 앰코 아리조나 공장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는 계획은, 향후 애플의 고성능 칩 공급망에서 국내 OSAT 업체들의 입지가 축소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한국 반도체 후공정 업체들이 애플과의 직접 협력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는 경쟁 구도 심화가 우려된다.
또한 애플이 TSMC의 아리조나 팹을 활용해 미국에서 직접 칩을 생산하고, 이를 근거리 앰코 공장에서 패키징하겠다는 전략은, 기존 한국·대만·중국에서 이루어지던 전통적인 아시아 중심 반도체 밸류체인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애플이 희토류 자재 공급망을 미국으로 옮기고 리사이클 라인을 캘리포니아에 설치하겠다는 발표는 희토류 정제 및 가공에서 일부 기여하고 있던 국내 소재 업체에도 간접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차량·모빌리티용 희토류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미국 내 자급률 제고가 가시화될 경우, 한국은 중장기적으로 희토류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반면, 애플이 미국 내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투자를 확대하며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은, 국내 AI 반도체 또는 서버용 PMIC, 전원공급장치(PSU), 열관리 기술을 보유한 일부 기업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미국 현지 조달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특화 부품군에 대해선 한국산 대체재의 공급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평가다.
애플의 이번 AMP 발표는 단순한 미국 내 생산 확대에 그치지 않고, 공급망의 근본적인 지리적 전환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미국 중심으로 산업 전반의 생산 거점을 재편하려는 흐름과 궤를 같이하며, 우리나라 ICT 업계도 이에 대응한 중장기적 전략 수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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