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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SS인터뷰②]김수철의 40년 '음악 순애보', "난 빌딩 대신 음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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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남들이 빌딩을 올릴 때 저는 제 집에 거대한 음악 빌딩 숲을 세웠습니다.”

‘작은 거인’ 김수철의 지난 40년을 설명해줄 수 있는 키워드는 단 하나다. 바로 ‘음악’이다. 그는 “좋은 차, 좋은 집, 땅은 내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 한 재벌이 지금까지 만든 음악을 주면 120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뿌리칠 수 있었던 것도, 안성기 등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가며 돈안되는 국악 앨범을 제작했던 것도 모두 “음악에 대한 일방적인 순애보” 때문이었다.

1977년 스무 살에 KBS 방송에 출연하며 데뷔한 그는 최근 40년의 음악 여정을 정리한 책 ‘작은 거인 김수철의 음악 이야기’(까치)를 펴냈다. 연대기 순으로 기술한 책에는 기타와 씨름하던 중고교 시절부터 1977년 첫 방송 출연, 1978년 밴드 ’작은 거인‘을 결성해 이듬해 첫 앨범 ’작은 거인 1‘을 내고 1983년 솔로로 데뷔한 과정, 1980년부터 우리 소리인 국악의 현대화 작업에 천착한 37년의 시간을 세밀하게 담았다. 그와 인연을 맺었던 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수록돼 있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그의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도 확인할 수 있다.

-솔로 가수 데뷔 직후인 80년대 초반 인기가 엄청났다.
앨범을 37장 발표했는데, 히트한 건 5장 정도다.(83년 솔로 1집, 84년 솔로 2집, 89년 ‘원맨밴드’ 앨범, 90년 ‘날아라 슈퍼보드’ OST, 93년 ‘서편제’ OST) 특히 1,2집 판매고가 엄청났다. 1집에서 ‘못 다 핀 꽃 한 송이’, ‘별리’, ‘내일’, 2집에서는 ‘나도야 간다’, ‘젊은 그대’, ‘왜 모르시나’ 등이 히트했다. 1~2집 모두 수백만장이 팔렸다. 아마 그때 수익으로 빌딩을 사려고 마음 먹었으면 강남에 5~6개는 올렸을 거다.(웃음)

음반회사에서는 날 별로 안좋아했다. 가요로 앨범을 파는가 싶으면 돈이 안되는 국악 음반을 냈기 때문이다. 회사에 내가 ‘돈은 다른 잘나가는 가수를 통해 벌어라. 난 아니다’라고 했다. 그때부터 난 ‘국악을 잘 만들면 수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음악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다. 물론 레코드회사에서는 안 믿었고, 반대했다. 그래서 국악 앨범 제작비는 내가 다 댔다.

빚이 차츰 쌓여 재정적으로 큰 위기가 왔을 무렵 89년 발표한 ‘원맨밴드’ 앨범 수록곡 ‘정신차려’가 터졌다.(웃음) 그 돈으로 다시 국악을 했다. 회사에서 ‘왜 자꾸 이런 걸 하냐’고 할 때 다시 한번 ‘서편제’가 터졌다. 레코드 회사 대표에게 ‘김수철 씨 말이 맞았네요’라는 말을 기어이 들은 뒤 당당하게 그 회사와 계약을 마무리지었다.

-40년 동안 모은 재산은.
좋은 차, 좋은 집, 땅은 내 관심 밖의 영역이다. 내가 하는 음악으로 좋은 감동을 주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그게 내가 작곡을 하고 음악을 만드는 이유다. 지구촌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을 하고 싶다. 그래야 긍지를 갖게 될 거 같다. 그 외엔 관심이 없다. 모아놓은 재산은 없다. 음악만 많이 쌓여있다.

나는 멋있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될 만한 뭔가를 갖고 있지 않다. 오직 음악 뿐이다. 여름 휴가도 가본 적이 없다. 외국도 일로만 가봤지 놀러 가본 적은 없다. 그냥 음악만 했다.

-명성만 보면 지금 좋은 외제차를 타고 다녀도 될 것 같다.
한번도 외제차를 타본 적이 없다. 요즘엔 국산 대형 세단을 타고 다닌다. 한때 국산 소형차 ‘액센트’를 1~2년 정도 타고 다닌 적이 있다. 좋은 차였고 잘 타고 다녔는데 갖고 다니는 악기가 트렁크에 다 들어가지 않더라. 어쩔 수 없이 큰 차로 바꿨다. 순전히 악기를 넣어야 해서 큰 차로 바꿨다.

-음악 외에 다른 유혹을 느낀 적은 없나.
1,2집이 대박난 직후인 80년대엔 돈보다 음악 공부에 대한 열망이 훨씬 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주경야독’을 했다. 내가 국악에 한참 미쳐있을 때였다.

90년대 초반 한 재벌가 회장이 내 음악 저작권을 120억원에 다 사겠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움을 느낄 때였다. 일주일 정도 붕 떠있었다. 그 돈을 받으면 강남에 빌딩 3개 정도 사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강남에 5층짜리 건물을 14~15억원 정도면 살 수 있었다. 남은 돈으로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멋진 음악을 해야겠다는 청사진도 그렸다.

그런데 어떤 깨달음이 왔다. 내가 그 돈 관리를 잘 하지 못할 게 확실했다.(웃음) 돈보다는 음악을 택하자고 결심한 뒤 돈의 유혹을 거절했다. 그 이후 ‘서편제’가 터져서 재정적으로 숨통이 트였다. 결론적으로는 그 회장의 제안을 거절하길 잘했다. 120억원을 그때 벌었다면 빌딩 관리나 하고, 술먹고 돌아다니며 흥청망청 살았을 것이다. 이후 음악 작업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 같다.

-1995년 금주, 금연을 하게 된 것도 음악적 열망 때문인가.
예전엔 하루에 담배 3~4갑을 피웠다. 술은 밤새 마셨다. 95년 팔만대장경이 세계 문화제로 지정된 뒤 세계에 알린다는 목적으로 작곡 의뢰가 들어와 해인사에 며칠 묶었는데, 하루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수장고에 들어가게 됐다. 생전 처음 느끼는 깊고 깊은 기운이 확 오더라. 처음 느끼는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그때 ‘올바른 자세로 작곡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 마음, 정성을 다해 음악을 하고 싶고 바른 생활, 새 생활을 하고 싶어 바로 술을 끊고 두달 뒤 담배를 끊었다. 금단 현상으로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올바른 선택이었다. 외국 영화에 보면 술과 담배에 취한 예술가들이 나오지만, 실제 내가 아는 외국 예술가들은 자기 관리를 엄청나게 한다.

-40년 동안 악기, 음악에 투자한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
음악에 투자한 비용만 족히 150억원 가량 될 것이다. 내가 사는 집엔 ‘음악’이 잔뜩 쌓여있다. 남들이 빌딩을 올릴 때 나는 내 집에 거대한 음악 빌딩 숲을 올렸다. 우리집엔 소파도 없다. 혼자 앉아있을 만한 공간 한 군데, 누울 공간 한군데를 빼곤 장비가 빼곡히 쌓여있다. 쉴 곳이 없다.(웃음) 손님도 못온다. 와도 앉을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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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기도 많았을 거 같다.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음악을 좋아하는 거다. 나는 좋아한다, 음악을. 기타는 밥먹을 때 빼곤 잡고 있으려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시간 이상은 기타를 친다. 하루라도 기타를 잡지 않으면 금세 실력이 녹슨다. 기타는 영원한 내 친구라 죽는 날까지 절대 놓을 수 없다.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가 많았다. 국악은 잘 안 팔리니 안성기 형한테 돈도 여러 번 빌려가며 음악을 만들었다. 그런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건 내가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다. 음악에 최선을 다하지만 상업적 실패에 좌절하진 않는다. 잘 안된 앨범이 훨씬 많다. 하지만 실패에서 배우는 게 많다. 잘 안된 음반에서 개선할 점을 찾고 공부해 나간다. 잘 안되더라도 좋아하는 걸 하는 게 행복하다. 우리 소리를 전 세계에 꼭 알려야 겠다는 생각, 음악에 대한 내 사랑은 순애보다.

-음악이 싫었던 적은 없나.
40년간 한번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고, 이런 선택을 한 이상 누굴 원망하겠나. 세상이 나를 몰라준 것도 아니다. 음악계에 보면 어려운 후배들이 많다. 그들에게 ‘꿈을 안 놓으면, 고생스럽더라도 좋아하는 걸 하면 보람이 온다. 어떤 형태로든 함께 잘 참아가자’고 말한다. 그들은 나에게 ‘선배님은 잘 됐잖아요’라고 한다.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웃음) 결코 쉽지 않았다.

-김수철을 따라 국악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뮤지션은 많지 않아 보인다.
내가 돈을 많이 벌었으면 많이들 따라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순수 예술은 대중 예술 분야보다 공부를 훨씬 많이 해야 하고, 실험도 필요하다. 한마디로 비현실적인 작업이다.

-요즘 좋아하는 대중음악계 후배들은.
아이유를 좋아한다. 히트곡이 있으면서도 자기 색깔이 있다. 그러기가 결코 쉽지 않다. 언제 기회가 닿으면 밥한끼 먹고 싶다.(웃음) 도끼, 비와이도 좋아하고, 타이거JK, 다이나믹 듀오, 리쌍도 좋아한다. 가끔 이적, 김동률과 밥을 먹는다. 후배들을 좋아한다.

monami153@sportsseoul.com

<‘작은 거인’ 김수철. 사진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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