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심석희 사태' 놓고 청와대에도 거짓말한 빙상연맹

댓글 4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코치로부터 폭행당한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1·한국체대)가 18일 밤 대표팀에 복귀해, 19일 오전 훈련에 참가했다. 그런데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사건 직후 폭행 사실을 알고도 이를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또 연맹은 진천선수촌 방문을 위해 일정 조율을 요청해온 청와대 측에도 사실과 다른 보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일보

인사말하는 심석희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5일 오전 목동 실내빙상장에서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에 참가하는 심석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7.11.15 ryousant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심석희는 지난 16일 진천선수촌에서 면담 도중 A코치로부터 폭행당했다. 당시 면담장소에는 둘만 있었다. 심석희는 그 직후 선수촌을 나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인 1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진천선수촌을 방문해 평창올림픽 출전 선수들을 격려할 예정이었다. 청와대 비서실 측은 방문을 앞두고 연맹에 여자 쇼트트랙팀 주장인 심석희의 참석을 요청했다. 빙상연맹 측은 "심석희가 독감으로 아파서 나오지 못한다"고 둘러댄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문 대통령의 진천선수촌 면담 자리에 심석희와 A코치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일부 취재진과 심석희의 매니지먼트사(갤럭시아SM)가 상황 파악에 나서면서 폭행사건이 외부에 알려졌다. 연맹은 18일 오전에야 A코치를 직무 정지했다. 연맹은 진상을 파악한 뒤 상임이사회와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거쳐 A코치에 대한 징계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 심석희의 매니지먼트사는 19일 "선수와 코치 사이에 발생한 일에 대해 사실 확인이 명확히 되지 않은 상태"라며 "연맹에서 사태 전모를 정확히 파악해 소상히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중앙일보

반칙 당해 밀려난 심석희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9일 오후 목동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1000m 결승에서 심석희가 넘어져 있다. 2017.11.19 ryousant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정확한 배경과 원인은 연맹 조사가 끝나야 밝혀질 전망이다. 빙상계에선 "올림픽을 앞두고 심석희의 경기력이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으면서 A코치와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A코치는 심석희를 초등학교 5학년 때 발탁해 10년간 가르쳤다. 심석희가 2014 소치올림픽에서 금(계주)·은(1500m)·동(1000m)메달을 딸 때도 함께 했다. 심석희는 2015년 한 인터뷰에서 "A코치님은 제가 나약해지면 강하게 만들어 주시고, 힘들어하면 에너지가 돼 주셨다"고 말했다.

최근 A코치가 성적과 관련해 심석희에게 압박감을 많이 줬다는 얘기가 나온다. 후배 최민정(20·성남시청)이 국제대회에서 심석희를 앞지르면서 압박이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2017~18시즌 월드컵에서 최민정은 8개의 금메달을 땄고, 심석희는 4개를 땄다.

심석희는 지난 연말 소셜미디어(SNS)에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나의 존재가 가치 있다 생각했어"라는 문구가 담긴 일러스트를 올렸다. 또 "메달이 아니어도 후회 없는, 부상 없는 경기로 보상받고 언니가 행복하게 웃었으면 좋겠어요" "언니가 만족하면 충분해요"라고 적힌 팬레터 일부분도 올렸다.

중앙일보

쇼트트랙 심석희 SNS에 올라온 일러스트. [사진 심석희 SNS]




황승현 한국스포츠개발원 박사는 "올림픽을 앞둔 선수가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는 건, 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매우 컸다는 뜻"이라며 "쇼트트랙은 반드시 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에는 쇼트트랙 대표팀의 폐쇄적 분위기가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쇼트트랙 대표팀 내 폭행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에도 여자 선수들이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 라커룸에서 코치에게 상습 폭행을 당했다. 2015년에는 한 남자대표 선수가 훈련 도중 후배를 때렸다.

그럼에도 성적을 이유로 이런 상황이 묵인됐다. 연맹은 이런 사건 때마다 외부 자문이나 상담 대신 내부적으로 무마하고 감추기에 급급했다. 한국스포츠개발원에서 쇼트트랙을 담당하는 김언호 박사는 "쇼트트랙 대표팀은 선수뿐 아니라 코치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창구가 필요한데, 폐쇄적인 분위기 탓에 안에서 곪으면서 불미스러운 사건·사고로 자주 이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소영·김지한 기자 psy0914@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