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33년간 한센인 무료 치료 “의사 본분 다했을 뿐”

경향신문
원문보기

33년간 한센인 무료 치료 “의사 본분 다했을 뿐”

속보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 19년 반 만에 2%로 상승
치과의사 강대건씨 교황청 십자가 훈장
“그런 상을 주신다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영광입니만, 저는 치과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한 것뿐입니다. 의사의 본분은 가난한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의술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겸손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세상의 칭찬과 이목을 어색해했다. 과거 ‘문둥이’라며 외면당하던 ‘한센인’들에게 남몰래 무료 의술을 베풀어온 세월이 33년. 교황은 그런 그에게 11일 염수정 대주교를 통해 ‘교회와 교황을 위한 십자가 훈장’을 수여한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취임 후 한국 평신도에게 십자가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치과의사 강대건씨(81·사진). 9일 찾아간 그의 병원은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입구의 허름한 3층 건물 2층에 있었다. 낡은 시멘트 계단과 접한 병원 안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지만 에어컨, 책상 등 실내 용품은 모두 사용한 지 수십년 된 것들이었다. 검소한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1957년 서울대 치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을 거쳐 1964년 서대문에 개업할 때만 해도 그는 평범한 치과의사였다. 그런 그가 한센인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79년 봄. 그는 “가톨릭 신자로 구성된 기공사, 치과위생사들의 모임이 나에게 봉사활동을 하자고 제안하면서 이들과 함께 그해 ‘녹야회’라는 단체를 구성해 주말마다 한센인 정착촌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한센인이 드나들면 병원이 망한다는 인식이 커서 의사들은 한센인들을 문전박대하며 내쫓기 일쑤였다.

월~토요일은 서대문에서 일반 환자들을 진료하고 일요일엔 버스나 기차를 타고 경기도 포천과 안양,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등을 오르내리며 한센인들을 보는 일이 반복됐다. 분란을 일으킬 것 같아 처음엔 아내에게도 비밀로 했다. 뒤늦게 안 아내는 결국 남편을 이해하고 인내해줬다. 그는 “두려움과 내적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코가 문드러져 없어지고 진물이 흐르는 그분들의 기형적인 얼굴을 처음 봤을 땐 나 역시 섬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는 “그것을 극복하게 해준 힘은 믿음이었다”고 말했다.

“태연한 척해도 속으로는 감염에 대한 공포가 있었지요. 치료하다보면 피가 날 수도 있고…. 그래서 수술용 고무장갑 속에 손가락마다 하나씩 끼는 두꺼운 손가락장갑을 구입해 착용했어요. 초기엔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지요. 그런데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제 신념과 조물주를 믿었습니다. 틀니를 한 후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그분들의 모습도 이 일을 멈출 수 없게 했지요.”

치료비는 무료, 틀니만 약간의 실비를 받았다. 기공소에 맡기면 기공료가 비싸 환자들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그는 직접 틀니를 제작해 5만원, 나중엔 10만원씩 받고 시술했다. 그나마도 교통비와 기공료를 제외하고 남은 돈은 모두 한센인 정착촌에 기부했다. 그렇게 그가 지금까지 치료한 한센인이 1만5000여명이다. 전국 가톨릭 한센인들은 기력이 쇠해 지난해를 끝으로 봉사활동을 접어야 한 강씨에 대한 마음의 표시로 지난 5월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지난 세월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조물주께서 이 일을 시키기 위해 나를 보내셨던 것 같아요. 보람 있는 시간들이었지요.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어요.”

<글 박주연·사진 김창길 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