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상수동 소재 빌라에 세들어 살고 있는 김모씨(50)는 2010년 12월 전세 계약 당시 전세권을 설정하려 했으나 해당 공인중개사가 "전세권 설정은 등기비용이 많이 드니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으면 된다"고 권하는 바람에 전세권 설정을 미뤘다.
당시 서류상에도 전세금(1억원)보다 앞서는 근저당은 2000만원밖에 없었고 3억원 이상 매매가가 형성돼 있어 안심하고 계약했다.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1억2000만원 이상에만 낙찰되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입주후 8개월이 지나고 경매에 넘어간 집은 2억1000만원에 낙찰됐다. '확정일자'를 받았기에 당연히 전세금을 돌려받을 것으로 여긴 김씨는 이후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들었다. 전세금 중 3400만원만 배당받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집주인이 전세 계약을 맺은 날 김씨 몰래 1억2000만원을 은행에서 대출받고 채권 최고액 1억5600만원짜리 근저당권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확정일자 효력은 다음날부터 발생하기에 은행 대출보다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결국 김씨는 전세권 설정을 하지 않아 76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최근 집값이 하락하고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깡통전세'(주택담보대출금액과 전세금을 합한 금액이 경매 낙찰가보다 높은 경우) 공포가 커지고 있다. 전세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은 자산의 상당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보증금을 지키려는 노력도 이전보다 치열해졌다.
하지만 많은 세입자들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수령만으로 모든 것이 보호되는 줄 알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 '확정일자'는 기초적인 보호방법일뿐 법원에서도 전세권 설정과 같은 등기 권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확실한 방법이라고 명시하고 있을 만큼 불완전한 보호방법이다.
◇"경매주택 전세 세입자 10명 중 8명은 보증금 떼인다"
24일 법원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이 올들어 경매장에 나와 낙찰된 수도권 소재 주택(아파트·다세대·다가구) 물건 1만2171개를 조사한 결과 이중 세입자가 있는 물건수는 7235개, 세입자 보증금이 전액 배당되지 않는 물건수는 5738개로 집계됐다.
경매주택 세입자 중 79.31%가 보증금을 온전히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양상은 △2010년 74.99% △2011년 75.55% △2012년 76.31% 등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임차보증금 미수 비중이 늘고 있는 원인은 수도권 소재 주택시세가 크게 떨어진 후 좀처럼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정대홍 부동산태인 팀장은 "집값이 떨어지면서 낙찰가율도 동반 하락해 보증금을 다 못 돌려받는 일이 늘고 있다"며 "전·월세 계약후 확정일자만 받아두면 보증금 전액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입자들이 많은데 실제론 소액임차인 최우선변제금만 보전된다"고 설명했다.
◇'확정일자'의 오해와 진실
확정일자는 법원이나 등기소, 공증기관, 읍·면·동사무소 등에서 받는 것으로 임대차계약이 체결됐음을 증명하는 일종의 요식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가 날인된 경우 이 날짜는 향후 주택이 경매 또는 공매 처분될 경우 후순위 권리자보다 앞서서 보증금을 배당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확정일자는 임차주택이 경매나 공매로 매각될 경우에 확정일자로서의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지, 일반 매매에 있어선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일반 매매로 거래되면 확정일자를 받았더라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우선적으로 변제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영진 이웰에셋 대표는 "세입자의 대항력은 임대차계약 체결후 전입신고와 입주를 마무리하면 생기는 것으로 확정일자 구비 여부와 상관없다"며 "전입신고와 입주전 확정일자를 미리 받는다고 해도 배당 순위는 대항력 발생일을 기준으로 정해진다"고 말했다.
반대로 대항요건을 먼저 갖추고 나중에 확정일자를 받는 경우에는 확정일자를 부여받은 날을 기준으로 배당순위가 매겨진다.
결국 확정일자를 부여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입자가 배당받기 위해선 경매법원이 정한 배당요구기한(통상 경매물건 매각공고가 있기 한달 전까지) 내에 해야 한다. 기한을 지나서 배당요구를 하면 배당을 받을 수 없다.
임대차계약 연장으로 보증금이 오른 경우에도 증액분에 대해 확정일자를 다시 받아야 한다. 이때 확정일자보다 앞서 근저당권이 설정된 경우 증액된 보증금의 배당순위는 이들 권리보다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이 대표는 "김씨의 사례처럼 전입신고한 당일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버린다면 임차보증금의 변제 순위는 근저당권 뒤로 밀린다"며 "전입신고나 확정일자와 달리 근저당권은 설정 당일부터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송학주기자 hak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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