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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단독] 체육계 ‘무관용 원칙’ 말뿐이었다…폭력·성폭력 ‘영구제명’ 9.7%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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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 신고·처리 현황 입수

5년간 중징계 17%…무관용 말뿐

성폭력 뒤 외국감독으로 복귀도

가해자 인맥 얽힌 종목단체가 심의

“권한 강한 독립적 심의기구 급선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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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체육계 폭력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거듭 밝혀왔지만, 정작 가해자 영구제명 비율은 9.7%에 그쳤다. 원칙은 허울뿐이었다. ▶관련기사 4·5면

대한체육회는 2008년 2월 ‘성폭력 지도자 영구제명’을 명시한 스포츠 성폭력 근절 대책을 내놨다. 2007년 여자프로농구 박아무개 감독의 강간 미수 사건 뒤에 마련한 방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3년 일체의 폭력 행위에 대해서도 무관용 원칙 적용을 밝혔지만,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를 통해 최근 5년 동안 접수된 폭력·성폭력 사건을 보면, 가해자가 영구제명을 받은 비율은 9.7%뿐이다. 오히려 국내에서 영구제명됐지만 중국에서 팀을 맡은 박아무개 감독처럼 지도자로 복귀하는 경우도 적잖다.

13일 <한겨레>가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입수한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신고·처리 현황’을 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전체 신고 건수 113건 가운데 징계 처분을 받은 비율은 65%에 그쳤다. 이 가운데 ‘영구제명’이나 ‘자격정지 5년 이상’ 등 중징계를 받은 건 각각 11건(9.7%), 8건(7.1%)에 불과했다. 절반가량인 54건(47.8%)은 ‘경고·견책·근신’ 등 경징계에 머물렀다. 4건(3.5%)은 ‘무혐의’나 ‘징계 없음’으로 끝났다. 성폭력 사건으로 한정해도 전체 27건 가운데 ‘영구제명’은 9건(33.3%)뿐이었다.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배경엔 신고와 조사 절차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스포츠인권센터는 폭력·성폭력 신고를 받고 상담·교육을 하지만, 사건을 조사할 권한은 없다. 센터는 신고가 접수된 뒤 사건이 일어난 장소, 피해자와 가해자의 소속 등을 토대로 1차 심의기관에 사건을 넘긴다. 1차 심의기관은 대한빙상경기연맹, 대한축구협회 등 종목별 단체가 대부분이다. 가해자가 소속된 연맹 등이 조사를 맡다 보니 학연·지연 등으로 연결된 폐쇄적인 카르텔로 처벌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꾸준히 ‘독립심의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돼온 이유다. 주종미 호서대 교수(스포츠과학부)는 “각 연맹들이 사건의 노출부터 꺼리고, 지도자들은 오래 ‘형님, 아우’ 하며 알아온 사이라 (제대로) 처벌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대 범죄’로 인식하지 않아 징계가 끝나기도 전에 복귀하기도 한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한체육회로부터 제출받은 ‘징계 중 복직·재취업’ 사례를 보면, 대한볼링협회 소속 고등학교 코치 ㅈ씨는 미성년자인 제자를 3회 강간하고 수차례 성추행해 지난해 영구제명됐다. 하지만 ㅈ씨는 기초자치단체의 장애인볼링협회장을 맡아 지난해까지 활동했다. 대한루지경기연맹 소속 국가대표 코치였던 ㅇ씨는 2013년 선수 3명을 고막이 찢어지거나 피멍이 생기도록 폭행해 연맹 1심에서 ‘자격정지 5년’ 처분을 받았지만 선수위원회 재심, 이사회 3심을 거치며 ‘자격정지 1년’으로 경감됐다. 심사 도중인 2014년엔 국제루지연맹 심판으로 취직했다.

독립적인 조사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주 교수는 “사법기관과 조사를 연동하는 방안 등을 통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폭력·성폭력 사건 처리 결과를 기관 평가에 반영하는 등 관리감독자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는 “이번 기회에 합숙 훈련과 체육특기자 제도를 없애고 금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는 등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다해 김동훈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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