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2025년부터 수도권매립지에 서울·경기 쓰레기 못 받는다" 선언
서울·경기 강력 반발에도 '발생지 처리' 내세우는 인천시 입장 강경
매립지 포화로 전국 곳곳서 '쓰레기 대란' 우려…"더 늦기 전에 대책 서둘러야"
수도권매립지 제2매립장에서 내려다본 제3매립장 |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너른 광야가 저 멀리 바다에 닿는 곳까지 펼쳐져 있었다. 풀 한 포기 없이 잔뜩 파헤쳐진 황갈색 대지에는 중간중간 말뚝처럼 생긴 검은색 관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박혀있었다. 평평한 땅을 듬성듬성 덮고 있는 인공적 색감의 녹색 망도 보였다. 검은색 관은 매립한 쓰레기의 부패 가스를 모으는 포집공, 녹색 망은 비산(飛散) 먼지를 차단하는 망이다.
지난 1일 수도권매립지 제2 매립장에서 내려다본 제3 매립장의 풍경이다. 제2 매립장은 3년 전 쓰레기 매립이 종료됐다. 지금은 제3 매립장으로 서울, 경기, 인천에서 배출된 생활·건설 폐기물 대부분이 모인다.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이 매립지를 찾은 시간에도 매립지 한쪽에서는 굴삭기와 대형 트럭들이 바삐 움직이며 쓰레기를 매립하고 있었고, 그 위에 흙을 덮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인천 서구에 위치한 수도권매립지에는 매일 1만2천t의 쓰레기가 수도권 각지로부터 반입된다. 서울에는 매립시설이 없고, 경기도는 미미한 분량의 폐기물만 도내 매립장에서 처리한다. 사실상 수도권매립지가 수도권 쓰레기 대부분을 처리한다.
그런데 인천시가 2025년부터 서울과 경기도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더는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두 지자체의 강력한 반발 속에 물밑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인천시의 강경한 입장은 변함이 없다. 전국 쓰레기의 30% 가까이 차지하는 서울·경기 지역 쓰레기가 갈 곳을 잃는 '쓰레기 대란'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 수도권에서 벌어지는 쓰레기 대란은 10년 후면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국 쓰레기 매립지의 절반 가까이가 10년 내 포화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수도권은 물론 전국 차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쓰레기 대란을 막기 위한 논의를 공론화하고, 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을의 난지도 하늘공원 |
◇ 수도권매립지 종료 4년 남았지만…대체 매립지, 선정도 못 했다
가을이면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 관광객들이 몰리는 오늘날의 난지도 하늘공원은 30년 전만 해도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수도권매립지가 조성된 것은 이 난지도매립지가 가득 차면서부터다.
수도권매립지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생활·건설 폐기물을 처리할 목적으로 조성된,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쓰레기 매립지다. 서울시 동작구에 육박하는 면적인 1천500만㎡ 면적으로 조성된 매립지는 1992년 운영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억5천만t에 달하는 폐기물을 처리했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까지 처리해야 하는 인천시와 시민들 입장에서는 수도권매립지가 달가울 리 없다. 이에 환경부와 서울, 인천, 경기도가 모여 2025년까지 생활폐기물 직매립 제로화, 대체 매립지 확보 추진 등을 골자로 하는 '4자 합의'를 끌어낸 것이 2015년이다.
당초 합의는 2025년 포화가 예상되는 제3 매립장 1공구(103만㎡)까지만 수도권매립지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때까지 대체 매립지가 마련되지 않으면 제3 매립장 1공구보다 약간 더 넓은 106만㎡의 잔여 부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합의 과정에서 서울시와 환경부는 서울시 소유의 수도권매립지 토지 전체를 인천시에 넘겨주고, 폐기물 반입 수수료의 50%를 가산 징수해 인천시 회계로 편입하는 등 '인천시 달래기'에 나섰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박남춘 인천시장 |
하지만 지난해 인천시는 "수도권매립지 연장 사용은 없다"며 2025년 '쓰레기 독립'을 선언했다. 서울·경기도가 대체 매립지 조성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잔여 부지 사용에만 기대고 있는 꼴을 더는 못 참겠다는 얘기다. 인천시 쓰레기는 영흥도에 자체 매립지와 소각장을 조성, 처리하기로 했다.
실제로 당초 4자 합의에서 제시된 2025년을 불과 5년 앞두고도 서울시와 경기도, 환경부는 대체 매립지 조성은커녕 후보지 선정조차 하지 않았다. 인천시의 선언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서울시와 경기도, 환경부는 부랴부랴 지난 1월부터 대체 매립지 공모에 나섰다. 특별지원금 2천500억 원에 폐기물 반입 수수료 50% 가산금 수익, 주민지원사업 등의 인센티브를 내걸었지만, 지난 9일까지 두 번에 걸친 공모에 신청한 지자체는 한 곳도 없었다.
대체 매립지 조성은 후보지 선정과 인허가 작업, 주민 수용 등의 절차를 걸쳐야 한다. 아무리 빨라도 4∼5년이 걸린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 전체 폐기물의 30% 가까이 차지하는 서울·경기 지역 폐기물이 갈 곳을 잃는 '쓰레기 대란'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버려진 재활용 폐기물 |
◇ 인천시 "쓰레기, 발생지에서 처리해야"…서울·경기 "유연하게 적용해야"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강행하겠다는 인천시의 핵심 논리는 '발생지 처리 원칙'이다. 폐기물 처리는 폐기물을 배출한 지자체가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인천시만의 방침이 아니다. 환경부도 지난해 9월 발표한 '자원순환 정책 대전환 계획'에서 발생지 처리 원칙을 천명했다. 다른 지역으로 폐기물을 보내 처리하는 경우 반출 지역에는 벌칙을, 반입 지역에는 혜택을 부과하는 한편, 가능하면 폐기물이 발생한 각 시·도 내에서 처리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인천시는 이를 적극적으로 반긴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발생지 처리 원칙에 따라 지역별로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자체 매립지가 있어야 한다"며 "재활용과 소각 후 남는 최소한의 폐기물만 자체적으로 매립 처리하는 것이 '환경 정의'"라고 밝혔다.
그는 "서울은 (매립지를 지을) 땅이 없다고 하지만, 강서구 개화동·서초구 그린벨트 등 소각 후 발생하는 소각재만 매립할 부지는 충분히 있다"며 "좋은 것만 서울에 두려고 하지 말고, 발생지 처리 원칙에 따라 서울에서 나온 폐기물은 서울에서 처리해야 옳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수도권매립지 종료에 대비해 영흥도에 매립지와 소각장을 조성, 시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을 자체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인천시 자체 폐기물 매립·소각시설 건설 예정지 영흥도 일대 |
학계도 이러한 '발생지 처리 원칙'에 대해 기본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배재근 서울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어디에서든 '발생지 처리'와 '원인자 부담'은 반드시 고수해야 하는 원칙으로, 서울·경기는 소각로 확충 등을 통해 먼저 매립량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도권매립지의 경우 이 방침을 즉각적으로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는 반론도 있다.
정미선 서울시 자원순환과 과장은 "발생지 처리 원칙은 당연하고, 누구든 이를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면서도 "다른 지자체에 있는 처리시설을 활용해 '시설비 부담', '공동건설 참여' 등의 방식으로 광역처리하는 것도 넓은 의미로 보면 발생지 처리 원칙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시도 부평구 등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을 경기도 부천시에 신규 조성되는 소각장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처럼 발생지 처리 원칙도 지자체별 형편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희 경기대 융합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발생지 처리 원칙이 가장 올바른 정책 방향인 것은 맞다"면서도 "원칙을 실현하는 데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에서 (지자체 몇 개를 한데 묶어 폐기물을 처리하는) '통합 관리·통합 처리' 등의 대안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나주 SRF 반대 집회 |
◇ 수도권매립지는 시작일 뿐…전국서 '쓰레기 갈등' 우려
쓰레기 매립지를 둘러싼 지자체 간 갈등과 진통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 10년간 속속 포화 상태에 이르는 전국의 매립장을 증설하고 폐기물 처리 능력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수도권매립지와 같은 격렬한 갈등이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이런 갈등을 빚고 있는 지자체도 있다. 부산시와 울주군이 대표적인 사례다.
부산시는 2025년이면 운영이 종료되는 부산 유일의 산업폐기물 처리시설 'NC그린파워'를 대체하기 위해 울주군과 인접한 부산시 기장군에 신규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조성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부산시의 방침에 울주군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부산시의 신규 매립장 부지가 주거지역과 너무 가깝고, 산림복지시설인 '대운산 치유의 숲'과도 인접했다는 것이다.
울주군의 반발에도 부산시는 기장군의 신규 매립지 사업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 4년 후면 단 하나뿐인 산업폐기물 처리장이 폐쇄되는 상황에서 부지 선정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안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전남 나주에 있는 SRF(고형연료) 열병합발전소를 둘러싼 갈등도 있다. SRF는 각종 폐기물 중 가연성 물질만 걸러내 건조해 만든 고체연료를 말한다. 전남 나주의 SRF 발전소는 국비 2천700억원을 들여 지난 2017년 12월 준공했지만, 거의 4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멈춰 서 있었다.
나주시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 때문이다. SRF 연료를 보관하고 소각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건강에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반대의 주요 이유다. SRF 발전에 투입되는 생활폐기물 중 97%가 타지역인 광주에서 들어온다는 사실도 반대 여론을 부채질했다.
강인규 나주 시장은 "쓰레기 발생지 처리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광주에서 생산된 SRF의 반입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나주 SRF시설은 지난 4월 소유주인 한국지역난방공사가 나주시와의 행정소송에서 승소함에 따라 현재 가동 중이지만, 나주시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국장은 "수도권매립지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폐기물 처리를 둘러싼 업체, 주민, 지자체 간 갈등이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이러한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정부 등 공공부문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653@yna.co.kr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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