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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종영①] '라이브' 경찰, 몰라봐서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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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 지방에서 친구와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한 취객을 만났다.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잠들어있던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해 112 버튼을 눌렀다. 얼마 뒤 도착한 경찰에게 친구는 “서울에서 온 기자님이랑 지나가는데 이사람이···”라고 말했다. “왜 직업까지 말하냐”고 화를 냈더니 그가 이렇게 답했다. “안그러면 대충 깨우다 택시태워”

경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짙게 깔려있다. 언론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 뒤에 따라붙는 ‘초동조치 미흡, 미온적 대처’는 불신으로 이어진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 해줄 것 같은, 아니 해줘야만 하는 직업. 우리는 번지르르하게 말로만 경찰을 존경한다 하면서 속으로는 머슴 부리듯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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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는 분명 신세계였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경찰은 조직폭력배와의 싸움, 내부비리, 살인, 마약 등 극히 일부의 강력사건에서 과격하거나 무능하게 그려졌다. 지구대 경찰은 현장을 지키거나 초동조치를 제대로 못해 형사에게 지적받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지루한 설정, 즉 클리셰로 자리잡은지 오래였다.

그런 면에서 ‘라이브’의 주 무대는 신선했다. 노희경 작가의 선택은 이번에도 놀라웠다. 순경 채용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부터 정년퇴임을 앞둔 경찰까지, 모든 세대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경찰청도, 경찰서도, 강력반도 아닌 지구대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은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을 형성했다. 주취자와 작은 폭행사건, 층간소음이나 떠올리며 ‘18부작을 어떻게 끌어가나’ 걱정했던건 정말 쓸데없었다.

지구대 안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예상했던 주취자 난동부터 쌍방폭행이 경찰의 독직폭행으로 이어지고, 불법 성매매, 촉법소년, 가정폭력, 연쇄 성폭행, 불법 총기사용, 연쇄살인까지 수도 없었다. 한 사건을 해결하고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기존의 틀은 정말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는 듯, ‘라이브’의 사건들은 동시에 쏟아져 시청자를 정신차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경찰이 결코 슈퍼히어로가 아님을 각성시켰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바 없는 보통 사람이라고. 조직에 몸담은 직장인이라고 수차례 현실을 일깨웠다. 험한 사건현장과 마주치면 흥분하고 떨리고 무서운 그런 사람. ‘경찰은 그래야 해’라는 말이 말만 그렇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됐다.

마지막회에서 살인사건 용의자를 총으로 쏴 사망케한 염상수(이광수 분)는 징계위원회 판결을 앞두고 “분명한 한가지는 피해자와 제가 존경하는 동료를 살렸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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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촌은 “오늘 경찰로서 목숨처럼 여겼던 사명감을 잃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후배들에게 어떤 순간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라, 경찰의 사명감을 가져라, 어떤 순간이라도 경찰 본인의 안위보다 시민을 국민을 보호해라 그게 경찰의 본분이고 사명감이다 수없이 강조하고 말해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했던 모든 순간들을 후회합니다.

피해자건 동료건 살리지 말고 도망가라. 네 가족 생각해서 결코 나대지 마라. 네 인생은 국가 조직 동료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우리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현장의 욕받이다. 현장은 사선이니 모두 편한 일자리로 도망가라. 그렇게 가르치지 못한걸 후회하고 후회합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누가 감히 현장에서 25년 넘게 사명감 하나로 악착같이 버텨온 나를 이렇게 하찮고 비겁하고 비참하게 만들었습니까. 누가 감히 나의 사명감을 가져갔습니까“라고 말했다.

오양촌의 절규는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라 경찰 모두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긍정적인 사명감 하나로 버티는 보통의 경찰. 사회의 궂은일을 도맡을 수밖에 없는 보통사람들. 그들에게 주어진 짐이 너무 많은데 우리는 고맙다는 말 대신 ‘짭새’라고 부르는건 아닐까.

‘라이브’에 대한 기사를 쓰면 현직 경찰과 가족들의 댓글이 종종 보인다. 이들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며 오양촌의 절규를 다시 느낀다. 사회를 지키기 위해 몸담은 경찰과, 이들의 안전을 비는 가족의 사연들은 마치 기도처럼 느껴진다. 짧은 기사 하나에, 스쳐가는 드라마 한 편에 가슴 졸이며 안녕을 빌어야 하는 그들의 마음을 우리는 조금 더 깊이 보듬어줘야 한다.

그제 밤, 슈퍼에 다녀오는 길에 4차선 도로에 주저앉아 있는 취객을 발견했다. 억지로 보도블럭까지 끌고 나와 112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이 오는 10여분 동안 계속 주소를 물었지만, 아저씨는 눈이 풀린 채 바닥에 침만 뱉었다. 그를 두 명의 경찰에게 인계하고 돌아서는 순간 느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이들을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김진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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