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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WBC] 유쾌하지 않았던 도전…씁쓸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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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고척) 이상철 기자]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개되지 않았다. 전패 탈락의 수모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유쾌하지 않다. 곱씹어야 할 게 많다. 국내에서 첫 개최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무대를 퇴장하는 김인식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치열한 접전이었다. 제3자에게는 흥미진진한 경기였다. 한 치 앞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한국이 달아나면, 대만이 무섭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선 졸전이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식은땀이 났다. 신이 난 건 대만이었다. 한국은 그래도 강하다? 다시 한 번 세계야구에서 현 위치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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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민국의 장시환이 9일 열린 2017 WBC 1라운드 A조 대만과 3차전에서 7회말 8-8 동점을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고척)=김영구 기자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WBC 대표팀은 9일 고척스카이돔에서 2017 WBC 1라운드 A조 대만과 3차전을 가졌다. 대만과는 4회 연속 대결이다.

역대 WBC 전적은 한국의 3승. 대만에 1번도 패하지 않았다. 2013 WBC에서 8회초까지 0-2로 뒤졌지만 8회말 강정호의 2점 홈런 등으로 3점을 뽑아 역전승을 거뒀다.

승리의 감흥은 느낄 수 없었다. 한국이 희망한 건 ‘6점차 이상’ 승리였다. 대만은 패했지만 2라운드에 나갔다. 한국은 무대를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이번에는 그런 조건은 없었다. 승리 혹은 패배, 그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따름이다.

19이닝 1득점의 한국은 타순에 칼을 댔다. 조정 폭이 컸다. 김태균(한화), 김재호(두산)이 선발 제외됐다. 민병헌(두산)과 이용규(한화)이 테이블 세터를 이뤘다. 박석민(NC)이 3번 타순으로 올라갔고, 서건창(넥센)이 9번으로 내려갔다. 첫 선발 출전하는 최형우(KIA)는 7번타자였다.

효과는 있었다. 콱 막혔던 공격이 뚫렸다. 1회초 민병헌의 2루타 후 박석민의 적시타가 터졌다. 상위 타순으로 조정된 둘이 만든 선취 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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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약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네덜란드는 물론 대만민국도 상당히 괴롭혔다. 사진(고척)=천정환 기자


2회초에는 타순을 한 바퀴 돌았다. 양의지의 안타를 시작으로 무섭게 몰아치더니 대거 5점을 뽑았다. 천관위(1⅓이닝 4피안타 3실점)가 최형우의 타구를 맞고 교체되면서 대만의 마운드는 흔들렸다. 급하게 교체 투입된 궈진린(⅓이닝 2피안타 2사사구 3실점)은 이닝도 못 끝냈다.

한국의 초반 흐름은 분명 좋았다. 양현종(3이닝 5피안타 6탈삼진 3실점)이 2회말 수비 도움을 못 받으며 흔들렸지만, 3회말까지 탈삼진 6개를 잡으며 대만의 기를 눌렀다. 그리고 4회초 이용규-박석민-이대호(롯데)의 연속 안타로 2점을 추가했다. 스코어는 8-3.

지키는 야구와 함께 한숨을 돌릴 법 했지만, 58구 양현종의 강판 이후 대만의 반격이 거셌다. 9번타자 린저슈엔이 그 중심에 있었다. 2회말 사구를 얻으며 후친롱의 2타점 적시타의 가교 역할을 하더니 4회말 심창민(삼성)을 상대로 2점 홈런을 날렸다. 6회말에는 1사 1,2루서 적시타를 때려 대만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대만은 이후 후친롱의 적시타로 8-7까지 쫓아가더니 7회말 2사 후 가오궈후이의 2루타 및 천용지의 적시타로 기어코 8-8 동점을 만들었다. 한국은 심창민, 차우찬(LG), 장시환(kt)을 잇달아 투입했으나 대만의 공세를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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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9일 WBC 1라운드 대만전에서 4회초 8-3 리드 후 좀처럼 득점하지 못했다. 승부에 쐐기를 박을 찬스가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다. 사진(고척)=천정환 기자


한국은 결정적인 순간 한방이 터지지 않았다. 5회초 2사 1,2루-6회초 2사 2루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그에 따른 후폭풍은 거셌다. 흐름을 빼앗겼다. 심리적으로 쫓긴 건 한국이었다. 공격도 차단됐다.

9회초 2사 만루 찬스서 조급했다. 이용규는 천홍원의 초구에 반응했다(결과는 좌익수 뜬공). 부메랑이 날아왔다. 이현승(두산)은 9회말 첫 타자 쟝즈시엔에게 초구로 2루타를 맞았다. 한국은 부랴부랴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드를 꺼내고서야 불을 껐다.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간 한국은 천신만고 끝에 이겼다. 10회초 오재원과 손아섭의 연속 안타로 만든 1사 1,3루서 양의지가 외야 멀리 희생타를 날렸다. 그리고 대타 김태균이 천훙원과 풀카운트 끝에 쐐기 2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한국은 이번 대회 첫 아치를 그리면서 대만에 11-8로 승리했다.

이번 WBC는 한국에게 ‘서프라이즈’ 시리즈다. 긍정의 의미는 담겨있지 않다. 굳이 든다면, 이렇게라도 한국야구의 속살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감추기만 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알 건 알고 고칠 건 고쳐야 한다.

과거 어느 국제대회도 평탄한 길을 걸었던 적은 없다. 쉬운 상대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국이 이토록 힘을 쓰지 못했던 적도 없다. 그것이 한국야구의 현주소다.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달라질 준비를 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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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민국의 김태균이 9일 열린 2017 WBC 1라운드 A조 대만과 3차전에서 10회초 쐐기 2점 홈런을 터뜨렸다. 사진(고척)=천정환 기자


[rok1954@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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