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알고 물 퍼냈을 땐 선박 45도 기울고 기관실 절반 침수
청보호 사고현장, 실종자 수색 지속 |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정회성 천정인 기자 = "기관실에 물이 찼다."
지난 4일 오후 11시 17분께 전남 신안군 해상을 지나던 25t급 어선인 청보호에서 기관장의 다급한 고함이 들려왔다.
손 쓸 틈조차 없이 급격하게 침몰한 청보호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선원 A(48) 씨가 전한 당시의 상황은 급박하기 그지없었다.
선실에 물이 샌다는 외국인 선원 보고를 받은 기관장이 기관실로 내려갔을 땐 그곳은 이미 절반가량 물이 차오른 상태였다.
선박도 15도가량 기울어졌고 설상가상 배 안 전기 배터리까지 물에 잠긴 듯 조명이 모두 꺼져버려 칠흑 같은 암흑으로 변해버렸다.
기관장과 외국인 선원은 어떻게서든 침몰을 막아보려는 듯 랜턴에 의지해 기관실의 물을 퍼내며 힘겨운 사투를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조타실에 있던 선장도 기관실로 찾아와 물을 퍼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물을 퍼내는 속도보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더 빨랐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물을 퍼내는 도중 배 옆 벽면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모습도 보였다.
A씨는 "이미 손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배를 포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불과 5~6분이 지났을까. 그 사이 선박은 어느새 45도까지 기울어졌다.
당시 A씨를 포함한 3명의 선원은 뱃머리에, 선장과 기관장 등 3명은 기관실에, 나머지 선원들은 선미인 배꼬리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선실에서 갑판으로 나오는 출입구가 선미 쪽에 있고, 선수 쪽 보다 선미 쪽 공간이 넓다"며 "사람이 기대고 있을 곳도 있어서 그쪽에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배가 침몰하면 선미부터 가라앉는 만큼 선원들에게 "이쪽(선수)으로 빨리 오라"고 여러 차례 고함을 질렀지만 선수 쪽으로 이동한 선원은 없었다.
A씨는 "기울어진 배에서 이동하려면 뭔가 잡을 곳이 있어야 하는데 선미에서 선수로 가는 공간에 그런 게 없다"며 "뭔가 잡을 게 없어서 못 온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배가 순식간에 전복되며 동료 선원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45도로 기울어진 배가 전복될 때까지는 체감상 1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구명조끼를 입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청보호 전복사고 현장서 실종자 수색 |
배가 전복되면서 바다에 빠진 A씨는 선수에 있던 선원 2명과 함께 부유물에 의지해, 뒤집힌 배의 바닥 위로 올라갔고 인근에 있던 민간어선 광양프론티어호에 의해 구조됐다.
A씨는 선박이 침몰할 경우 자동으로 펴져야 할 구명 뗏목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생존선원들의 증언 중에는 해당 선박 기관실에 물이 종종 샜고, 사고 당일에도 왼쪽으로 5도 가량 기운 채 출항했 다는 증언이 나왔다.
침몰 선박에는 소라와 문어를 잡는 통발을 싣고 있었는데, 평소 2천500~2천700개 가량 싣고 있다가 바다에 쳐놓은 통발을 걷어 올리면서 3천개가 넘는 통발이 과하게 실렸다는 증언도 나왔다.
구조당국은 실종자 9명에 대한 광범위한 수색과 함께 사고원인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을 선박 인양 등을 통해 밝힌다는 계획이다.
iny@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