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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축구] 중국인만 아름답던 창사의 밤, 불상사의 정체는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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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중국인들로 가득 찬 허룽 스타디움 한쪽에 한국 응원단을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됐다. 150명 가량의 붉은 악마가 열심히 응원했으나 이날의 결과는 패배였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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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중국)=뉴스1) 임성일 기자 = "중국인들과 한국인들 모두 아름다운 밤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한국과 중국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6차전이 열리는 23일 오후 창사의 허룽 스타디움. 경기시간을 약 1시간 정도를 앞두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최근 양국의 냉랭한 관계를 의식해 혹시 발생할지 모를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한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인에게는 아름다운 밤이 됐다. 이날의 불상사는, 한국이 중국에게 패했다는 것뿐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중국 원정에서 0-1로 패했다. '창사 참사'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결과다. 지금껏 한국은 중국과 31번 맞붙어 18승12무1패라는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 생각했던 팀에게 패했다. 승점 3점이 간절했던 경기인데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5경기에서 3승1무1패(승점 10)를 거두면서 A조 2위에 올라 있는 한국은, 선두 이란(승점 11)을 추격하고 3위 우즈베키스탄(승점 9)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 반드시 중국을 잡아야했다. 기본적으로 관심이 큰 경기인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외교 문제 때문에 더 많은 시선이 향했다.

사실 걱정이 적잖았다. 대한축구협회는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안전강화를 요구했고 외교부도 중국 측에 우리 응원단의 신변 안전을 위한 필요 조치를 요청했다. 이에 중국 관계 당국은 Δ한국 응원단 지정 관람석 배정 Δ 한국 응원단 전용 출입구 설치 Δ 행사당일 경기장 내외 대규모 경찰력 배치(8천여명) 등 안전 조치를 강화했다.

한국 취재진에 대한 배려도 극진했다. 지정 호텔을 마련하고 내부에 사복 경찰을 배치,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했다. 셔틀버스 운영을 통해 현지인과의 접촉을 차단했고 모든 기자들 옆에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붙였다. 한국 응원단이 자리할 좌석 주변은 아예 텅 비워놓았고 중국 관중들과의 사이에는 공안들로 '인간장막'을 쳤다.

중국축구협회 관계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드 문제에 큰 관심이 없다. 한국이나 한국인을 적대시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 중에는 다소 과격한 이들도 있어서 조심하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이날 밤 아무런 불상사도 없었다. 공한증을 깨뜨린 역사적인 날, 자신들 즐기기에 바빴다. 관중들은 한을 풀어준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붉은 박수를 쏟아냈고 선수들은 운동장 트랙을 돌면서 화답했다. 중국 기자들은 경기 후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오는 리피 감독에게 큰 환호성을 보냈고, 리피는 개선장군처럼 손을 흔들었다.

경기 전 안내 방송처럼, 중국인들은 아름다운 창사의 밤을 보냈다. 하지만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꽤나 아픈 밤이었다.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불상사의 정체는 '한국의 패배'였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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