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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냉정한 아버지’ 허재, 아들 지명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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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허재 KCC감독, 김지후 지명

아들 허웅은 동부 유니폼


케이씨씨(KCC)가 17일 열린 프로농구(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 지명권을 얻는 순간 허재(49) 감독은 알 듯 모를 듯 한 미소를 지었다. 4순위는 그의 아들 허웅(21·연세대)을 뽑을 수 있는 순번이었다. 허웅은 드래프트를 앞두고 1라운드 3~4순위 안에 지명될 능력이 있는 선수라고 평가받아왔다. 허재 감독이 집이 아닌 팀에서도 아들과 한솥밥을 먹을지 관심이 집중됐다.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오리온스가 2014 대학농구리그 최우수선수인 고려대 파워포워드 이승현(22)을 지명한 데 이어, 2순위 삼성이 연세대 센터 김준일(22)을, 3순위 전자랜드가 한양대 파워포워드 정효근(21)을 잇따라 지명하자 긴장감이 고조됐다. 4순위 케이씨씨의 허 감독이 선수를 지명할 차례가 왔기 때문이다.

그는 단상에 오르자마자 망설임 없이 고려대 슈팅가드 김지후(22)를 호명했다. 기대감에 들썩였던 체육관에선 아쉬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허 감독이 단상에서 내려간 뒤 5순위 동부의 김영만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연세대 허웅”을 외쳤다. 순간 카메라에 비친 허 감독은 입술을 다문 채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허 감독의 부인이자 허웅의 어머니인 이미수씨도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 허웅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게 해주신 어머님과 아버님께 고맙다”고 소감을 말한 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 허웅이라는 제 이름으로 당당하게 가치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당찬 프로 데뷔 각오를 밝혔다.

키가 185㎝로 허 감독보다 3㎝ 작은 허웅의 포지션은 아버지와 같은 슈팅가드다. 그는 아버지처럼 용산고 재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아버지의 모교인 중앙대로 진학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연세대를 택했다. 이미 대학에서부터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연세대 슈터로서 2014 대학농구리그 정규리그에서 평균 14.1득점, 3.1튄공잡기, 1.8도움주기를 기록했다. 3학년이지만 주득점원으로서 큰 몫을 했다.

허웅은 드래프트에 나서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다. 다른 선수들처럼 졸업한 뒤에 프로에 가는 게 옳은지 신청 마감 전날까지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상의한 끝에 은희석 연세대 감독을 찾아갔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빨리 프로에 가서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은희석 감독은 허웅의 조기 프로 진출을 반대했다. 3학년이지만 리더로서의 자질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아버지 허 감독의 카리스마가 넘쳤던 선수 시절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은 감독은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 아쉽다. 훈련도 열심히 하고 모범적인 역할을 해 동료들의 귀감이 됐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후배들이 규율을 어겼을 때 따끔하게 혼내는 역할까지 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허웅이 아버지에 대한 얘기는 한번도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드래프트 행사가 끝난 뒤 허 감독은 “지후나 웅이나 누가 와도 괜찮았다. 웅이가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한 팀에서 뛰는 것도 좀 그렇지 않으냐”며 멋쩍게 웃었다. 허웅은 “아버지가 지명할 차례가 됐을 때 당연히 기대했지만 (아버지는) 냉정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허재 감독의 케이씨씨와 아들 허웅의 동부는 시즌 개막전인 다음달 11일 전주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이재만 기자 appletr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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