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
구조조정 추적 사이트인 레이오프스(Layoffs)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1만 명을 해고한데 이어 금년에도 7월까지 전체 인력의 8%에 달하는 1만 5000명을 내보냈다. 메타도 2022년 말부터 금년 초까지 전체 인력의 30%가 넘는 2만 5000명을 정리했다. 최근 CNBC는 시가총액이 사상 최고를 경신하고 실적이 견조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대대적인 감원을 하는 이유는 AI의 영향이지만 이를 숨기려 한다고 보도했다. AI 도입에 따른 인력 감축이라는 표현 대신 주로 '조직개편, 구조조정, 최적화'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회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직원들의 반발을 피하면서 AI 도입을 계속 추진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인력 감축이 집중되는 부문은 콘텐츠, 운영, 고객 서비스, 인사 등 주로 AI 역량이 강화되는 분야와 일치한다.
하버드대 크리스티나 인지(Christina Inge) 교수는 AI의 영향을 숨기려는 기업의 의도는 "전략적 침묵"이라며, AI로 인한 감원이라고 명확히 밝히면 직원들과 정부의 반발과 규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들이 솔직하게 AI 도입으로 감원을 단행한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계획이 철회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AI를 표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향후 AI 전환(AI Transformation, AX)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경우에도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있다는 것이다. AI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AI가 업무의 대부분을 담당할 수 있어도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애써 숨기고 있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AI로 인한 일자리의 변화 속도는 빨라질 전망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5년 미래 일자리 보고서(Future of Jobs Report 2025)'에 따르면, AI의 도입으로 전 세계 41%의 기업이 향후 5년 안에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노동시장에서 AI의 역할이 명확해지고, 기업들도 투명하게 AI의 영향을 공개하는 시점이 온다는 분석이다. 결국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 순응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AI가 개인 일상과 기업 실무를 장악해 가고 있는 중심에는 생성형 AI에서 진일보한 'AI 에이전트(agentic AI)'가 있다. AI 에이전트란 인간의 개입 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복잡한 업무를 자동화하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 도구를 활용해 실제 행동하는 기술이다. AI 에이전트는 스스로 분석하여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디지털 인력'으로 비즈니스 세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금년 CES 기조연설에서 "AI의 발달은 이미지와 단어, 소리를 이해하는 '인식형 AI(perception AI)'와 함께 시작됐으며, 뒤이어 텍스트와 이미지, 소리를 만들어 내는 '생성형 AI(generative AI)'가 등장했고, 이제는 처리와 추론, 계획과 행동이 가능한 AI 에이전트, '물리적 AI(physical AI)'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AI 에이전트가 직원과 함께 일하는 '디지털 인력'이 되어 업무를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또한 황은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파리'에서 '전 세계 어디서든 AI 에이전트를 실행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며, 생성형 AI에서 AI 에이전트 시대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7월 말 펴낸 '기술 트렌드 전망 2025(McKinsey Technology Trends Outlook 2025)'에서, 세계 경제를 견인하는 신기술 중 AI 에이전트에 대한 투자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글로벌 AI 에이전트 시장은 연평균 46%로 성장해 2030년 500억 달러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AI 에이전트는 기존의 생성형 AI와 같이 사용자의 입력에 반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행동을 하는 '자율성'이 있으며, 메모리를 활용하여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을 저장하고 학습하여 맞춤형 응답이 가능하다. 웹 브라우저 검색 등 다양한 외부 도구를 활용하고, 실시간 정보를 수집해 작업을 수행한다.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자율적 반복을 실행하며,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선호도 및 행동 패턴을 학습하여 마치 뛰어난 개인 비서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 클라우데라(Cloudera)가 한국을 포함한 14개국 IT 리더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기업용 AI 에이전트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냈다. 응답자의 96%가 향후 1년 내에 AI 에이전트 활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이제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에이전트'라는 형태로 진화하며 사회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금융 분야에서는 이상 거래 탐지, 리스크 평가, 투자 자문 지원에 주로 활용되고 있다. 실시간으로 의심 거래를 감지하고, 리스크를 평가하며, 맞춤형 투자 조언을 제공한다. 제조업에서는 프로세스 자동화, 공급망 최적화, 품질 관리에 적용되고 있다. 생산 라인을 실시간 모니터링해 결함 발생을 빠르게 발견하고 물류 경로 재조정으로 지연을 방지하며 업무 자동화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진료 예약 관리, 진단 지원, 의료 기록 처리에 쓰이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진료 일정 조율, 전자 의무기록(EMR) 탐색, 영상 진단 지원 등을 통해 의료진의 부담을 줄인다. 통신 분야는 고객 지원 챗봇, 고객 경험, 보안 모니터링에 주로 활용되고 있는데, AI 에이전트는 서비스 이슈를 즉시 해결하고, 고객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에 빠진 고객을 감지하고, 네트워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는 금융 및 보험 분야의 이상 거래 탐지, 제조업의 불량 감지, 소매 및 이커머스는 수요 예측, 헬스케어 분야는 환자 모니터링, 통신업계는 고객 지원에 AI 에이전트를 가장 많이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는 프라이버시와 보안의 문제다. AI 에이전트가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개인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는 프라이버시 침해와 데이터 오용의 위험을 내포한다. 따라서 엄격한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와 투명한 AI 윤리 지침이 필수적이다. 둘째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의 심화 가능성이다.
OECD의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 능력의 차이로 인해 빈곤층과 부유층 간의 소득 격차가 향후 10년간 최대 60%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세 번째는 일자리 변화에 대한 대비다. 직장인의 재교육과 직무 전환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네 번째는 AI 의존성과 인간 자율성의 균형이다. AI 에이전트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비판적 사고, 창의성, 판단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AI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핵심적인 의사결정과 가치 판단은 반드시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맥락적 판단, 윤리적 결정, 창의적 사고나 전략적 방향 설정 등은 아직도 인간의 몫으로 남아있다는 평가다. 이제는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인간이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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