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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순한 맛 멜로로 다시 그린 윤심덕-김우진의 사랑…연극 ‘사의 찬미’

스포츠W 임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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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순한 맛 멜로로 다시 그린 윤심덕-김우진의 사랑…연극 ‘사의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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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가을]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프랑스 파리, 최린과 내연 관계를 이어가고 있던 나혜석은 남편에게 외도가 발각당하고 개인전을 열어주겠다고 약속받았던 최린에게도 버림받아 깊게 절망해 센강으로 몸을 던지려 한다. 하지만 마침 그 광경을 목격한 한 조선 여자에게 저지당하고, 나혜석은 로미라는 이름을 지닌 여자를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해 그림의 모델로 삼으며 그가 거쳐온 이야기를 듣는다.

같은 시점, 홍난파는 죽음에 대해 노래한 ‘사의 찬미’를 녹음한 후 김우진과 함께 대한해협에서 실종되어 버린 윤심덕의 소식을 들으며 씁쓸해한다. 그러던 중 은퇴를 앞둔 경성 경찰서의 요시다가 홍난파의 작업실 문을 두드리고, 윤심덕과 김우진이 지닌 흥미로운 이야기를 글로 쓰기 위해 수사를 핑계로 홍난파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낸다.



‘사의 찬미’는 1920년,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젊은이들의 사랑과 자유, 예술에 대한 열망을 그린 연극이다. 1990년 극단 실험극장의 창립 30주년 기념작으로 초연된 윤대성 작가의 동명 희곡을 기반으로 재해석해 다시 무대 위로 올려졌다.

한탄을 담은 아름다운 노래 한 곡을 남기고 관부연락선에서 사라져 버린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그와 같은 배에서 사라져 연인이라는 루머가 퍼진 극작가 김우진의 이야기는 많은 창작자로부터 재탄생된 바 있다. 이번 ‘사의 찬미’는 멜로 드라마스러운 감성과 윤심덕과 같은 시기를 살아간 또 다른 조선 여성, 나혜석을 새로 등장시켜 새로운 맛을 가미했다.

보편적으로 그려지는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는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벌어지는 예술가들의 사랑과 죽음이라는 점에서 그늘진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번 작품은 무게감을 한층 덜어냈다. 그들이 예술가로서 겪는 고통보다는 서로에게 빠지는 과정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중점적으로 그려 애틋한 감정이 대두되며, 다수 포함된 웃음 포인트로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준다.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진 만큼, 인물도 기존에 그려지던 캐릭터와는 결이 다르다. 우리가 떠올리는 모던한 이미지와는 달리 청순한 학생 차림으로 등장한 윤심덕에게서는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없고, 당차고 굳센 소녀의 인상이 강하다.



따라서 소위 말해 ‘혐관’ 로맨스를 펼치는 김우진과의 초반 감정선도 팽팽한 기싸움보다는 티격태격하는 로맨틱코미디에 가까워졌으며, 김우진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나서는 지고지순한 로맨스를 보인다. 삼각 로맨스의 한 축을 담당하는 홍난파와의 관계성도 언뜻 보면 특별하지 않은 친구 관계로 보일 정도로 옅어져 감정선이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혜석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조선에서 태어나 예술을 사랑했고, 자유롭게 살아가길 원한 윤심덕과 나혜석, 두 신여성은 공교롭게도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작품은 나혜석의 ‘자화상’ 속 인물의 얼굴과 골격이 서구적이라는 이유로 그림 속 인물이 나혜석 본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차용해 파리에서 그와 윤심덕이 만났다는 흥미로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운명처럼 교집합이 많은 이들은 극 중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나혜석의 입을 통해 극 중 또 다른 청자인 요시다와는 대비되는 시선을 제시하지만, 단순히 윤심덕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매개체로만 소비되고 끝난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100분간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극은 현시점 파리의 윤심덕과 나혜석, 경성의 홍난파와 요시다, 그리고 이들의 기억 속 과거, 총 세 시점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기존 희곡에는 존재하지 않던 윤심덕과 나혜석의 시점이 추가되어 현시점의 분량이 늘었기 때문에 윤심덕과 김우진이 직접 등장해 감정선을 표현하는 장면이 부족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적지 않은 장면이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윤심덕과 홍난파의 구전으로만 처리되고, 핵심적이라 여겨지는 장면을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탓에 장면 전환과 암전이 잦아 되려 몰입의 흐름을 끊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전체적인 작품의 방향은 딱딱하게 느껴지는 연극의 형식과 무거운 소재를 관객들이 보다 받아들이기 쉽게 하기 위한 것으로 느껴지지만, ‘사의 찬미’라는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고유의 무겁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해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한편 ‘사의 찬미’는 전소민, 서예화, 이충주, 윤시윤, 박윤희, 김태향, 양지원, 이예원, 이시강, 도지한, 박수야가 출연하고, 오는 1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저작권자ⓒ SWTV.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