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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필리핀으로 불법수출, 쓰레기 6500t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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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활용 업체, 폐플라스틱으로 위장처리하려 했단 의혹 나와

조선일보

/그린피스


1t에 6달러. 지난해 필리핀에 수출돼 국제적인 문제를 일으킨 한국산 플라스틱 폐기물〈사진〉의 판매 가격이다. 현지에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진 폐기물 양이 6500t인 점을 감안하면 수출 업체는 3만9000달러(약 4300만원)를 벌기 위해 한국에 '쓰레기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씌운 셈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수출 업체와 수입 업체가 모두 수출품이 쓰레기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한국 업체가 필리핀 업체에 비용을 주면서 폐기물을 보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11일 "재활용이 가능한 폐플라스틱을 수출하는 척하면서 이면으로는 필리핀에서 쓰레기를 불법 처리하도록 하는 '이중장부'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필리핀 언론 "쓰레기 들여온 업체도 한국 업체"

이번 사건은 지난 7월 필리핀 관세청이 '합성 플라스틱 플레이크'로 신고된 수입품 컨테이너에서 기저귀, 폐배터리, 전구 등이 섞인 쓰레기 더미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필리핀 관세청 측은 현지 업체인 베르데소코필로부터 1400t의 쓰레기가 담긴 컨테이너 51개를 즉시 압류 조치했다. 이 업체 소유 부지에는 5100t의 한국산 쓰레기가 추가로 발견됐다.

사건이 드러나자 마닐라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베르데소코필은 한국인이 지분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회사"라며 "한국 업체끼리 거래로 필리핀 국토를 오염시켰다"고 보도했다. 베니 안티포르다 필리핀 환경부 차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해당 업체에 한국인 경영자가 있다는 점을 밝히며 "조속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국인 경영자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 환경부는 지난해 필리핀 현지에 직원을 파견해 쓰레기 불법 수출 사실을 확인했고, 쓰레기를 조속히 한국으로 반환하기로 필리핀 정부와 합의했다. 그런데도 베르데소코필과 한국 수출 업체는 아직까지 "쓰레기가 아니며 재활용 가능한 폐플라스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쓰레기는) 필리핀 정부의 확인이 끝나는 대로 이달 중 한국으로 반환 조치될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불법 수출을 자행한 업체가 반환 비용을 책임져야 하는 만큼 정부가 대집행하더라도 법적 절차를 밟아 추후 업체에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했다.

◇동남아에 쓰레기 수출은 공공연한 비밀… '쓰레기 브로커' 횡행

이번 사건에 대해 재활용 폐기물 처리 업계에서는 "올 게 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1년 전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등 국내에서 활로를 찾지 못한 재활용품 선별 업체들이 동남아에 쓰레기를 불법 수출하는 일을 공공연히 해왔다는 의혹이다. 수도권의 한 재활용 분리 선별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폐기물을 수거해오면 빈 병, 폐의류, 깨끗한 페트병 등 비싸게 팔리는 폐품을 추려내고, 상태가 나쁜 폐플라스틱 등은 중국으로 수출하거나 국내에서 매립·소각했다. 그런데 중국에 폐플라스틱을 보내지 못하게 되면서 적체되는 쓰레기 양이 크게 늘었다"고 주장했다. 쓰레기는 계속 나오는데 처리할 수 있는 업체는 한정되어 있다 보니 국내 폐기물 처리 비용이 과거 1㎏당 5만~7만원 선에서 현재 15만~20만원 선으로 2~3배 뛰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활용품 선별 업자에 접근해 "돈만 주면 쓰레기를 처리해주겠다"고 하는 '쓰레기 브로커'가 등장했다. 브로커는 일정 금액을 받고 국내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 또는 불법 소각하거나 국외로 쓰레기를 보낸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 위해선 국내 폐기물 처리 시스템 개선해야"

현행법상 재활용 폐기물 수출 업체는 어떤 품목을 수출할지 신고한 후 품질평가서만 제출하면 된다. 환경부와 관세청은 서류 검토 후 실제 물건은 살펴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도 서류상으로는 '폐합성고분자화합물류(플라스틱)'를 수출하겠다고 하고, 품질평가서도 제출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단 허가를 받고 수출한 폐기물에 대해서는 수입 당사국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수출 신고된 재활용 폐기물을 전수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홍수열 자원순환연구소 소장은 "국내 폐기물 처리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으면 또다시 불법 수출이 발생할 것"이라며 "턱없이 부족한 폐기물 처리 시설을 늘리고 폐기물 에너지 등 다양한 활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김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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