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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영미~ 감동 그대로 … ‘오벤져스’ 컬링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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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컬링 드림팀도 도장깨기

강팀 캐나다 꺾었지만 독일에 석패

4승 1패로 2위, 준결승 진출 유력

여러 팀서 우수 선수 뽑아 팀 구성

영화 ‘어벤져스’처럼 처음엔 삐걱

메달 목표 위해 양보해 똘똘 뭉쳐

중앙일보

패럴림픽


‘팀 킴’의 올림픽 감동을 패럴림픽에서는 ‘오벤져스’가 재현한다.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이 연승행진으로 패럴림픽 금메달을 향해 순항했다.

스킵 서순석(47), 리드 방민자(56·여), 세컨드 차재관(46), 서드 정승원(60), 이동하(45)가 호흡을 맞춘 한국은 12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휠체어컬링 예선 4차전에서 캐나다를 7-5로 꺾고 4연승을 달렸다. 12일 밤에 열린 5차전에서 독일에 3-4로 졌지만 4승 1패로 2위에 올라있다. 휠체어컬링은 12개국이 풀리그로 예선을 치러 상위 네 팀이 준결승에 오른다.

다섯 명의 대표선수는 모두 역경을 이겨낸 ‘영웅’이다. 살면서 사고로 장애를 얻었지만 이를 극복했다. 방민자는 25년 전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됐다. 실의에 빠진 그는 대소변 줄을 거부하다 신장 한쪽마저 장애를 입었다. 10년간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던 그는 론볼링(잔디 위에서 공을 굴려 목표(잭)에 가까이 보내는 장애인 스포츠)을 만나 새 삶을 찾았고, 컬링을 통해 꿈을 키웠다. 그는 “스포츠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사회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장애인들도 나를 보며 힘을 내면 좋겠다”고 했다.

2002년 직장에서 일하다 다친 차재관은 재활병원에서 아내를 만나 3남매의 아빠가 됐고, 재활 스포츠를 통해 희망을 찾았다. 나머지 세 선수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스포츠에 입문했고, 대한민국을 대표해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영예를 안았다.

컬링에선 스킵의 성(姓)을 따 팀 명을 붙인다.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한국 여자 대표팀은 스킵 김은정의 성을 따 ‘팀 킴’이라 불렀다. 마침 선수 전원이 김씨라서 ‘팀 킴’은 더욱 화제가 됐다. 휠체어컬링 대표팀은 반대로 ‘오성(五姓) 어벤져스’ 또는 ‘오벤져스’로 불리는데, 다섯 선수의 성이 모두 다르다.

성만 다른 게 아니다. 컬링은 대개 선수 개인이 아니라 팀 단위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른다. 이번 여자 컬링팀은 전원 경북체육회 소속이었다. 휠체어컬링은 그렇지 않다. 여러 팀에서 우수 선수를 뽑아 팀을 꾸린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등 수퍼히어로들이 모인 어벤져스란 별명이 딱 어울린다.

중앙일보

한국이 캐나다를 7-5로 꺾은 뒤, 차재관(오른쪽)이 상대 선수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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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에서 팀 단위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하는 건 호흡이 중요해서다. ‘팀 킴’은 고등학교 때부터 10년 가까이 ‘영미’를 외치며 호흡을 맞춰왔다. ‘영미’를 외치는 속도와 횟수만으로 스위핑 타이밍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휠체어컬링에 스위핑은 없지만, 팀워크는 일반 컬링 못지않게 중요하다. 제한시간이 있기 때문에 스톤의 위치와 전략을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한국 휠체어컬링은 2010 밴쿠버 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하지만 4년 뒤 소치 패럴림픽에선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대한 휠체어 컬링협회는 평창패럴림픽을 겨냥해 일찌감치 ‘드림팀’을 구성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김정훈 협회 사무국장은 “처음엔 반발이 컸다. 하지만 우리는 등록 선수가 120명밖에 안된다. 그래서 단일팀 대신 최고 선수를 뽑는 거로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선발 과정은 공정하면서도 치밀했다. 패럴림픽을 2년 반 앞둔 2015년, 일찌감치 6개 상위 팀을 선발했다. 이들이 테스트를 거쳐 2016년 8월 포지션당 2명씩 총 8명까지 압축됐고, 함께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선수를 평가해 최적의 조합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6월 최종선발된 선수가 지금의 오벤져스다. 서순석·방민자·차재관은 서울시청, 이동하는 경남연맹, 정승원은 경기연맹 소속이다.

‘오벤져스’ 멤버들이 처음부터 잘 맞았던 건 아니다. 영화 ‘어벤져스’ 속 영웅들처럼, 처음에는 서로 맞지 않았고 하나가 되지 못했다. 다른 팀, 다른 지역 사람끼리 모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테스트이벤트로 지난해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선 6위에 그쳤다. 서순석은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특히 8명 중 5명만 패럴림픽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경쟁의식이 강했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들을 하나로 묶은 건 공동의 목표, ‘패럴림픽 메달’이다.

목표를 위해서 한 발씩 양보했다. 마지막 투구자를 바꾼 게 대표적인 사례다. 4명이 두 번씩 총 8번 스톤을 투구하는 컬링에서 주장인 스킵은 대개 마지막에 투구한다. 그런데 대표팀은 지난 1월 핀란드 대회부터 서순석 대신 차재관이 마지막 투구를 하고 있다. 캐나다전 마지막 8엔드에선 서순석과 차재관이 나란히 멋진 더블테이크아웃(한 번의 투구로 상대 스톤 2개를 쳐내는 것)을 성공시켰다.

차재관은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서순석 선수가 많이 격려해줬다”고, 서순석은 “자존심보다는 이기는 게 중요하다. 코칭스태프의 제안에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서로에게 공을 돌렸다. 백종철 감독은 “맏형인 정승원 선수에게 ‘팀원들을 잘 뭉치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정말 잘해줬다. 선수들 모두 금메달이란 목표를 향해 하나가 됐다”고 했다.

강릉=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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