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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삶과 추억] ‘손기정 일장기 한’ 풀어준 보스턴 영웅 서윤복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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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아시아인 첫 세계신기록 우승

당시 김구‘족패천하’휘호 써 축하

황영조 “한국 마라톤 역사 이끈 분”

중앙일보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서윤복.[사진 대한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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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마라톤의 영웅’ 서윤복 대한육상연맹 전 고문이 27일 별세했다. 94세.

고인은 1947년 4월 19일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당시 세계신기록(2시간25분39초)을 세우며 우승했다. 정부 수립 이전에 한국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1923년생인 고인은 23세이던 46년 제1회 전조선 마라톤대회, 제1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 전국체육대회를 모두 제패하면서 마라톤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서울 동대문에서 헌 운동화를 구한 뒤 밑창의 못을 빼고 리어카 바퀴 고무를 잘라 덧대 신고 달리면서 마라토너로의 꿈을 키웠다.

고인은 47년 보스턴 마라톤 출전을 위해 손기정(2002년 작고)·남승룡(2001년 작고)과 미국으로 향했다. 어렵던 시절 그는 모금을 통해 여비를 마련했고 미군 군용기와 여객기를 갈아탄 끝에 5일 만에 대회 장소에 도착했다. 손기정의 신발을 빌려 신고 출전한 고인은 레이스 도중 개가 뛰어드는 바람에 바닥에 넘어져 무릎을 다치기도 했다. 운동화 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달렸던 고인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세계 4대 마라톤 중 하나인 보스턴 마라톤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코치로 레이스를 도왔던 손기정은 태극기를 달고 우승한 고인을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고인은 “한국의 완전 독립을 염원하는 동포들에게 나의 승리를 선물로 바친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미국 언론은 “자유를 찾은 코리아가 기적을 일으켰다”며 대서특필했다. 또 김구 선생은 귀국한 고인에게 ‘족패천하’(足覇天下·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라는 휘호를 직접 쓴 뒤 선물로 건네면서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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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인 이봉주 선수(오른쪽) 환영식에 참석한 고인(가운데)과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사진 대한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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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뒤 이듬해 현역에서 은퇴한 고인은 대한육상연맹 이사·전무이사·부회장 등을 거쳤고, 대한체육회 부회장·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체육행정가로서 한국 체육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는 또 1961년부터는 17년간 서울시립운동장장을 맡았다. 이런 공로로 고인은 2013년 12월 손기정·김성집(역도)에 이어 세 번째로 대한체육회 스포츠영웅에 뽑혔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한국 마라톤의 영웅을 잃어 가슴이 아프다”면서 “고인은 손기정 선생님과 함께 한국 마라톤의 역사를 이끈 분이었고, 존재감만으로도 큰 어른이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용영자씨와 아들 승국, 딸 정화·정실씨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32호실,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다. 발인은 29일 오전 9시, 장례는 체육계에 헌신한 고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대한체육회장으로 엄수된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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