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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야신의 지옥훈련…“부러진 방망이로 뗏목 만들어 도망가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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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토요판] 김양희의 야구광

김성근 감독의 스파르타 훈련


▶ 김양희 맨 처음 야구를 좋아했던 이유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쓴 일기장을 보면 꼭 그날의 야구 스코어가 적혀 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제주도에서 서울로 왔을 때도 맨 먼저 가고팠던 곳이 잠실야구장이었다. 혼자서 잠실야구장 구석에 앉아 캔맥주 들이켜면서 경기를 보곤 했다. 지금은 휴일에 아이들과 같이 야구장을 찾고는한다. 어쩌다 아들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야구 동화도 썼다. ‘김창금의 축구광’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번갈아 연재된다.

굴리고 또 굴린다, 공 하나에 다음은 없나니

“죽겠습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 중인 한화 이글스 선수들의 카카오톡을 통한 반응이다. 이마저도 나중에는 ‘…’로 바뀐다. 휴식 없이 계속 반복되는 혹독한 훈련에 할 말마저 잃어가는 듯하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기에 그럴까. 그리고 ‘야신’은 왜 중·고교 아마추어 선수도 아닌 프로 선수들을 굴리고, 또 굴릴까.

굴리고 또 굴린다

한화 선수들의 하루는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 아침을 먹고 짐을 챙긴 뒤 구장으로 이동한다. 공식 훈련시간은 아침 8시10분부터다. 야수 기준으로 1시간여 동안 간단한 몸풀기 훈련을 하고 9시40분부터는 본격적인 수비 훈련이 시작된다. 외야는 펜스 플레이, 송구 훈련 등을 하고 내야는 번트, 베이스 커버, 병살타 등 상황별 맞춤 훈련을 한다. 낮 12시10분부터 점심을 먹지만 딱히 점심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냥 훈련 중간에 짬짬이 먹는 밥이기 때문이다. 훈련시간이 하도 빡빡해서 밥도 허겁지겁 먹어야만 한다. 낮 12시50분에는 펑고 훈련(배트로 쳐준 타구를 이용한 수비 연습)이 시작된다. 타격 훈련은 오후 4시부터 시작된다.

저녁에도 편히 쉴 수는 없다. 오후 6시에 저녁식사를 하는데 이때도 일부는 ‘나머지 훈련’을 해야 한다. 저녁 뒤 다시 구장에서 이어지는 야간훈련은 1시간30분 정도 계속된다. 한때 김성근 감독과 함께 에스케이 전성시대를 열었던 이호준(NC)은 “그냥 계속 경기장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감독님 마음에 들 때까지 훈련을 해야만 하고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다”고 했다. 이진영(LG)은 “일본 고지 훈련 때 선수들끼리 농담 식으로 부러진 방망이로 뗏목 만들어서 도망가자고까지 했다. 오죽하면 그랬겠느냐”고 했다.

다른 팀은 3~4일 훈련 뒤 하루 쉬지만 한화는 4~5일 훈련 뒤 하루 휴식이 주어진다. 물론 휴식일에도 야간훈련은 있다. 김성근 감독의 훈련을 겪어본 선수들은 한목소리로 “다른 팀보다 3배 이상 더 훈련을 한다”며 혀를 내두른다. 물론 아마추어 선수들의 훈련시간보다 더 많다. 씻지도 못하고 유니폼을 입은 채로 그냥 잠이 들어버렸던 선수들도 여럿 있다. 이호준은 “버스 이동할 때 등 잠깐잠깐 사이에 눈을 붙이는 게 사는 길”이라고 했다. 최정(SK)은 김성근 감독이 집필한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이와우·2013)에서 “동트기 전 훈련을 시작해서 해가 완전히 진 다음에 훈련이 끝났다. 해가 지면 완전히 탈진해서 서부영화처럼 석양을 등지고 그 자리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고 회상했다. 3루에서 1루로의 송구가 엉망이었던 최정은 김 감독의 훈련을 토하고 실신하면서 견뎌낸 뒤 국가대표 3루수로 거듭났다.

부상을 입었다고 해서 열외는 없다. 김태완(한화)이 한 예다. 왼쪽 손목을 다친 김태완은 왼손 대신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고 수비 훈련에 임했다. 손이 아파서 송구는 할 수 없어도 수비 때 가장 중요한 무릎을 낮추는 훈련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자기 몸이 100%가 아니라고 물러서면 안 된다. 50%면 50% 안에서 100%를 하겠다는 정신으로 달려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화 재활조 선수들 중 하체가 아닌 손목 등을 다친 선수들은 훈련이 끝난 뒤 숙소까지 걸어가야만 한다. 이 또한 하체 단련을 위한 훈련이다. 하루 6~7명의 선수가 경기장부터 숙소까지 40~50분 남짓 걷는다.

김성근 감독은 왜 이처럼 선수들에게 많은 훈련을 주문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하는데 지금껏 그가 맡았던 팀들 대부분은 성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효봉 <엑스티엠>(XTM) 야구해설위원은 “역대로 보면 김성근 감독이 맡은 팀은 우승 전력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연히 많이 시킬 수밖에 없었다”면서 고등학교에 빗대 설명했다. “(4년 연속 우승한) 삼성은 특목고이고 한화는 성적이 안 나오는 일반고라고 치면, 수업을 똑같이 하면서 어떻게 특목고를 이길 수 있겠는가. 교장 선생님을 새롭게 모셔와서 보충수업도 시키고 좋은 선생님도 데려와서 수업을 알차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공부를 많이 시키면 일단 기본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수준이 있다. 이런 과정에서 클래스는 점점 올라가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 스스로 잠재력을 싹틔우면서 느끼고 깨치게 된다.”

김성근 감독의 훈련은 꽤 까다롭다. 수비 훈련 때 보면 선수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곳으로 계속 공을 보낸다. 한화 내야수 유니폼이 흙으로 뒤범벅되는 이유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빠른 타구를 날리기 때문에 눈보다 몸이 먼저 반응을 해야만 한다. 김 감독은 이렇게 반복학습을 통해 선수들로 하여금 실수를 줄여가는 과정을 겪게 하고 경기 때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게끔 만든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을 그저 ‘굴리지만은’ 않는다. 3~4일에 한 번은 야간훈련을 취소하고 선수들을 상대로 작은 강연을 한다. 강의의 주요 내용은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훈련을 해야 할까’이다. 이를 위해 김 감독은 첫 강의 때 선수들에게 ‘왜 야구를 하는지’ ‘야구선수로서 목표가 무엇인지’ 등 15가지 질문이 적힌 설문을 돌렸다. 선수들이 적어낸 것을 바탕으로 김 감독은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강의시간은 1시간~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김 감독의 강의 화두는 늘 ‘정신력’으로 흐른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야구가 바뀐다”는 것이다. ‘일구이무’(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의 정신, 즉 자신의 한계를 짓지 말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고도 강조한다.

‘야신’ 부임한 한화 이글스
8시10분부터, 점심밥도 짬짬이
왼손 다치면 오른손에 글러브
굴린다…굴린다…굴린다
저녁밥 먹고도 이어지는 훈련

‘비관론의 리더십’은
막무가내 스파르타 아니다
훈련 중 감독의 ‘작은 강연’
신뢰와 소통, 진한 동지애가
하위팀의 실력 상승 불러와


훈련 중에 답을 찾는다

이효봉 해설위원은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운동장 30바퀴를 뛰라고 주문하면 선수들에게는 불만만 쌓여갈 것이다. 하지만 운동장을 왜 뛰어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을 해주면 분위기부터가 달라진다. 훈련의 전제조건은 소통”이라고 했다. 머리로 납득된 훈련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진영은 “야간훈련 때 공을 1000개 치고, 하루 200개 이상 쇼트바운드 공 처리 대비 훈련을 했었다. 선수들이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성과는 많이 달라졌는데, 훈련이 많았던 것은 훈련 안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으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호준 또한 “본인이 훈련기간 내내 시간 때우기로 하면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고 그 속에서 생각하고 만들고 찾아내야만 한다. 더불어 감독님은 ‘우린 남들보다 두 배 이상 노력했기 때문에 분명 성적이 날 거야’라는 인식도 같이 심어주셨다”고 했다.

김 감독의 훈련 효과가 더욱 극대화되는 이유는, 김 감독이 수비 훈련 때 직접 펑고를 치거나 티볼(T자 모양의 대 위에 공을 올려놓고 쳐주는 방식)을 올려주는 데서도 기인하다. 감독이 코치 영역을 침범한다고도 볼 수 있으나 나이 지긋한 감독이 하루 1000개씩 공을 때려내고 티박스에서 공을 던져주는데 선수들이 꾀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프로에서 감독이 펑고 배트를 치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장면이다. 이효봉 해설위원은 “펑고라는 것이 받는 사람도 힘들지만 치는 사람도 아주 힘들다. 노감독이 솔선수범해서 맨 앞에서 움직이는데 코치, 선수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 훈련을 돕기 위한 몸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 수십 개씩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아령을 들고 근력 운동을 한다. 비가 와도, 어깨가 아파도 김 감독은 선수들과 늘 함께한다.

군대식 훈련량에 부정적인 시선도 물론 있다. 선수단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전이든비주전이든 똑같은 기준으로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한화에서도 이미 프로에서 검증이 끝난 김태균, 정근우가 갓 입단한 고졸 신인들과 함께 그라운드 위에서 똑같이 뒹군다. 하지만 김 감독에게 과거의 성과는 그저 ‘흘러간 물’일 뿐이다. 안주는 곧 퇴보라고 생각한다. 현 상황에 만족하지 말고 지금 위치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라고 채찍질을 한다. 한 은퇴한 선수는 “김 감독은 모든 선수들을 제로 베이스에서 보기 때문에 기존에 프로에서 잘했던 선수들은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의 훈련 방식을 따라가지 않으면 경기 때 기용되지 않는다. 공부 잘하는 학생인데 매일 과외시키고 쉬지도 못하게 하는 식으로, 프로에서 몇 년간 뛰어온 선수와 신인 선수에게 똑같은 훈련량을 주문하는 것은 좀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훈련량은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 또한 “훈련이 양적, 질적으로 괜찮아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있었다.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도움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 감독 밑에서 몇 년간의 호된 훈련을 견딘 선수들 사이에서는 진한 동지애가 생긴다는 점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사선을 같이 넘어온 이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끈끈한 전우애라고나 할까. 에프에이(FA) 계약으로 에스케이에서 롯데로 이적한 정대현은 “하루 종일 오직 동료들과 야구만 하면서 저절로 정이 두터워진 것 같다”고 풀이했다. 선수들은 “다른 팀 훈련 얘기를 들으면 경기에서 졌을 때 분한 면이 없지 않았다”(이호준)거나 “우리가 겨울 동안 얼마나 힘들게 훈련했는지 돌아보면 단내 나게 훈련한 게 억울해서라도 경기에서 절대 지고 싶지 않다”(정근우)고 말한다.

그렇다면 많은 훈련량이 다음 시즌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을까. 김 감독이 부임하기 직전과 직후의 팀 성적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승률 3~4할의 팀을 1년 만에 승률 5할 이상의 팀으로 올려놨다. 성적이 밑바닥에 있는 팀일수록 더욱 탁월했다. 첫 프로 사령탑으로 부임했던 오비(OB·두산 전신)는 전년도에 승률 0.444(5위)를 기록했으나 김 감독이 지휘한 첫해(1984년) 승률이 0.586(3위)으로 뛰었다. 1988년 팀 승률 0.319(7위·꼴찌)였던 태평양은 이듬해 승률 0.533(3위)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쌍방울 또한 김 감독이 지휘한 첫해(1996년)에 전년도 승률 0.369(8위·꼴찌)의 치욕을 씻고 정규리그 2위(승률 0.563)로 당당히 가을무대에 올랐다. 2002년 엘지 또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에스케이도 부임 직전 승률이 0.480(6위·2006년)이었다.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하던 삼성(1991년)에서만 전후 승률이 비슷했다.

소모품 선수는 없다

김성근 감독은 스스로 “비관론의 리더십”을 이야기한다. 늘 최악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최악을 생각해야만 남보다 더 치열하게 준비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훈련을 독려하면서 1·2군 선수들 사이의 실력차를 줄이려고 한다. 경기 때 강한 승부사적 모습을 보이는 것도 훈련량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한계 그 이상까지 혹독하게 몰아붙인 선수들에게 ‘승리’라는 보상을 해주기 위해 김 감독은 치밀하게 전략을 짜내고 끝까지 악착같이 상대 팀을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때로는 냉혹해 보이기도 한다.

꼴찌 한화의 올해 승률은 0.389였다. 지난 6년 동안 승률 5할을 넘긴 적이 없다. 그럼에도 삼성 류중일 감독을 비롯한 여러 사령탑들이 내년 시즌 경계 대상 1호로 주저없이 한화를 꼽는다. 김성근 감독이 훈련의 양과 질로 바꿔놓을 한화가 그만큼 두렵기 때문이다. “세상에 소모품 인간은 없다. 소모품으로 쓰려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 자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상 하려는 의지가 있는 선수라면 리더는 어떻게 해서든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모든 선수들이 다 유용하다. 모든 선수들에게는 그들 각자가 자신만이 가진 쓸모가 있다. 그걸 끝까지 찾아주는 것. 그리고 끝까지 유용함을 살려주는 것. 그 사람의 그 능력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참모습이다.”(김성근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부분)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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