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성희롱' 처벌 규정 없어…모욕죄 등 적용, 벌금형 그쳐
정치인은 조직 내 징계 있으나 마나…성희롱·막말 근절 안 돼
(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1년 8개월 전인 2014년 8월 2일 오후 9시 30분께 일본 카나가와현의 한 주점.
충북 충주시와 일본 유가와라정의 자매결연 20주년 기념행사 뒤풀이가 한창이었다.
두 도시 공무원과 언론인, 본행사 때 명예정민증을 받기로 한 윤범로 충주시의장 등 20명 정도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때 윤 의장은 사진을 담당하는 충주시청 여성 공무원에게 "평소 옷을 너무 타이트하게 입는 것 같다. (과거 행사 때) 사진을 찍는 네 뒷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 하고 싶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며 성희롱 발언을 했다.
모욕죄로 불구속 기소된 윤 의장에게 1심 재판부는 "공개된 자리에서 피해자에게 매우 수치스러운 언행을 했고,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면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조언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자 발언 강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로, 의도 자체는 적절한 복장을 하라는 지시 또는 조언으로 여겨진다"며 원심을 깨고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유예했다.
유죄는 인정됐지만 가장 가벼운 형태의 형이어서 피해자 입장에서는 사법부가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솜방망이' 항소심 결과에 피해 여성공무원은 억울해했지만, 대법원 상고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성희롱 발언을 엄격하게 제재할 수 있는 징계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추행과 달리 '신체 접촉이 없는' 성희롱은 형법상 처벌 규정이 없다.
피해자에게는 성적 언어폭력이 성추행만큼이나 수치스럽고, 정신적 고통이 클 수 있지만 현행 형법에서는 별도의 범죄 유형으로 정의하지 않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법에, 국가기관 등의 성희롱 예방 교육은 여성발전기본법에, 국가기관 등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피해자 구제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의존한다.
이들 법 역시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내부 징계나 과태료 처분만 규정하고 있을 뿐 형사 처벌 근거는 없다.
성희롱 사건인데도 검찰이 윤 의장에게 모욕죄를 적용, 기소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현행법상 성희롱 범죄는 사법부의 강한 처벌 의지가 없으면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려운 셈이다.
윤 의장과 같은 정치인들은 성희롱을 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더 많다.
공무원이나 근로자의 경우 조직 내 징계 절차를 통해 신분상 불이익을 받지만 정치인은 사실상 제재 수단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의원 신분이면 의회 윤리특별위원회에서 징계를 논할 수 있지만 동료 의원들로 구성된 터라 대부분 징계 없이 어물쩍 넘어가기 일쑤다.
정당에 가입해 있는 경우 제명 등의 조치가 있지만, 피선거권 자체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어서 효과가 제한적이다.
우근민 전 제주지사가 2010년 지방선거 때 성희롱 사건이 문제 돼 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박선영 선임연구원은 "사법부가 사회적 지위나 성희롱 사건 가해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피해자는 좌절감과 우리 사회에 대한 배신감에 두 번 울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희롱죄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직접적인 제재 규정을 담은 단일법을 제정, 성희롱 피해자 구제나 가해자 처벌의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현옥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현재로서는 성희롱 정치인에 대한 가장 큰 징계가 제명이나 출당인데 의원직 유지에 문제가 없고 지역 유권자에게만 잘 보이면 당선된다는 생각 때문에 별 효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일상적인 성희롱 문화를 해결하려면 형식적이 아닌 강제적인 교육이 필요하고, 정당은 공천 배제 등 정치인들을 제어할 강력한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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