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적이고 동지인가
탐욕 앞에 가족도 없다
현실 뺨치는 '쩐의 전쟁'
탐욕 앞에 가족도 없다
현실 뺨치는 '쩐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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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후계구도를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을 그린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 외동딸 이요원(왼쪽)이 남자 형제들을 물리치고 후계자로 낙점되자 가족들의 반란이 일어난다. 이요원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가난한 집안 출신의 사업가 고수(오른쪽)와 정략결혼을 감행한다. [사진 SBS 콘텐츠허브] |
SBS ‘황금의 제국’이 화제다. 월·화 드라마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추적자’의 박경수 작가와 조남국 PD가 다시 손을 잡았다. 유산 분배를 둘러싼 재벌가 형제들의 혈투, 거기에 신분상승을 꿈꾸며 뛰어든 야심가 청년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무한욕망을 정조준한 가족·정치·경제 드라마다. 페이스북 ‘드라마의 모든 것’ 팀이 진행하는 ‘드라마 썰전(舌戰)’의 아이템으로 선택한 배경이다.
◆‘제2의 추적자’로 손색 없어=방송 초기 ‘황금의 제국’은 선악의 혼재, ‘추적자’의 ‘서민 영웅’ 손현주의 이미지와 ‘황금의 제국’ 캐릭터의 충돌(탐욕스런 재벌2세 민재로 출연), 강약조절 없는 숨가쁜 전개로 시청자를 끄는 데 실패했다. 시청률도 KBS ‘굿 닥터’에 밀렸다. 그러나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얘기가 탄력을 받고 있다. 소재와 형식, 대본과 연출 등에서 한국 TV 드라마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다.
‘추적자’ 작가·PD 빼어난 호흡 보여줘
드라마는 성진그룹 회장 최동성(박근형)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외동딸 서윤(이요원)이 장남을 제치고 후계자로 낙점되자 다른 형제들, 새어머니(김미숙), 사촌오빠 민재(손현주) 등이 반기를 든다. 급기야 서윤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성진그룹에 복수심을 불태우는 부동산개발업자 장태주(고수)와 정략결혼에 나선다.
드라마는 매회 이들 가족의 이합집산과 권력투쟁을 그린다. 순간순간 적과 동지과 바뀌고, 음모와 배신이 난무한다. 여기에 주가조작, 신도시 개발, 지주회사 설립, 정경유착 등이 겹쳐진다. 단순한 재벌 소재 드라마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한 보고서다.
◆‘말의 성찬’ 새로운 장르의 탄생=가족간의 살벌한 다툼은 주로 평화로운 식탁에서 이뤄진다. “사인 하나로 수조 원의 투자가 결정되고, 말 한마디로 수천 억의 현금이 오가고, 식탁 앞에서 백화점의 주인이 바뀌는, 그곳은 황금의 제국!” “그들이 같은 식탁에 앉는 건 가족이라서가 아닙니다. 먹잇감이 식탁에서 오가기 때문이죠.” “행복한 식탁과 성진그룹 둘 다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태주의 대사)
드라마는 중반 이후 식탁·사무실 등 제한된 공간 안에서 진행된다. 부감(俯瞰·위에서 내려다보는 카메라 앵글)과 플래시백(flashback·과거 회상) 화면은 공간의 한계를 넘고, 드라마에 냉정한 관조의 이미지를 불어넣는다. 매번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는 빡빡한 구조지만, 핑퐁식 호흡에 가슴을 찌르는 대사, 예측불허 반전의 쾌감이 크다.
김영찬 외국어대 교수는 “루이 말 감독의 ‘앙드레와의 저녁식사(My dinner with Andre)’류의 ‘토크 무비(Talk Movie)’에 견줄 수 있는, 한국 TV 드라마의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라고 평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밥 먹는 장면을, 내러티브의 결정적 변곡점마다 등장시키면서 가족 코스프레(흉내)하는 욕망의 화신들끼리 말로 서로를 짓이기고 욕보이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놀라운 수완의 드라마”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처럼 말로만 요절내는 드라마가 국내에 또 있었던가. 이는 김수현 드라마와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했다.
손병우 충남대 교수는 “아이구, 성진시멘트 가시는 길 배웅하러 왔습니다”(태주)와 “돌아올 때 마중도 나와야지, 태주야”(민재), “거 반성은 혼자 있을 때 합시다”(태주)와 “오빠, 다짐은 일기장에 쓰는 거야”(서윤) 등 대구법의 묘미를 살린 대사를 주목했다.
◆살아있는 캐릭터=무엇보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권력투쟁의 전면에 여성을 배치했다. 서윤은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아니라 스스로 정략결혼을 택한다. 정치적 판단과 지략에서는 여느 남성보다 뛰어나다. 죽은 전 남편의 복수를 위해 최동성의 두 번째 아내가 된 한정희(김미숙)도 마찬가지다.
귀족적 외모의 이요원은 서윤의 차가운 긴장감을 제대로 표현해냈다. 27년간 정체를 숨겨온 김미숙 역시 “악역 연기의 진수”(공희정 드라마평론가), “미소 연기의 다양한 구질”(손병우)을 선보였다.
권력투쟁에 몸 던진 여성 캐릭터 호평
‘추적자’가 딸을 위한 아버지의 복수극이었듯 “‘황금의 제국’에서도 아버지는 주요한 테마”(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다. 아버지의 대리인이자 죽은 아버지의 위치를 지키려는 서윤, 그 자리를 빼앗아 스스로 아버지가 되려는 아들은 물론이고 태주도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이 전쟁에 뛰어든다. 한정희는 친아들 성재(이현진)에게 친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강요한다. 모두의 욕망의 근간에 ‘아버지’가 있는 것이다.
성재는 최동성의 아들로 키워졌지만, 출생의 비밀이 있다. 극중 유일하게 권력욕이 없고, 복수를 거부하며, 서윤을 연민한다. ‘황금의 제국’의 돌연변이 같은 성재가 대물린 탐욕의 고리를 끊는 결정적 역할을 맡게 될지 막판 관심이 몰리고 있다. 24부작 미니 시리즈도 매회 영화 못잖은 긴장감을 담을 수 있다는 모델로 기억될 것 같다. 17일 종영.
'황금의 제국' 말말말
▶최동성(박근형)=“좋은 사람이 되지 마라. 남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라.”
▶장태주(고수)=“그들이 같은 식탁에 앉는 건 가족이라서가 아닙니다. 먹잇감이 식탁에서 오고 가기 때문이죠.” “착한 놈은 못 버텨. 모진 놈이 이기고, 제일 뻔뻔한 놈이 다 먹는 세상.”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가 아니듯 성공한 사기는 사기가 아닙니다” “욕심을 이기는 건 더 큰 욕심입니다”
▶최서윤(이요원)=“설득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힘으로 하는 거죠.” “이쪽 결혼이 다 그래요. 필요한 사람과 한 방을 쓰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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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희정 드라마평론가):흔한 사랑타령이 없다. 비열할 수밖에 없는 자본의 논리를 집중적으로 그려낸다.
★★★★☆(양성희 기자):거래와 음모,배신과 탐욕이 부딪히는 ‘식탁 토크’ 만으로도 오랫동안 회자할 만하다.
정리=양성희 기자
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양성희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cooli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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