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대근 앵커
■ 화상연결 : 최말자 재심 청구인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라이더]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1964년, 열여덟 살 소녀가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해자는 성폭력 처벌을 받지 않았는데 오히려 피해자는 남성에게 장애를 남겼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와 결혼하면 해결되지 않냐"는 등 검찰, 재판부, 언론 등의 2차 가해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무리 오래 전 일이라지만 "그땐 다 그랬다"라는 말로 세월의 상처를 묻을 수 있을까요?
59년 전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씻기 위해 재심을 청구하고 3년째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오늘 뉴스 핵심 관계자 시간에는 당사자인 최말자 씨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최말자]
안녕하세요. 최말자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단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한 이후에 어느새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한데요. 건강은 좀 괜찮으세요?
[최말자]
주위에서 모두 다 도와주는 덕분에 이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앵커]
지난달 31일에, 지금 저희 사진으로 이렇게 보여드리는 것처럼 대법원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셨는데 31일에 있었던 시위가 재심을 촉구하는 마지막 시워였다고요?
[최말자]
네.
앞으로는 추가적인 계획은 없으신 건가요?
[최말자]
글쎄요, 지켜봐야죠. 대법원에서 어떻게 나올 것인지.
[앵커]
이런 진심을 대법원에서도 받아주기를,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기억하고 싶지는 않으시겠지만 1964년으로 잠깐 가보겠습니다. 당시에 선생님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셨어요. 그런데 가해 남성보다 이게 더 무거운 처벌이었습니다.
가해 남성 같은 경우에는 선생님 가족에게 행패를 부렸다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았습니다. 강간미수 관련해서는 재판도 받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 갖고 계신가요?
내가 수차례 얘기하지만 법을 다스리고 나라를 지켜야 될 관청에서 내 사건을 한 가지만 보더라도 잘못됐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헌법은 정의롭고 평등하고 우리 국민들은 법을 지키고 생활하고 살고 있는데 법의 지켜야 할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 않았어요. 법을 남용하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었고 그렇게 자기들 마음대로 이용하고 악용하고 마음대로 그렇게 법을 남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현재도.
[앵커]
그런데 또 놀라웠던 게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이게 수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6개월 동안 구속까지 되셨다고요? 이건 왜 그런 겁니까?
[최말자]
경찰서에서는 한 2개월 조사를 해서 정당방위를 해서 무죄로 검찰에 송치했어요. 그랬는데 검찰에서는 아버지하고 나하고 조사받으러 오라고 소환장을 받고 검찰에 갔는데 그날 아버지는 밖에 있고 나는 조그만 방에 가둬놨어요. 그래서 들어가서 뭔지 모르고 둘러보니까 한 평쯤 되는 방에다가 문을 탁 닫는데 쇳소리가 나서 뭔가 하고 둘러보니까 한 평쯤 되는 방에다 가뒀어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오라고 해서 나가니까 그때부터 수갑을 채웠고 그날 조사를 하고 그날 저녁에 교도소를, 차에 태워서 여자 죄수들 손을 줄로 쭉 묶어서 버스 태워서 교도소로 데리고 갔어요. 그 길로 구속된 거죠.
[앵커]
그렇게 조사도 받고 재판까지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도 왜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냐, 이런 식의 얘기를 들으셨다고요? 지금 기억에 남는 얘기들이 있습니까?
[최말자]
엄청 들었죠. 처음에는 한두 번 내가 얘기한 대로 조사를 했어요. 했는데 그후로는 여러 수십 번을 압박, 억압, 욕 말할 것도 없이 이 가시내야, 왜 남자를 병신불구로 만들어놓고 왜 책임을 안 지려고 하나. 책임져라. 그래서 내가 몇 마디 하면 나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러고 눈 감고 가만히 있었는데 눈 감았다고 욕하고 막 주먹을 가지고 내 얼굴을 치지 않았다뿐이지 손가락을 가지고 바른 말 안 하면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막 말도 못하게 윽박했죠. 합의하라고 하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데 합의합니까? 나는 죄 안 지어도 이렇게 들어왔는데 죄가 있으면 죄를 받겠다고, 나는 합의 못합니다, 그랬죠.
[앵커]
법원에서도 입을 맞추는 한 데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 이런 얘기를 들으셨습니까?
[최말자]
온갖 소리를 다 꾸몄겠죠. 여자를 조롱하듯이 그 18살 어린 게 세상물정 모르고 아버지도 무지한 농사꾼이고 이러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온갖 욕설, 폭언 말도 못하죠. 그거 어떻게 말을 다 하겠습니까? 그 수모와 치욕 그런 건 어떻게 다 말할 수가 없어요. 그 억울함하고 그 사건 당시 일어난 일하고 그 두 가지가 너무 억울해서 제가 평생을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어요.
[앵커]
그러셨군요. 6개월 동안 그렇게 옥살이를 하고 결국에 집행유예로 석방돼서 이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마는 이후에도 동네 사람들 시선 때문에 숨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씀하신 걸 들었습니다. 그렇게 56년의 시간이 흐르고 2020년 5월에서야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최말자]
있죠. 제가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어요. 그런데 너무 공부에 한이 있어서 육십 중반부터 공부를 했어요. 중고등학교 3년을 하고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를 가서 그때가 4학년인가 3학년인가 모르겠는데 성, 사랑, 사회라는 교재를 보고 그 안의 내용을 보니까 교수님이 방통대는 영상 공부를 해요. 그렇게 하면서 내가 열 번도 들은 게 그걸 보면서 보충설명 하는 성폭력, 가정폭력, 옛날 남자들의 고정관념으로 교재에도 실렸지만 엄청 여자의 인권에 대한 게 조금도 없었어요.
그리고 평등하다는 것도 그 교재를 보면서 알았고 또 성폭력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도 그 교재에서 봤고 그렇게 성폭력에 대한 것을 많은 것을 거기서 깨우치고 아, 정말 내가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이렇게 재심을 해야 된다는 결심이 섰죠, 그 많은 걸 보고.
[앵커]
그런데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거 심정은 이해가 된다. 그러면서도 재심 요구는 기각을 했는데 당시 결정문 보시고 어떤 부분이 가장 납득이 안 되셨습니까?
[최말자]
재심 청구한 거 말이죠, 부산법원 고등법원하고. 그걸 보고 제가 더 충격적인 치욕을 느꼈죠. 대한민국 법관들이 법을 지키고 체제를 다스려야 할 사람들이 법을 어기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서 정당방위가 안 나오게끔 성폭력은 빼버리고 특수주거침입하고 중상해를... 중상해도 아니지 않습니까? 결론을 보면 상해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상해를 만들어서 그 어린 것을 6개월 12일 감옥 속에서도 검사하고 재판을 했지 않습니까, 판사가? 그랬는데 그때도 대한민국 법이고 지금도 대한민국 법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법상식은. 법 기준은 그렇게 되어 있는데 지금도 반세기가 넘어서 법을 뒤집어서 못 한다?
나는 뒤집어달라고 한 거 없어요. 법 그대로 바로잡아달라고 하는 겁니다. 사건 그대로. 바로잡아달라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반 세기가 넘어다는 둥, 그건 나를 조롱하는 것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나는 더 억울하고 더 괘씸한 생각이 들고 더 분노하고 있어요, 지금.
[앵커]
그러니까 그 당시 성차별이 뿌리 깊은 그런 사회 상황에서 이뤄진 판결이니까 지금의 잣대로 범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입장을 법원에서 전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는 그런 말씀이신데...
[최말자]
이해가 아니고 분노하죠.
[앵커]
재심이 열리기 위한 요건이 까다롭기는 합니다. 명백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해야 되는데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재심이 가능하다고 보시는 근거가 있을 텐데요. 뭐가 있을까요?
[최말자]
검사, 판사는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특수주거침입하고 중상해하고 그 두 가지만 갖고 조사하고 판결했어요. 그러면 성폭력은 뺐지 않습니까, 고의로? 빼버렸죠. 그러면 그 성폭력하고 중상해하고 하면 정당방위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 한 가지. 그리고 스페셜을 찍으면서 우리 PD님이 조사를 해 보니까 판결문 떨어지고 난 뒤에 4개월 만에 그놈이 신체 건강한 몸으로 군에 입대했고 또 월남 파병까지 갔고, 그럼 병신불구가 아니지 않습니까? 병신불구가 군에 갑니까? 그것도 안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분명하지 않습니까? 병신불구가 아니라는 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럼 그 두 가지만 하면 분명히 이걸 재심을 열어야 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잖아요. 네가 팔십이 넘어서 60년, 70년이 돼서 이제 와서 네가 뭘 어떻게 하겠다고 지금 나서느냐, 나를 조롱하고 있어요. 지금 현재도.
[앵커]
지금도 조롱하고 있다.
[최말자]
그렇죠, 분노합니다, 저는.
[앵커]
그래서 분노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일단 재심 청구하신 것과 관련해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 올라간 지도 2년이 다 돼가는데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이렇게 보시는 건가요?
[최말자]
그렇죠. 변호사님이 대법원에 왜 이렇게 자꾸 시간이 늦어지고 있느냐고 하니까 대법원은 원래 이렇게 좀 늦어진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고 이렇게 답을 하고 있답니다.
[앵커]
그러시군요. 지금 선생님 가족분들이나 그리고 지인분들이 탄원서와 그리고 시민분들도 또 서명에 참여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재심을 하루빨리 결정해 달라, 대법원에 이런 마음을 전한 것으로 들었는데 여기 내용을 보니까 이 부분이 좀 인상적이어서요. 모든 재판에서 시대 상황에 따라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건데 법원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법체제를 스스로 인정했다.
[최말자]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앵커]
이 얘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1인 시위도 31일 1인 시위가 마지막이었다고 하시는데 대법원에 전하고 싶은 말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최말자]
대한민국 헌법은 정의와 평등하다고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런데 관청에서도 법을 다스리고 체제를 이끌어가는 그런 체제에서 내 사건을 재심을 열어서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성폭력하고 중상해하고 그것을 하면 이게 정당방위가 되지 않습니까? 정당방위를 해서 무죄가 나오도록 해 달라고 나는 간곡히 이 사건을 바로잡아달라고 간곡히 지금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그걸 바로잡아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간절한 마음이 잘 전달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지금까지 59년 전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재심을 기다리고 있는 최말자 선생님과 함께 얘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최말자]
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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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라이더]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1964년, 열여덟 살 소녀가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해자는 성폭력 처벌을 받지 않았는데 오히려 피해자는 남성에게 장애를 남겼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와 결혼하면 해결되지 않냐"는 등 검찰, 재판부, 언론 등의 2차 가해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무리 오래 전 일이라지만 "그땐 다 그랬다"라는 말로 세월의 상처를 묻을 수 있을까요?
어느덧, 일흔일곱 살이 된 최말자 씨는 이제라도 모든 걸 바로잡고 싶다고 말합니다.
59년 전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씻기 위해 재심을 청구하고 3년째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오늘 뉴스 핵심 관계자 시간에는 당사자인 최말자 씨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최말자]
안녕하세요. 최말자입니다.
[앵커]
이렇게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단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한 이후에 어느새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한데요. 건강은 좀 괜찮으세요?
[최말자]
주위에서 모두 다 도와주는 덕분에 이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앵커]
지난달 31일에, 지금 저희 사진으로 이렇게 보여드리는 것처럼 대법원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셨는데 31일에 있었던 시위가 재심을 촉구하는 마지막 시워였다고요?
[최말자]
네.
[앵커]
앞으로는 추가적인 계획은 없으신 건가요?
[최말자]
글쎄요, 지켜봐야죠. 대법원에서 어떻게 나올 것인지.
[앵커]
이런 진심을 대법원에서도 받아주기를,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기억하고 싶지는 않으시겠지만 1964년으로 잠깐 가보겠습니다. 당시에 선생님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셨어요. 그런데 가해 남성보다 이게 더 무거운 처벌이었습니다.
가해 남성 같은 경우에는 선생님 가족에게 행패를 부렸다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았습니다. 강간미수 관련해서는 재판도 받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 갖고 계신가요?
[최말자]
내가 수차례 얘기하지만 법을 다스리고 나라를 지켜야 될 관청에서 내 사건을 한 가지만 보더라도 잘못됐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헌법은 정의롭고 평등하고 우리 국민들은 법을 지키고 생활하고 살고 있는데 법의 지켜야 할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 않았어요. 법을 남용하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었고 그렇게 자기들 마음대로 이용하고 악용하고 마음대로 그렇게 법을 남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현재도.
[앵커]
그런데 또 놀라웠던 게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이게 수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6개월 동안 구속까지 되셨다고요? 이건 왜 그런 겁니까?
[최말자]
경찰서에서는 한 2개월 조사를 해서 정당방위를 해서 무죄로 검찰에 송치했어요. 그랬는데 검찰에서는 아버지하고 나하고 조사받으러 오라고 소환장을 받고 검찰에 갔는데 그날 아버지는 밖에 있고 나는 조그만 방에 가둬놨어요. 그래서 들어가서 뭔지 모르고 둘러보니까 한 평쯤 되는 방에다가 문을 탁 닫는데 쇳소리가 나서 뭔가 하고 둘러보니까 한 평쯤 되는 방에다 가뒀어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오라고 해서 나가니까 그때부터 수갑을 채웠고 그날 조사를 하고 그날 저녁에 교도소를, 차에 태워서 여자 죄수들 손을 줄로 쭉 묶어서 버스 태워서 교도소로 데리고 갔어요. 그 길로 구속된 거죠.
[앵커]
그렇게 조사도 받고 재판까지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도 왜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냐, 이런 식의 얘기를 들으셨다고요? 지금 기억에 남는 얘기들이 있습니까?
[최말자]
엄청 들었죠. 처음에는 한두 번 내가 얘기한 대로 조사를 했어요. 했는데 그후로는 여러 수십 번을 압박, 억압, 욕 말할 것도 없이 이 가시내야, 왜 남자를 병신불구로 만들어놓고 왜 책임을 안 지려고 하나. 책임져라. 그래서 내가 몇 마디 하면 나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러고 눈 감고 가만히 있었는데 눈 감았다고 욕하고 막 주먹을 가지고 내 얼굴을 치지 않았다뿐이지 손가락을 가지고 바른 말 안 하면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막 말도 못하게 윽박했죠. 합의하라고 하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데 합의합니까? 나는 죄 안 지어도 이렇게 들어왔는데 죄가 있으면 죄를 받겠다고, 나는 합의 못합니다, 그랬죠.
[앵커]
법원에서도 입을 맞추는 한 데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 이런 얘기를 들으셨습니까?
[최말자]
온갖 소리를 다 꾸몄겠죠. 여자를 조롱하듯이 그 18살 어린 게 세상물정 모르고 아버지도 무지한 농사꾼이고 이러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온갖 욕설, 폭언 말도 못하죠. 그거 어떻게 말을 다 하겠습니까? 그 수모와 치욕 그런 건 어떻게 다 말할 수가 없어요. 그 억울함하고 그 사건 당시 일어난 일하고 그 두 가지가 너무 억울해서 제가 평생을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어요.
[앵커]
그러셨군요. 6개월 동안 그렇게 옥살이를 하고 결국에 집행유예로 석방돼서 이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마는 이후에도 동네 사람들 시선 때문에 숨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씀하신 걸 들었습니다. 그렇게 56년의 시간이 흐르고 2020년 5월에서야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최말자]
있죠. 제가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어요. 그런데 너무 공부에 한이 있어서 육십 중반부터 공부를 했어요. 중고등학교 3년을 하고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를 가서 그때가 4학년인가 3학년인가 모르겠는데 성, 사랑, 사회라는 교재를 보고 그 안의 내용을 보니까 교수님이 방통대는 영상 공부를 해요. 그렇게 하면서 내가 열 번도 들은 게 그걸 보면서 보충설명 하는 성폭력, 가정폭력, 옛날 남자들의 고정관념으로 교재에도 실렸지만 엄청 여자의 인권에 대한 게 조금도 없었어요.
그리고 평등하다는 것도 그 교재를 보면서 알았고 또 성폭력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도 그 교재에서 봤고 그렇게 성폭력에 대한 것을 많은 것을 거기서 깨우치고 아, 정말 내가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이렇게 재심을 해야 된다는 결심이 섰죠, 그 많은 걸 보고.
[앵커]
그런데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거 심정은 이해가 된다. 그러면서도 재심 요구는 기각을 했는데 당시 결정문 보시고 어떤 부분이 가장 납득이 안 되셨습니까?
[최말자]
재심 청구한 거 말이죠, 부산법원 고등법원하고. 그걸 보고 제가 더 충격적인 치욕을 느꼈죠. 대한민국 법관들이 법을 지키고 체제를 다스려야 할 사람들이 법을 어기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서 정당방위가 안 나오게끔 성폭력은 빼버리고 특수주거침입하고 중상해를... 중상해도 아니지 않습니까? 결론을 보면 상해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상해를 만들어서 그 어린 것을 6개월 12일 감옥 속에서도 검사하고 재판을 했지 않습니까, 판사가? 그랬는데 그때도 대한민국 법이고 지금도 대한민국 법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법상식은. 법 기준은 그렇게 되어 있는데 지금도 반세기가 넘어서 법을 뒤집어서 못 한다?
나는 뒤집어달라고 한 거 없어요. 법 그대로 바로잡아달라고 하는 겁니다. 사건 그대로. 바로잡아달라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반 세기가 넘어다는 둥, 그건 나를 조롱하는 것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나는 더 억울하고 더 괘씸한 생각이 들고 더 분노하고 있어요, 지금.
[앵커]
그러니까 그 당시 성차별이 뿌리 깊은 그런 사회 상황에서 이뤄진 판결이니까 지금의 잣대로 범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입장을 법원에서 전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는 그런 말씀이신데...
[최말자]
이해가 아니고 분노하죠.
[앵커]
재심이 열리기 위한 요건이 까다롭기는 합니다. 명백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해야 되는데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재심이 가능하다고 보시는 근거가 있을 텐데요. 뭐가 있을까요?
[최말자]
검사, 판사는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특수주거침입하고 중상해하고 그 두 가지만 갖고 조사하고 판결했어요. 그러면 성폭력은 뺐지 않습니까, 고의로? 빼버렸죠. 그러면 그 성폭력하고 중상해하고 하면 정당방위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 한 가지. 그리고 스페셜을 찍으면서 우리 PD님이 조사를 해 보니까 판결문 떨어지고 난 뒤에 4개월 만에 그놈이 신체 건강한 몸으로 군에 입대했고 또 월남 파병까지 갔고, 그럼 병신불구가 아니지 않습니까? 병신불구가 군에 갑니까? 그것도 안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분명하지 않습니까? 병신불구가 아니라는 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럼 그 두 가지만 하면 분명히 이걸 재심을 열어야 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잖아요. 네가 팔십이 넘어서 60년, 70년이 돼서 이제 와서 네가 뭘 어떻게 하겠다고 지금 나서느냐, 나를 조롱하고 있어요. 지금 현재도.
[앵커]
지금도 조롱하고 있다.
[최말자]
그렇죠, 분노합니다, 저는.
[앵커]
그래서 분노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일단 재심 청구하신 것과 관련해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 올라간 지도 2년이 다 돼가는데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이렇게 보시는 건가요?
[최말자]
그렇죠. 변호사님이 대법원에 왜 이렇게 자꾸 시간이 늦어지고 있느냐고 하니까 대법원은 원래 이렇게 좀 늦어진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고 이렇게 답을 하고 있답니다.
[앵커]
그러시군요. 지금 선생님 가족분들이나 그리고 지인분들이 탄원서와 그리고 시민분들도 또 서명에 참여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재심을 하루빨리 결정해 달라, 대법원에 이런 마음을 전한 것으로 들었는데 여기 내용을 보니까 이 부분이 좀 인상적이어서요. 모든 재판에서 시대 상황에 따라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건데 법원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법체제를 스스로 인정했다.
[최말자]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앵커]
이 얘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1인 시위도 31일 1인 시위가 마지막이었다고 하시는데 대법원에 전하고 싶은 말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최말자]
대한민국 헌법은 정의와 평등하다고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런데 관청에서도 법을 다스리고 체제를 이끌어가는 그런 체제에서 내 사건을 재심을 열어서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성폭력하고 중상해하고 그것을 하면 이게 정당방위가 되지 않습니까? 정당방위를 해서 무죄가 나오도록 해 달라고 나는 간곡히 이 사건을 바로잡아달라고 간곡히 지금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그걸 바로잡아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간절한 마음이 잘 전달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지금까지 59년 전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재심을 기다리고 있는 최말자 선생님과 함께 얘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최말자]
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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