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진은 수수께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어느 배우보다도 로맨스에 적합한, 사랑에 푹 빠진 눈빛을 하고 있는 이면의 얼굴은 누구보다도 차갑고 서늘하다. 생각해보면 박해진은 늘 그런 배우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순간순간의 박해진은 모두 다르다. 대한민국에 ‘연하남’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소문난 칠공주’ 속 연하남부터 ‘내 딸 서영이’ 속 밝고 고운 성품의 이상우, ‘별에서 온 그대’ 최고의 사랑꾼 이휘경, ‘닥터 이방인’ 위험한 남자 한재준, ‘나쁜 녀석들’ 소시오패스 이정문까지, 그는 늘 의외의 얼굴을 보여왔다. 그리고 박해진이라는 수수께끼는 ‘치즈인더트랩’의 유정선배와 드디어 만나 더욱 흥미진진한 미로 찾기로 변했다.
10. ‘치즈인더트랩’이 좋은 시청률을 얻고 있다.
박해진: 기대 이상이다. 사실 나는 첫 방송 시청률을 2.2%로 잡았다. 사실 2.2%도 낮은 수치가 아니다. 기대를 가지고 예상한 수치였다. 그런데 첫 방송 시청률이 3.6%라 기뻤다. 일단 시청률이 많이 나오면 정말 고맙다.
10. 드라마가 잘 되면서 좋은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최근 들은 말 중에 가장 기분 좋았던 말이 있다면.
박해진: ‘역시’라는 말이다. ‘역시’라는 게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싱크로율이 높다는 말은 좋기는 하지만 부담일 수 있다. 싱크로율만 높을 수도 있지 않나. 내가 생각하는 싱크로율은 캐릭터의 소화력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실제 유정 선배 같다, 웹툰을 찢고 튀어나온 것 같다, 2D를 이긴 3D 이런 칭찬 모두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10. 박해진이 생각하는 유정은 어떤 사람인가.
박해진: 안쓰러웠다. 사회적인 결핍이 있는 친구였다. 성장 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보듬어 주고 싶은 친구다. 다른 외적인 장애만이 장애는 아니지 않나. 성장 과정에서 장애를 겪은 친구를 보듬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유정이를 그렇게 품어준 사람이 바로 설이인 거다. 또 유정이를 알고, 서로 의지하면서 지낸 게 인호였다.
10. 유정은 홍설을 왜 좋아하게 된 걸까. 혹시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박해진: 유정이 설이에게 마음을 연 거다. 설이와 유정은 굉장히 예민한 동물이라 서로를 알아본 거고. 홍설은 웃음 뒤에 숨겨진 유정의 본성을 보자마자 느끼지 않나. 유정도 홍설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아챈 거다.
10. ‘치즈인더트랩’의 유정에게서 자꾸 ‘나쁜 녀석들’의 이정문이 겹쳐 보인다(웃음). ‘치즈인더트랩’의 서늘한 유정 선배 모습을 본 후 ‘나쁜 녀석들’로 역주행 하는 시청자들도 많다.
박해진: 유정이 이정문의 대학 시절이다, 그런 댓글도 봤다(웃음). 어떤 댓글에서는 내가 햇살을 받으면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가 찌를 것 같다고 하더라. ‘나쁜 녀석들’에서 오히려 내가 칼을 매일 맞았는데(웃음). 냉장고에도 뭔가 들었을 것 같다고 하고, 하하하.
10. 유정 특유의 서늘함은 목의 움직임에서 많이 느껴진다. 고개를 꺾거나, 살짝 목을 기울여서 사람을 쳐다보는 시선 처리라든지.
박해진: 맞다. 목의 움직임은 약간 의도적으로 연기하는 부분이다. 잡아먹을 것처럼 보는 것 보다 초점 없이 쳐다보는 게 오히려 더 큰 힘이 있다는 걸 이번 작품을 통해 터득했다. 방송 전에 티저 나왔을 때 설아, 하고 손을 내밀면서 유정이 쳐다보는 부분이 있다. 사실 그 장면은 설이를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는 건데 짜깁기를 했다. 화면 방향을 전환해서 마치 설이를 쳐다보는 듯이 편집으로 연출했다. 미세한 움직임일 수도 있지만 정확히 표현해야 하는 신에서는 그런 것들을 기술적으로 사용했다.
10. 계산된 서늘함이었던 거네.
박해진: 늘 의도하진 않지만 의도한 부분도 있다.
10. ‘치즈인더트랩’은 달콤하면서도 섬뜩한 ‘로맨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
박해진: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왔다. 요즘은 어떤 사람이 좀 이상하면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이런 표현 쉽게 쓰지 않나. 그래서 유정에게도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더라. 달콤한 장면 뒤에 어딘가 모르게 섬뜩한 장면이 나오지만, 특별히 유정은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
10. 유정의 입장에서는 유정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정의 입장에서 유정을 대변해 준다면.
박해진: 유정에게 의도적인 나쁨은 없다. ‘내가 이상해? 남들과 똑같이 나를 판단하고, 비웃고 외면하고. 내가 도대체 어디가 이상해?’ 이런 생각에서 ‘설아, 난 이상하지 않아’라는 대사가 나온 거다. 유정이도 되게 답답할 것 같다. ‘치즈인더트랩’은 성장통에 대한 드라마다. 아기 나무가 곧게 자라고 있고, 정말 바른 부모라면 잔가지들을 쳐가면서 나무가 곧게 자라도록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나무를 짓눌러 버리니까 비뚤게 자란 거다. 하지만 그 나무는 내가 왜 비뚤게 자랐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원래 그렇게 자랐으니까. 그리고 ‘치즈인더트랩’은 그 나무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드라마다.
10. 제작발표회에서 웹툰과는 또 다른 유정을 보여주겠다고 한 언급이 기억에 남는다. 의도대로 잘 표현된 것 같나.
박해진: 처음에는 웹툰에서 의상을 차용하기도 했는데 백구두처럼 소화하기 힘든 의상도 있더라(웃음). 웹툰을 전혀 참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신에서 느낌적인 것만 참고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상황적인 부분은 잊으려고 했다. 거기에만 갇혀 있고 싶지 않았다.
10. 드라마화와 함께 기대만큼 우려도 높았다. 원작 웹툰 팬들인 일명 ‘치어머니’들의 걱정이 컸다.
박해진: 기대를 하신 만큼 ‘그래, 한 번 보자. 우리의 ‘치인트’를 감히 드라마로? 어떻게 잘 만드나 보자’ 벼르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겁이 안 났다고 해도 거짓말이다. 겁도 났지만 그만큼 잘 만들고 싶었다. 많은 분들이 유정, 홍설, 백인호, 백인하 등 캐릭터와 작품을 정말 아끼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0. 3D 박해진 유정이 2D 웹툰 유정을 이겼다는 말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것 만큼은 3D 박해진 유정이 2D 유정보다 낫다는 게 있다면.
박해진: 패션 감각?(웃음).
10. 여자들에게는 내 남자에게 입히고 싶은 패션의 소유자다. 비결이 있다면.
박해진: 옷을 특별하게 입지는 않는다. 옷을 선택할 때 내 모토다. 어딘가 늘 모자란 듯이 입는다. 모자란 건 채울 수 있으니까. 옷이라는 게 패턴이나 소재가 금방 투 머치가 될 수 있다. 되도록 포인트는 하나에만 준다. 특히 옷을 많이 보는 편이다. 남성보다는 여성 패션을 많이 본다. 옷을 입기 위해서 참고하지는 않지만 평소에 입는 느낌들을 많이 보려고 한다.
10. ‘치즈인더트랩’은 박해진, 서강준, 남주혁 등 잘생긴 남자배우들이 끊임없이 바통터치하며 나온다고 해서 비주얼 돌려막기 드라마로도 불리고 있다. 혹시 알고 있나.
박해진: 들어 봤다. 그런 수식어 기분 좋다. 어리고 잘난 친구들과 함께 묻어갈 수 있다는 게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이 나이에 그 친구들과 또래 역할을 맡을 수 있겠나(웃음).
10. 나이 차이가 나는 배우들과 함께 있어도 위화감이 없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 건가.
박해진: 나이 차이가 안 날 수가 없다(웃음). 방송으로 봐도 형 같이 보이지만 10살 차이까지는 안 보인다는 것뿐이다(웃음). 제가 83년생이고, (서)강준 씨가 93년생이다. 이게 사전제작의 묘미 아니겠나. 신경을 안 쓰면 안 된다는 걸 스태프들도 안다는 거(웃음). 비결이라면 편집과 보정의 힘, 그리고 강준 씨의 힘이다. 강준 씨는 정말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교복을 입혀놓으면 10대 애기 같은데 전작에서 수염 붙이고 있으니 30~40대 얼굴 같더라.
10. ‘치즈인더트랩’은 반 사전제작으로 촬영됐다. 촬영 여건이 좋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시청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할 것 같은데.
박해진: 애초부터 사전 제작은 아니었다. 감독님의 요청과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80% 정도를 사전제작으로 촬영하게 됐다. 사전제작은 ‘나쁜 녀석들’에서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 다른 드라마 시스템과 비교하자면 정말 천국 같다. 드라마를 하면 매일 같이 나오지 않는 대본과 싸워가면서, 현장에서 대기하며 일주일에 3일 이상은 밤을 새야 하고, 배우들은 어쩔 수 없이 대본을 달달 외워서 해내야만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드라마는 90% 이상이 그렇게 제작이 되고, 그만큼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고생하시는 많은 분들이 노고가 있다. ‘치즈인더트랩’은 한 번도 밤을 샌 적이 없고, 대본도 빨리 나오는 편이라 여건은 참 좋다.
다만 피드백이 없다는 건 조금 힘들다. 드라마가 50% 사전제작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대본이 잘 나온다는 조건 하에서다. 16부작이면 8개 정도 촬영을 끝내놓고, 대본이 제 시간에 잘 나와서 1주일에 하나씩 촬영을 해 가면 8개를 방송분인 두 달에 맞춰서 잘 찍을 수 있다.
10. 홍설 역의 김고은과의 멜로 케미가 참 좋다.
박해진: 연기적인 호흡이 잘 맞는다. 거침없다. 빼는 것도 없고. 여자 배우 분들이랑 연기를 하다 보면 예쁘게 나와야 하니까 여러 가지에 제약을 느끼는데, 고은 씨는 그런 게 없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훨씬 큰 친구다. 연기적으로 배워야 할 게 많다 생각했다. 저는 드라마 밖에 안 해 봤는데 영화를 해봐서 시원시원하다는 느낌이다. 앵글을 크게 쓸 줄 안다. 상반신 샷을 찍는다고 하면 저희는 앵글에서 많이 빠지지 않지만 그 친구는 동작을 크게 하더라. 카메라 감독님은 힘드시겠지만, 화면에서는 정말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아, 그리고 밥을 정말 잘 먹는다(웃음). 전화 통화를 하면서 밥을 먹는데 정말 집에서 먹는 것처럼 먹더라. 개인적으로 먹방은 하정우 선배님 먹방처럼 보면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성공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은 씨 먹방을 보고 정말 먹고 싶더라. 잘 먹는다. 제가 여지껏 어떻게 해왔나 생각이 들었다.
10. 홍설에게 유정은 치즈일까, 트랩일까.
박해진: 제목을 굉장히 잘 지은 것 같다(웃음). 치즈일 줄 알았다.
10. 뭔가 의미를 내포한 대답인가. 섬뜩하다.
박해진: 치즈였으면 좋겠다는 거다. 치즈일 거라고 믿고 싶은 것 같다, 끝까지.
10. 바라는 결말이 있다면.
박해진: 해피엔딩이라고 다들 바라실 것 같다. 그래도 저희가 갑자기 애 낳고 잘 살 순 없으니까(웃음).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결말이 됐으면 좋겠다. 배우들끼리도 그냥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새드엔딩은 너무 슬프지 않나. 그냥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10. 유정에게 행복이란 뭘까.
박해진: 어른이 되는 것?
10. 유정이 어른 아이라고 느낀 대답 같다.
박해진: 대본을 보고 그렇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계산적으로 그런 행동들이 나올 때는 유정이 철저하게 나쁜 놈이 되는 걸 테니까. 유정의 행동은 전혀 계산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봤다. 내 여자친구니까 사탕 하나 더 주고, 너도 아프면 나도 아프고. 그런 생각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10. 최근에 팬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박해지니’ 이벤트가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박해진이 올해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박해진: 허리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여행은 여건이 되면 언제든 갈 수 있지 않나. 체력은 나쁘지 않은데 통증이 너무 힘들다. 허리가 아프니까 활동적인 걸 할 수 없다. 올해 허리가 말끔히 나을 가능성은 없지만 호전이 됐으면 좋겠다. 건강 말고는 일을 활발하게 하고 있고, 다음 행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치즈인더트랩’까지는 박해진의 범주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보이지 못했던 면을 더 보여드리고 싶다.
10. 벌써 데뷔한 지 햇수로 10년째다.
박해진: 예전만큼 가볍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앉아 있는 연기를 해도 그저 가만히 있는 것과 오도카니 있는 느낌은 다르다. 나이를 먹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만큼 존재감이 생기니까. 어려본 적 없는 거 아니니까,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연기를 할 거다. 다만 연기를 평생 할지는 모르겠다. 힘닿는 대로 한 번 해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멜로를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연기를 하고 싶다.
이 얘기는 계속 멜로를 할 수 있게 멋지게 늙고 싶다는 얘기다. 칠순에도 멜로는 있다. 연기를 하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해왔다. 원래 멜로 장르를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나이에도 설렘 같은 것들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든 내게 멜로를 보고 싶어 한다면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10. 아쉽지만 벌써 마지막 질문이다. 유정에게 치즈란, 그리고 박해진에게 치즈란 무엇인가.
박해진: 정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호도 인하도 다 치즈일 수 있었다. 전부 트랩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가뒀었다고 생각한다. 박해진에게 치즈란 멜랑꼬리한 것?(웃음). 치즈, 좋아한다.
장진리 기자 mari@
사진. WM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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