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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베이스볼 라운지]투 스트라이크, 플랜B를 실행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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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6년 월드시리즈 7차전은 메이저리그 사상 가장 짜릿한 승부였다. 마지막 승부는 컵스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8회까지 6-3으로 앞서 있었다. 컵스의 108년 만의 우승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4개였다.

이때부터 흐름이 묘하게 바뀌었다. 내야 안타가 나왔고, 부랴부랴 마운드에 오른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은 8회를 끝낼 아웃 1개를 잡아내지 못했다. 8회 2사, 3점 차 리드가 날아갔다. 97%까지 올랐던 108년 만의 우승 확률이 사라졌다.

기적은 10회초 만들어졌다. 선두타자 카일 슈와버(좌타자)는 우전 안타를 때렸다. 크리스 브라이언트(우)의 타구는 우중간 뜬공이었다. 리조는 고의4구로 나갔다. 벤 조브리스트(스위치·좌타석)는 볼카운트 1B-2S에서 브라이언 쇼의 공을 때려 3루수 왼쪽을 뚫는 좌선상 2루타를 만들었다. 1루주자 알로마가 홈을 밟았고, 결승타가 됐다. 또 다시 고의4구를 얻어 만든 1사 만루에서 미겔 몬테로(좌)는 3루수, 유격수 사이를 빠지는 안타를 더했다. 컵스는 ‘염소의 저주’를 뚫고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안았다.

컵스 조 매든 감독은 마이너리그 감독 시절 ‘큰 소리를 내(Get loud)’라고 적힌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타자들로 하여금 주저말고 강하게 때리라는 뜻을 강조하는 셔츠였다. 강하게 때려야 좋은 타구가 나온다는 것은 메이저리그의 ‘새 측정장치’들이 숫자로 증명한 터였다.

하지만 야구는 언제나 정답을 한 가지로 알려주지는 않는다. 복잡함의 미학이야말로 야구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이자, 인생에 비유하게 만드는 장치다. 매든 감독은 ‘2스트라이크, 플랜B’를 준비했다. 시카고 컵스의 우승을 다룬 책 <컵스 웨이>에 따르면 매든 감독은 2016년 스프링캠프 때 선수들을 실내 타격 훈련장에 모아놓고 ‘2스트라이크, 플랜B’에 대해 설명했다. 매든 감독은 선수들에게 “2스트라이크가 되면 더 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상식과 다른 접근이었다. 매든 감독은 “2스트라이크 이전과 2스트라이크 이후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는 걸 타석에서 인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긴장감을 더 높이고, 상대의 속구에 대응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했다. 매든 감독은 “일단 멀리 한 번 쳐다보고, 심호흡하고, 타석을 준비하는 것이 핵심”이라면서 이를 “B로 때리기(B Hack)”라고 이름 붙였다.

긴장을 통해 리마인드를 하고, 자세를 고쳐잡는 게 핵심이다. 다른 준비를 하면 결과가 달라진다. ‘삼진을 당하면 어쩌지’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타자를 오히려 얼어붙게 만든다. ‘삼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삼진을 안 당하려면 이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이 ‘플랜B’의 열쇠다.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바로 그 플랜B에서 나왔다. 브라이언트부터 몬테로까지, 연장 10회 2점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의 타구 방향은 모두 타석 방향의 반대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타자들은 ‘플랜B’의 자세로 타석에 들어섰고, 이른바 ‘밀어치는 타구’가 연속해서 나오면서 108년 저주를 끊는 결승점을 만들었다. 긴장되는 상황,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긴장 자체가 아니라 긴장에 대비한 준비다.

kt 정현은 2017시즌 전반기 타율이 2할5푼5리였다. 후반기 3할3푼으로 치솟았다.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대회 대표팀에도 뽑혔다. 전반기 20.6%였던 삼진률이 후반기 15.1%로 줄어든 게 결정적이었다. 정현 역시 ‘2스트라이크, 플랜B’를 찾아냈다. 정현은 “시즌 중반부터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오른발을 뒤로 빼는 방식으로 타격폼을 바꿨다”고 말했다. 발을 뒤로 빼면서 왼쪽 어깨가 열리는 것을 막았고, 투구에 대비하는 시간을 늘렸다. 스스로 연구해 찾은 결과였고, 완전히 자기 것이 되면서 야구가 바뀌었다.

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많은 새해 결심들이 쌓일 때다. 막연한 결심 대신 ‘2스트라이크, 플랜B’를 준비한다면 그 결심들의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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