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프라코어 대규모 인력 감축… 오너 일가 33명은 수백억원대 배당금 챙겨
‘희망퇴직’! ‘원해서 회사를 나간다’는 단어의 뜻 자체는 오히려 여유롭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만큼 살벌한 말도 많지 않다. 우리는 쌍용자동차 등의 경험에서 희망퇴직의 맨얼굴을 봐 왔다. 바야흐로 구조조정의 시대다. 그러나 최근 수천명이 아우성도 못 치고 밀려나는 삼성 계열사에서 보듯 이 말이 곧 ‘직원 자르기’의 동의어처럼 통용되는 게 문제다. 더군다나 계열사는 인원 감축에 바쁜데 오너 일가는 배당 잔치와 고액 보수를 챙긴다면?
그렇잖아도 을씨년스러운 연말연시에 두산그룹의 ‘희망퇴직’으로 사회가 떠들썩하다. 2014년 말에만 적어도 200여명을 내보낸 두산중공업에 이어 2015년부터는 두산그룹의 2대 축인 두산인프라코어가 대규모 인원 축소에 나섰다. 2월 180명을 시작으로 9월에 200명, 11월에 450명을 내보냈고, 12월에는 700여명까지 1530명이 넘게 ‘희망퇴직’에 동의해야 했다. 한 직원은 “눈치가 보여 도장을 안 찍을 수 없는 분위기다. 지방발령 등 다른 조치가 뒤따를 게 뻔해 보여서”라고 말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2012년 4월 취임식에서 말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희망퇴직은 ‘직원 자르기’의 동의어
게다가 지난 8월 ㈜두산은 올해 실적 등을 감안해 배당금을 주당 4500원으로 더 올릴 방침을 밝혔다. 보통주 배당금만 총 421억원대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대로 현금배당을 하면 박용만 회장은 2015년에 39억원, 박정원 회장은 60억원 등으로 수억원씩 늘어난다. 두산이 2016년 초 이사회 및 정기주총에서 이를 승인할지 주목된다.
기업 실적은 나빠지는데 배당금은 늘어났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지배기업 소유주 지분 기준)은 653억원으로 2012년 954억원, 2013년 1235억원에서 급감했다. 올해 3분기 누적으로는 639억원 순손실을 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김모 회계사(44)는 “당기순이익에서 소유지분율만큼 계상하는데 두산의 경우 손실이 많이 난 자회사가 있어서 지배주주가 차지할 순이익이 2배 가까이 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특히 실적 악화, 심지어 적자가 나도 배당을 늘리는 건 제어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엄밀히 보자면 ㈜두산의 배당과 두산인프라코어의 실적 악화는 직접 관계가 없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배당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주주자본주의 원칙에 따라 이익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차원에서 배당을 늘려온 것”이라고 밝혔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최대주주는 두산중공업(지분율 36.4%)이고, 다시 두산중공업은 지분 36.8%를 가진 ㈜두산이 최대주주다. 즉 박씨 일가가 두산중공업을 한 다리 거쳐서 두산인프라코어를 지배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오너 일가가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난이나 인력 축소와는 무관하다고 한다면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등의 지원을 받아 오너 일가의 배당과 보수를 주고 있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배당과 별개로 ㈜두산의 경우 박용만 회장이 23억3200만원, 박정원 회장은 22억9800만원을 보수로 챙겼다. 이 안에는 상여금이 각각 9억원대씩 포함됐다. 회사 측은 사업보고서에 “재무·전략 성과는 물론 비계량 지표로서 ‘두산 웨이(way)’ 등 조직문화 창출에 기여한 점 등을 평가했다”고 밝혔다.
미국 건설장비사 인수 후 경영 어려워져
두산인프라코어는 근래 해마다 3000억원 넘게 영업이익을 내며 영업 자체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대규모 직원 자르기에 나선 이유는 뭘까. 경기침체 이외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2007년 건설장비 제조사 밥캣을 49억 달러(당시 약 5조원)에 인수한 것이다. 두산이 댄 자금은 두산인프라코어 7억 달러를 포함해 10억 달러(20.4%)뿐이다. 나머지 39억 달러는 산업은행(12억 달러)과 수출입은행(7억 달러), 우리은행, 신한은행(각 5억 달러) 등에서 빚을 냈다.
그동안 총부채가 2013년 7조9324억원에서 올해 3분기 8조5657억원까지 오히려 늘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자로만 2014년에 2876억원을 냈고, 앞서 2012년엔 7825억원이나 갚았다. 이자를 포함한 ‘금융비용’이 2014년 5800억원 나갔다. 영업이익은 2014년 4530억원, 2013년 3695억원씩 거뒀으나 이자를 갚는 데 거의 다 까먹고 2013년엔 1009억원 순손실까지 냈다. 2014년에 금융부채는 2조9344억원이었다. 이자율이 1% 올라갈 경우 293억원씩 손실을 보는 구조다. 이쯤 되면 밥캣 인수는 무리한 일이었다고 평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두산 측은 “최근에는 오히려 밥캣이 이익을 내는 ‘효자’가 됐다”고 반박했다.
선장(경영진)만 믿고 노 젓던 사공(직원)은 얼음짱 같은 강물에 내던져지고 선장은 잇속을 챙긴다면 배가 바로 갈 리 없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젊은 직원 일자리까지 자르면서 배당을 늘린다는 건 난센스 같다”며 “인적 구조조정은 경영자에게 최후의 카드가 돼야 하는데, 우리 기업은 첫 카드로 쓰는 경우가 많다. 사람 잘라서 이익을 내는 건 손쉬운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사람이 미래다’라고 홍보해온 두산이 ‘미래’를 해고하며 제 발목부터 잡는 짓일지도 모른다. 세간에는 ‘사모펀드에 매각할 때 몸값을 올리려 인력 감축에 나섰단다. 한 명 자르면 10억원을 챙긴다더라’는 따위의 솔깃한 소문도 무성하다. 직원 자르기보다는 박씨 일가가 앞서 책임지는 모습을 기다리는 건 너무 순진한 바람일까.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