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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안방극장, '아재'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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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서 활약하는 40代 남자들

퀴즈 풀며 최신 트렌드 배우고 어머니 앞에선 딸처럼 살갑게

일상에 지쳤을 땐 과감한 일탈도

전형적 '남자다움' 무너지는 추세

"이번 신제품은 우리 회사 입장에선 레알 개꿀(매우 긍정적)입니다. 디자인도 간지나는 게(멋진 게) 솔대 오지죠(솔직히 말하면 완전히 대박이라는 뜻)."

SBS 드라마 '초인가족'의 주류회사 과장 나천일(박혁권)이 임원들 앞에서 청산유수로 쏟아낸 말. 중학생 딸과 대화하겠다며 신조어를 너무 열심히 공부한 나머지 상품 전략 발표에서까지 술술 나와버린 것이다. 그는 사무실 후배에게 배운 랩을 딸 앞에서 선보이고, 재미난 얘기를 해주겠다며 썰렁한 '아재 개그'를 늘어놓고는 혼자 킥킥대는 통에 좌중을 당황시킨다.

소통하기 위해 배운다

아재 전성시대다. 지금 TV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에서는 아재로 분류되는 40대 전후 남자들이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다. 아재는 구식이면서도 신식을 동경한다. 자신이 잘 모르는 걸 쓸데없거나 한심한 것으로 매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권위적인 '꼰대'와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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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시간을 달리는 남자'에서 청춘 따라잡기에 도전하는 신현준·최민용·조성모(왼쪽부터).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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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이 31일부터 방송하는 '시간을 달리는 남자'는 이런 모습을 프로그램 콘셉트로 잡았다. 신현준·정형돈·조성모 등 평균 연령 42세의 아재 6명이 퀴즈를 풀며 트렌드를 따라잡는다는 내용이다. 이원형 PD는 "꼰대가 아니라 소통 가능성 있는 아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엄마 앞에선 아직 어린아이

아재는 생물학적·법적 성인이지만 어엿한 어른은 아니다. TV조선의 새 예능프로그램 '맘대로 가자'는 연예인 아들들이 어머니와 떠나는 해외여행기다. 지난 20일 첫 방송에선 장성한 아들이 어머니와 한 침대에서 자는 에피소드가 나왔다. 가수 박현빈은 침대가 2개인 옆방을 부러워하지만 김종국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침대에 누워선 "(어머니의) 잠옷 바지가 보송보송하다"며 살갑게 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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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의‘맘대로 가자’에서 가수 김종국이 어머니와 말레이시아로 출국하는 장면. 배우 송재희, 개그맨 허경환, 가수 박현빈 모자가 함께 여행을 떠난다.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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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미운우리새끼'에서는 어머니들이 스튜디오에 나와 노총각 아들들의 일상을 지켜본다. 프로그램은 아재 출연자들의 연령을 신생아처럼 표현한다. 가수 김건모는 생후 584개월, 개그맨 박수홍은 생후 550개월이다.

가족만큼 나 자신도 소중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아재에게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족만큼 아재들에겐 자신도 소중하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렸던 예전의 아버지들과는 다르다.

다음 달 방송 예정인 TV조선의 '아재독립 만세! 거기서 만나'는 가수 이현우, 배우 김수로, 요리사 최현석 등 일상에 지친 아재들이 3박 4일간 한적한 '아지트'에 모여 재충전하는 모습을 그린다. MBC가 지난 설 특집으로 방송했던 '가출선언―사십춘기'에서도 40대 아재 정준하·권상우가 러시아로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별안간 자유와 맞닥뜨린 이들은 제대로 놀 줄을 몰라 좌충우돌하지만, 알몸으로 눈밭에서 장난을 치며 잠시나마 청춘으로 돌아간다.

아재의 등장은 '남자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허물어지는 추세를 보여준다. 한국 남자들은 가족을 이끄는 가장으로서 언제나 의젓하고, 강하고, 어른스러울 것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남자의 특권인 동시에 짐이기도 했던 가부장적 질서는 점차 해체되고 있다.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가부장 사회 이후의 남성상을 모색한 '남자란 무엇인가'에서 "20세기까지는 대체로 남자의 시대였지만 새 세기는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며 "아버지 세대의 짐을 훨훨 벗어 던져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도, 가족도 살 수 있다"고 했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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