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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낙제점 진상조사 결과와 양승태 대법원장의 비겁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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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법원행정처 서버 공개냐, 대법원장 사퇴냐

지난 4월 18일 사법개혁저지 의혹 진상조사위는 진상조사 보고서를 코트넷(법원내부전자통신망)에 게재하며 법관들에게 공개했다. 진상보고서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는 면죄부를 줬지만 법관독립 학술대회 축소연기 압박 의혹과 이탄희 판사 부당인사 의혹에 대해서는 법원행정처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법원행정처 최종책임자인 양승태 대법원장은 진상보고서가 부당지시와 간섭의 주역으로 지목한 이규진 양형실장을 지난 24일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곤 침묵수행 중이다. 하루바삐 강도 높은 대국민사과를 발표하고 관련자 문책방안과 법관인사제도 개혁추진 방안을 내놓아야 마땅하건만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지 모르쇠 모드가 계속된다.

미흡한 진상조사위 보고서, '제왕적 대법원장' 폐해 문제의식 없어

진상조사위는 최선을 다했다지만 조사방법과 내용, 제안이 모두 너무나 미흡해서 C학점을 주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이규진 양형실장의 부당지시와 간섭만 부각시키고 윗선인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처,차장의 관여에 철저하게 눈감은 조사내용이 그렇고, 법원행정처의 서버조사 협력거부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한 점도 그렇다. 형식논리와 정황증거로 일관하며 판사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한 조사결과가 그렇고, 국제인권법연구회 기획팀장 이탄희 판사에 대한 법원행정처 발탁인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이이제이 효과를 노리지 않고 순수하게 능력만으로 결정됐을 뿐이라며 법원행정처를 감싼 조사결과도 그렇다.

더욱이 조사보고서는 모든 사태의 책임소재를 이규진 양형실장한테만 돌리고 그 윗선인 법원행정처 처,차장이나 대법원장에게는 의심의 레이저 눈빛 한번 쏘지 않는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이 조사보고서를 받아보고 내심 쾌재를 불렀을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더욱이 조사보고서는 관련자 누구에 대해서도 징계조치나 형사고발을 권고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규진 양형실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부당한 지시와 간섭을 한 잘못은 있지만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으로서 법원행정처와 연구회 사이를 중재하려는 충정이 앞선 나머지 오버한 것으로 양해하고 법적 책임을 물을 것까지는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규진 양형실장이 지금까지 사표를 내지 않고 버티는 이유도 진상조사위의 이런 의중을 정확하게 읽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조사결과에 따른 '제안'은 더 실망스럽다. 기조실장의 업무를 양형실장에게 맡긴 법원행정처의 무원칙한 업무처리방식 개선을 제안이라고 내놓은 것도 한가한 소리고, 사법제도 논의를 법원행정처가 독점할 게 아니라 공론화해야 한다는 막연한 제안으로 그친 것도 너무나 한가한 소리다. 더욱이 법원행정처에 엘리트판사만 충원하는 바람에 법관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된다며 개선을 제안한 것은 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마나한 제안이다.

진상조사위는 이번 사태의 뿌리에 있는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과 그 폐단 현상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도 표출하지 않았다. 조사보고서 어느 구석에도 이번 사법행정 농단사태가 촛불시민혁명의 한가운데서 버젓이 진행되었다는 점에 대한 뼈아픈 인식이나 자성이 보이지 않는다. 조사보고서를 읽는 내내 눈 대목이 빠진 판소리, 눈을 빼놓고 그린 인물초상화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마디로 진상조사위의 결론은 태산이 흔들렸지만 조사해보니 쥐 한 마리가 지나갔을 뿐 싸움터엔 죄인이 없더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안타깝지만 진상조사위는 법관 특유의 점잖음과 매너리즘에 빠져 사법부를 전례 없는 위기에서 구출할 역사적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성역 없는 셀프조사로 일반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믿음직한 개혁제안으로 일반법관의 기대에 부합할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배수진 친 내부 반발 "법원행정처 서버 조사 허용하라"

치열한 대선국면과 위험한 안보국면의 동시진행 덕에 사법파동은 잠시 소강상태다. 정치권과 대선주자, 언론매체들이 큰 관심을 주지 않는 현 상황이 양승태 대법원장으로서는 다행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면한 사태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결단의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주요정당들과 국회가 대선이 끝나는 대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을 뿐 아니라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 소장법관들의 기류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예측불가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사법파동이 임종헌 법원행정차장의 사퇴나 이규진 양형실장의 징계로 끝날 수 없고 머지않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의 책임 및 거취 문제로 진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법원내부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지난 24일 한꺼번에 터져 나온 세 건의 강력한 내부반발이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다.

첫째, 각급법원 판사회의 대표들 명의로 조사보고서 내용의 부실함과 조사방법의 한계를 질타하는 성명서가 발표됐다. 성명서는 진상조사위가 이규진 양형실장을 희생양 삼아 양승태 대법원장과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을 보호하려고 작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비친다. 특히 법원행정처장이 진상조사위의 법원행정처 서버조사요구를 거부한 데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다. 이미 지난4월11일, 서버확보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역설한 이들로서는 당연한 질책이다. 끝으로 각급법원 판사대표들은 대법원장에게 각급법원의 선출대표들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구성하여 후속조치 및 제도개혁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법원행정처 주도의 사법제도 개혁논의를 반대하며 각급법원의 법관대표들이 향후 사법제도 개혁논의를 주도할 뜻을 천명한 셈이다.

둘째, 진상조사위의 요청으로 아주 온건하고 합리적인 컴퓨터서버 조사방법을 제안했던 오00 판사가 자신의 판사직을 걸고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의 서버조사 거부조치의 법리적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법원행정처장이 진상조사위의 "정당한 직무상의 조사행위를 방해하고 저지했다"며 준열한 질책을 가했다. 만약 자신의 법적판단이 부당하다면 자신은 판사자격이 없으니 판사직을 사임하겠다고 배수진까지 쳤다. 각급법원 판사대표들도 같은 입장인 점을 감안하면, 특히 숨기는 자가 범인이라는 상식에 비춰보면 법원행정처장이 조만간 물러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법원행정처장 명의의 서버조사 거부조치가 법원행정처장 단독결정일 리 만무하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이 진상조사위를 무력화하는 서버조사 거부결정을 내리면서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미리 보고하고 승인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만약 대법원장이 서버조사 거부결정에 실질적 역할을 했다면 대법원장은 한손으로는 진상조사위에 진상조사를 일임하고 다른 한손으로는 진상조사위의 조사활동을 방해하며 이중플레이를 펼친 셈이다. 오00 판사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의 이런 행위가 법리적으로 도무지 용납될 수 없는 조사방해 행위라는 점을 판사직을 걸고 논증했다. 요컨대, 오00 판사의 비수는 법원행정처장을 넘어 대법원장까지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법원공무원노조가 지난24일 양승태 대법원장의 퇴진을 위한 청원서명운동을 선언하고 실천에 나섰다. 언론보도 직후인 지난3월9일 이미 대법원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법원노조로서는 대법원장의 입김이 들어간 탓에 미흡한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믿기 때문에 당연한 행동수순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위기의 양승태, 기회는 있다

이렇게 볼 때 양승태 대법원장은 현재 조직내부에서 삼각파도를 맞고 난파직전까지 몰린 위급한 상태다. 더욱이 대선이 끝나면 국회 등의 외부조사가 기다린다. 만약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서버 공개조사를 계속 거부하고 사태관련자들에 대한 책임추궁을 꾸물거리면 일부 변호사들이나 판사들이 관련법관들의 직권남용행위에 대해 형사고발도 불사할 태세다. 계속 버티다가는 국회차원의 서버조사 거부조치 취소소송이나 검찰의 서버압수수색영장 청구 같은 사법절차가 법원행정처장을 향해 동원될지도 모른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수치스런 사태의 발생만큼은 피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판사회의 대표들과 오00판사가 이미 해법을 제시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법원행정처가 판사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왔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진실을 숨김없이 밝히고 깨끗하게 책임져야만 사법부를 향한 손가락질과 먹칠을 최소화하고 사법부의 새 출발을 기약할 수 있다. 다행히 그리고 마땅히, 그런 사실이 없다면 정정당당하게 지금에라도 재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법원행정처 서버를 활짝 열고 판사블랙리스트 의혹을 객관적으로 해소하는 데 필요한 관련파일 전부를 조사하게하면 된다. 나아가서 각급법원에서 대표로 선출된 법관들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구성해서 법관독립과 공정사법에 필요한 본격적인 사법개혁에 착수하면 된다.

현재 진행 중인 사법파동은 외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은 전국의 모든 법관들에 대한 승진과 전보, 해외연수와 재임용 등 막강한 인사권을 독점한다. 전국의 법관들은 해마다 대규모 전보 및 승진 정기인사를 경험하며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위세를 실감한다. 꽃보직과 해외연수, 승진을 원하는 이상 누구라도 대법원장과 법원장, 법원행정처의 눈 밖에 나면 안 된다. 10년마다 재임용심사를 받는데다 고법부장 승진탈락자들이 법관직에서 내몰리는 관행까지 살아있어 법관의 '평생' 신분보장은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행 법관인사제도가 지속되는 이상 일반법관들은 대법원장의 정책과 법원장의 의중, 법원행정처의 방침을 거스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법원장의 인사권 행사에 토를 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주요사건에서 대법원장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심지어 중요한 정권적 사안에서도 대법원장의 의중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법관 88.2% "대법원장 사법행정에 반기 들면, 인사 불이익"

지난 3월 25일 공개된, 법관설문조사결과는 이런 사실을 입증한다. 결과분석에 따르면 응답법관 501명 가운데 무려 88.2%가 대법원장의 사법행정에 반기를 드는 판사에게 인사 불이익이 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47%는 주요사건에서 대법원 판례에 도전하는 판사에게도 인사 불이익이 기다릴 것으로 예상했다. 응답법관의 45.3%는 심지어 주요사건에서 정권의 이익에 반하는 판결을 해도 인사 불이익이 쫓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인사 불이익을 가하는 주체는 물론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독점한 대법원장이다. 여기에 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을 보좌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행 법관인사 및 사법행정 제도의 최대수혜자는 대법원장과 법원장, 그리고 법원행정처 고위직 판사들이다. 특히 대법원장의 지근거리에서 충성을 바치며 일하는 법원행정처 고위직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그리고 법원장으로 지명되는 지름길이다. 반면 90%가 넘는 일반법관들은 현행 시스템을 법관독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으로 인식한다. 위에서 언급한 설문조사결과가 그 생생한 증거다. 국제인권법연구회로 모인 소장법관들은 다름 아닌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 및 고도로 관료화된 법원행정처에 문제의식을 갖고 국제규범과 비교법제를 연구하며 개혁방안을 모색해왔다. 내부의 연구토론 성과가 일정하게 쌓이고 내용적으로 자신이 붙자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제왕적 대법원장에게 길들여진 사법부를 흔들어 깨우고자 했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이런 문제의식을 매우 불순하고 위험한 도발행위로 간주하고 온갖 꼼수를 동원하여 탄압을 가했고 그 결과 지금의 사법파동을 불러들였다.

현행 사법시스템의 핵심요소들이 사법주체인 일반법관들로부터 얼마나 강력한 집단적 불신을 받는지는 지난 3월25일 법관설문조사 결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일선법관들이 현행 사법제도들을 예외 없이 고강도 개혁대상으로 여긴다는 설문조사결과 앞에 양승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한없는 자괴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획기적인 개혁방안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당시 국제인권법연구회는 학술대회 발제를 통해 개헌 없이 입법만으로 법관독립을 강화할 수 있는 설득력 높은 개혁방안들을 제시했다. 각급법원 판사대표들의 제안처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구성돼 일반법관들의 경험세계에 뿌리박은 실효성 높은 개혁방안을 중심으로 과감한 사법개혁에 착수한다면 사법부에 대한 일반시민들과 법관본인들의 불신을 말끔히 씻어내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엘리트 판사들의 맹목적 충성과 조직안보 논리, 박근혜 정권 각료들과 똑같다

촛불시민혁명은 권위주의와 신민의식을 낳는 크고 작은 제왕적 존재와 자의적 권력행사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일반시민들의 주권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제왕적 존재를 꼽으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법원장을 맨 앞에 놓는다. 법관인사권의 독점행사를 통해 주요사건의 사법방향에까지 만만찮은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제왕적 대법원장의 존재는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재벌총수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따지고 보면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재벌총수도 제왕적 대법원장이 음으로 양으로 봐주지 않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마디로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재벌총수는 제왕적 대법원장 및 그의 의중에 좌우되는 소심한 일반법관들에게 그 존재를 빚진다. 그렇다면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삼성총수를 동시에 감옥으로 보낸 촛불시민혁명의 와중에서 제왕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력남용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번 사태의 1차 도화선이 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법관독립학술대회 개최계획은 작년 12월부터 추진됐다. 법원행정처가 긴박하게 돌아간 시점 역시 그때부터 금년 2월 20일까지의 기간이었다. 그러니까 촛불시민혁명의 압박으로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고 헌재가 본격적인 탄핵재판을 진행하던 중대한 시기에 법원행정처의 부당압력과 인사파동이 집중됐다. 만약 법원행정처의 고위직판사들이 촛불시민혁명의 역사적 의의에 조금이라도 눈떴더라면 차마 그런 행태를 보이지 않았으리라. 물론 현실에선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법원행정처 차장과 실,국장 누구 하나도 잘못된 트랙에서 스스로 내려오거나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다. 법원행정처의 최고엘리트 판사들이 대법원장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세상과 동떨어진 패거리 특권의식, 빗나간 조직안보의식으로 사리분간을 못하며 허우적거린 행태는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수석들과 장차관들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놀아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법원행정처 서버 공개냐, 대법원장 사퇴냐

그래서 말이다. 지금이야말로 제왕적 권력으로 뒤틀린 사법부를 확 뜯어고칠 때다. 이제야 제왕적 대법원장에게 순치된 사법부를 바로세울 다시없을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국민은 이미 지난 4.13총선에서 양대 기득권거대정당이라는 의회정치의 제왕적 존재를 반쯤 거세했다. 지난 3월 10일에는 헌재의 전원일치 탄핵결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영혼 없는 엘리트 집단들의 제왕적 존재를 몰아냈다. 이제 사법부에서도 사법독립과 공정사법의 기치를 높이 들고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을 과감하게 민주화할 때가 왔다. 제왕적 대법원장이 지금처럼 군림하면 소신재판이 사라지고 눈치재판이 발달한다. 주요사건을 맡은 법관들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대신 제왕적 대법원장의 의중을 살피며 이리저리 흔들린다. 제왕적 정치권력과 제왕적 경제권력의 위법부당행태도 제왕적 대법원장과 이념적, 정치적으로 친하다는 이유로 은근슬쩍 봐주기 쉽다. 지금처럼 제왕적 대법원장을 놔둔 채로는 한국에서 선진국 수준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인권보장을 기대할 수 없다.

이번 사법파동의 현저한 특징은 사상처음으로 일반법관들이 제왕적 대법원장의 법관인사권 독점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법원행정처가 이를 단속하는 가운데 불거졌다는 점에 있다. 이번 사법파동은 따라서 현행 제왕적 대법원장 시스템과 제도적으로 완전히 결별할 때만 끝날 수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과연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이행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대법원장이 판사 블랙리스트 운영의혹에서 진정 자유롭고 이번 사태전개와 관련해서 큰 부끄러움이 없다면, 하루바삐 법원행정처 서버를 공개해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소집해서 본격적인 사법개혁의 물꼬를 터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양승태의 법원행정처가 판사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해온 사실이 있다면 즉각 그 사실을 고해하고 셀프문책 사퇴를 단행하는 것이 국민과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이리저리 재며 머뭇거리다 게도 구럭도 다 잃고 강제퇴장 당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프레시안

▲ 양승태 대법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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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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