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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벽을 뚫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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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쿼시 단체전 박은옥·송선미, 아시안게임 사상 첫 銀 도전

광저우 땐 단체전 첫 동메달 "고된 훈련 보상 받고 싶어"

29일 경기도 군포의 한 스쿼시 훈련장. 가슴팍에 태극 문양이 박힌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여자 스쿼시 대표팀 박은옥(37·광주체육회)과 송선미(24·경남체육회)가 쉴 새 없이 벽면을 향해 공을 쳤다. 지름 4㎝가량의 검은색 공은 탄환처럼 빠르게 벽을 향해 날아갔고, 선수들은 삑삑 신발 소리를 내며 공을 쫓았다. 사전에 동선을 짠 듯 서로 엉키지 않고 공을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0분쯤 지나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된 박은옥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스쿼시는 테니스와 다르게 상대 선수가 옆에 붙어서 싸우기 때문에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곁눈질하는 게 중요해요. 쓰러질 것처럼 힘들어도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라면 숨소리까지 참아야 하죠."

스쿼시는 가로 6.40m·세로 9.75m·높이 4.57m의 반코트에서 서로 벽을 본 채 공을 주고받는 라켓 종목이다. 테니스처럼 공이 바닥에 두 번 바운드 되기 전에 치지 못하면 실점이 되며 5세트 3선승제로 승부를 가린다. 세트마다 11점을 먼저 얻어야 이긴다.

조선일보

인천아시안게임에 나서는 스쿼시 여자 국가대표 박은옥(왼쪽)과 송선미가 29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 그린힐스포츠클럽에서 라켓과 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지호 기자


한국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스쿼시 단체전에서 은메달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홍콩 등 세계적 강호들과의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한국으로선 은메달도 쉽지 않다. 하지만 4년 전 광저우 대회에서 아시안게임 첫 여자 단체전 동메달을 합작한 박은옥·송선미를 중심으로 '깜짝 이변'을 노리고 있다. 단체전은 3명씩 출전해 상대팀과 한 차례씩 단식 경기를 치러 2승을 거둔 팀이 이긴다. 한국 여자 대표팀은 이번에 양연수(22·인천체육회)까지 3명이 단체전에 나설 예정이다.

사상 첫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꿈꾸는 '맏언니' 박은옥의 어깨가 무겁다. 박은옥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부터 매 대회 빠짐없이 출전한 베테랑이다. 이번이 5회 연속 아시안게임 출전(한국 선수단 중 최다 출전 기록)이다.

박은옥은 원래 배드민턴 선수로 시작해 대학교도 배드민턴 전공으로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인 1996년 취미로 시작한 스쿼시에 빠지면서 그해 아예 스쿼시로 전공을 바꿔버렸다. 홍콩·유럽 등 해외 대회에 출전하려면 500만원 가까이 드는 출전 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박은옥은 낮에는 서울과 경기도 일대 스쿼시장을 다니며 강습을 하고, 밤에 훈련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200만원 안팎의 한 달 수입을 모아 투어 비용을 마련하는 힘든 생활이 10년 가까이 이어졌지만 한 번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쿼시만 생각하면서 살다 보니 아직 결혼도 못했어요. 벌써 다섯 번째 아시안게임인데 이번에 은메달 이상 성적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습니다."

송선미는 박은옥 외에 이렇다 할 여자 선수가 없는 한국 스쿼시에 단비 같은 존재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았던 송선미는 뛰어난 운동량과 남다른 근성으로 박은옥을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월 훈련 도중 오른쪽 발목 인대가 끊어졌지만 피나는 재활 훈련으로 5개월 만에 대표팀에 합류했다.

박은옥과 송선미는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축구 대표팀이 했던 일명 '삑삑이(셔틀런·구간 왕복 달리기)'를 매일 반복해 왔다. 송선미는 "셔틀런만 생각하면 아직도 속에서 헛구역질이 나는 것 같다"며 "힘들게 해온 훈련을 생각해서라도 반드시 메달을 딸 것"이라고 말했다.



[산본=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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