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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허웅, 동생 허훈 제치고 우승... 오늘만큼은 ‘형만한 아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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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웅(31)은 두각을 드러내는 게 늘 늦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선 졸업반이 돼서야 주전 자리를 꿰찼다. 원주 동부(현 DB)에서 프로 데뷔한 첫 해에도 벤치에서 출전하다가 2년차에 주전 자리를 따냈다. 속도가 빠르지 않은 데다 패스도 신통치 않았다. 코트를 호령하던 아버지 허재와 다르다는 이야기가 늘 뒤따랐다.

아버지와 닮았다는 평을 듣는 쪽은 동생 허훈(29)이었다. 허훈은 근육질의 몸과 통통 튀는 탄력을 지녔다. 허재도 선수 시절 우람한 팔근육으로 유명했다. 풀타임을 거뜬히 소화하는 체력도 판박이였다. 고교와 대학 시절 승승장구했고, 프로 무대에 서자마자 스타가 됐다는 점도 같았다.

그럼에도 허웅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게 있었다. 담대한 심장이었다. 허웅은 벤치에서 나오던 신인 시절에도 종종 동료 선배들을 전부 코트 한쪽으로 가라고 지시한 뒤 상대 수비수와 일대일로 승부했다. 그만큼 배짱이 두둑했다. 지금도 경기 마지막 슛은 늘 허웅의 몫이다. 지독한 훈련도 아버지를 닮았다. 허재는 타고난 재능과 함께 부던한 노력으로도 유명했다. 허웅 역시 소문날 정도로 지독하게 연습한 끝에 기량을 향상시켰다. 데뷔 7년차였던 2021-2022시즌부터는 리그 한 경기 평균 15점 이상을 꼬박꼬박 넣는 선수로 성장했다.

허웅은 벤치 멤버였던 용산고 1학년 때 전국체전 정상에 오른 뒤로 주요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 대학을 연세대로 택한 것도 우승을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대학 시절 내내 정상에 오른 적이 없었다. 프로도 마찬가지였다. 2022-2023시즌 전주 KCC(현 부산 KCC)로 팀을 옮기면서 했던 말도 “우승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만큼 늘 우승에 목이 말라있었다.

KCC는 올 시즌 한국농구연맹(KBL) 정규리그를 5위라는 찜찜한 성적으로 마쳤지만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왔다. 허웅이 한 경기 평균 16.9점(3점슛 44%)을 기록하는 등 고비때마다 팀을 구해냈던 덕분이었다. 그리고 우승에 이르는 마지막 관문에서 운명처럼 허훈의 수원 KT를 만났다. 형이지만 실력은 동생보다 한 수 아래라고 늘 평가받아 왔던 허웅이었다. 허훈은 만만찮았다. 허훈도 프로에서 우승한 적이 없었던만큼 간절했다. 감기 기운을 안고 경기 전 링거 주사를 맞으면서도 2~5차전에서 전부 40분을 꽉 채워서 뛰었다. 5경기 평균 26.6점으로 KCC 내외곽을 폭격했다. 이에 맞불을 놓을 수 있는 건 평소 득점력으로 인정 받던 허웅밖에 없었다.

하지만 허웅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기를 풀었다. 데뷔 초부터 약점으로 지적받던 패스였다. 허웅은 꾸준히 향상시킨 넓은 시야로 라건아, 최준용, 송교창 등을 살려냈다. 4차전에선 본인 플레이오프 최다 기록인 어시스트 10개를 뿌렸다. 허웅을 꽁꽁 묶을 수비를 준비한 KT는 그의 패스를 바라봐야만 했다. 때때로 나오는 번뜩이는 득점도 빛났다. 허웅은 챔프전 5경기 동안 경기당 18.8점 5.4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어시스트가 본인 통산 기록(3.2개) 보다 훨씬 많았다. 덕분에 KCC는 1, 3, 4차전을 잡아낸 데 이어 5일 수원KT아레나에서 열린 5차전에서 88대70으로 이기면서 우승했다.

허웅은 사실상 승리를 확정한 경기 종료 1분 전부터 코트 바닥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활약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KBL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 트로피를 받을 때도 눈시울은 여전히 붉었다. 허웅은 “우승이라는 것을 위해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 그동안 했던 노력과 함께한 동료들이 생각나서 너무 행복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MVP 득표수는 허웅(31표), 라건아(27표), 허훈(21표) 순이었다. 준우승팀인데도 많은 득표를 한 동생 허훈에게는 “훈이가 밤 내내 잠을 못자고 아파서 링거를 맞으러 갔다”며 “그걸 보니까 오히려 형으로서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게 됐다. 너무 고맙다”고 했다.

KCC는 올 시즌을 앞두고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그리고 이날 1997년 프로축구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프로농구 기아 이후 27년만에 부산에 프로리그 우승을 안겨준 팀이 됐다. ‘야구의 도시’라 불리던 부산인데도 KCC 홈 경기 3·4차전에 전부 1만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설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다. KCC 팀 역사상으로도 2007-2008시즌 이후 16년만에 우승이다. 이날 경기장은 수원 홈인데도 KCC를 응원하러 온 팬이 관중석 절반 가량을 메웠다. KCC 우승이 확정되자 홈 경기장 만큼이나 큰 환호성이 나왔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우승인만큼 한동안 소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수원=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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