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 주식 거래 의혹을 받는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투표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익산갑)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타인 명의 계좌로 주식을 거래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이후 '코스피 5000 시대'를 목표로 내세운 상황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4선 중진 의원이 차명으로 주식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국민의힘은 곧바로 법사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경찰 고발에 나섰고, 정청래 민주당 대표도 긴급 진상조사를 당에 지시했다.
이 의원은 애초 이날 논란이 불거지자 입장문을 통해 "차명 거래를 한 사실은 결코 없다"며 강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밤늦게 페이스북을 통해 "저로 인한 기사들로 분노하고 불편하게 해 드린 점 깊이 사죄드립니다. 변명의 여지없이 제 잘못"이라며 민주당을 탈당하고 법사위원장직도 사임했다.
이 의원의 전격적인 한밤 탈당에 권향엽 민주당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오후 8시께 이 의원이 정 대표에게 전화로 '당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 자진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 대변인은 "(정 대표는 이 의원) 본인이 자진 탈당을 하면 더 이상 당내 조사나 징계 등을 할 수 없다"며 "의혹에 대한 진상은 경찰의 철저한 수사로 밝혀져야 한다고 전했다"고 덧붙였다.
의혹은 한 인터넷 매체가 촬영한 본회의장 사진에서 시작됐다. 5일 더팩트 보도에 따르면 이 의원은 전날 본회의장에서 휴대폰을 통해 주식을 거래했다. 공개된 사진에서 이 의원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 화면의 주가 상황을 주시했고, 특정 주식을 분할 거래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의원 본인 계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진에 따르면 이 의원은 보좌관인 차 모씨 계좌를 열어두고 있었다. 이에 대해 차씨는 "의원님은 주식 거래를 하지 않는다. 제가 주식 거래를 하는데, 의원님께 주식 거래에 관한 조언을 자주 얻는다"며 "어제 본회의장에 들어갈 때 본인 휴대폰으로 알고 들고 들어갔다. 거기에서 제 주식창을 잠시 열어본 것 같다"고 해명했다고 더팩트는 전했다.
이 의원은 단순히 주식창을 열어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법조계와 야당은 이 의원 행위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공직자윤리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봤다.
나아가 보좌관에게 강요했다는 형법상 직권남용죄, 세금 탈루 목적이라면 조세범처벌법 등 다양한 실정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공직윤리시스템에 공개된 재산공개 현황을 살펴보면 이 의원 본인은 물론 배우자 등 가족이 소유한 주식은 전무한 것으로 돼 있다. 해당 자료는 2024년 12월 말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다.
사진에 찍힌 계좌 속 주식 종목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 계좌엔 네이버 150주, 카카오페이 537주, LG CNS 420주 등 5일 종가 기준으로 총액 1억원에 가까운 주식이 담겨 있다. 모두 스테이블코인과 인공지능(AI) 관련주다.
이 의원은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장을 맡고 있다. 경제2분과엔 AI 정책을 다루는 태스크포스(TF)가 속해 있다. 지난 4일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가대표 AI 선발전을 통해 △네이버클라우드 △LG AI연구원 △NC AI △SK텔레콤 △업스테이지 등 5개 팀을 확정한 날이기도 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법사위엔 가상자산 관련 법안도 여러 건 계류 중이다. 스테이블코인 수혜주라고 볼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에 향후 직무 관련성, 내부자 정보 측면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일제히 총공세에 나섰다.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 의원은 지난해 10월에도 국정감사장에서 보좌관 명의로 주식 거래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보도된 바 있다. 상습범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이 의원을 즉시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금융실명법 등 실정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하겠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주당 정권은 법사위원장이 본회의 중 단타로 차명 주식을 거래해서 코스피 5000을 만들겠다고 한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가뜩이나 주식 양도세 기준을 놓고 개미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진 상황에서 돌발 악재가 발생하자 당황한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주식시장에서 불공정 거래를 엄단하겠다는 방침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한국거래소를 찾아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불법 수익은 환수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몇 배로 되돌려받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이재명 정부에선 불법 거래로 돈을 벌면 몇 배로 물어내야 한다는 걸 명확히 보이겠다"며 "벌금과 징역형을 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가 합동대응단을 꾸리며 불공정 거래에 대해 칼을 빼 들었다.
[전형민 기자 /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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