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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취재석] 민주당의 '민심경청투어'? 아직도 민심을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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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쇄신안 준비의 일환으로 '민심경청투어'를 기획하겠다고 밝혔다. 9일 민주당 비대위회의에서 개회 선언하는 도종환 위원장.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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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반성문 공감 얻으려면 '행동' 보여야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주인공 연우는 세자 이훤의 첫사랑인 세자빈에서 '액받이' 무녀가 되고 말았다. 왕에게 닥칠 액운을 대신 받아내는 역할이다. 드라마가 흥행하면서 '욕받이'라는 표현도 쓰인다. 욕을 대신 먹는, 일종의 희생양이라 할 수 있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후 더불어민주당은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일주일 한시적으로 '도종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가동했다. 이를 두고 말이 많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비대위원장으로 '친문' 핵심 도종환 의원이 선임된 데 대해 "개혁과 쇄신을 하자면서 비대위원장을 뽑는데 그조차도 국민의 눈높이가 아닌, 당내 특정 세력의 눈높이로 뽑는다면 진정성이 생길 수 있겠느냐"며 "국민에겐 이 사람들이 아직도 국민을 졸로, 바보로 보는 거 아닌가' 이렇게 보일 수 있다"고 쓴소리했다.

이런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오는 16일 원내대표 선거로 새 지도부를 구성할 예정인데 '일주일 짜리' 비대위원장이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 지도부는 전당대회까지 현 최고위를 유지할지, 비대위 체제로 우선 전환할지를 두고 이견이 있었지만 후자를 택했다고 한다.

비대위 역할론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가운데 지난 9일 첫 공개 비대위 회의에 이목이 쏠렸다. 도 위원장은 전임 지도부가 국민권익위에 요청한 민주당 의원 전원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외 없이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 살 깎는 일이 되겠지만 감내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소통과 경청이 비대위의 주요 역할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도 위원장은 "국민과 소통하고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실천 방안도 준비 중이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민심경청투어를 기획하기로 하고 빠른 시일 안에 국민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일정을 기획하고 만들고 실천하자고 했다"며 이번 주부터 국민경청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비대위는 지난 11일 회의에서 오는 25일까지 현장 중심으로 경청과 소통 일정을 진행하고 다음 달 1일까지 혁신 과제와 실행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를 신임 지도부에게 보고하고 실행하는 것까지가 비대위의 임무라는 것이다. 특히 세대·정책별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20·30 남성·여성들, 30·40 무주택자 등 30·40세대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60대 이상의 노년층을 위한 세대별 소통과제를 마련할 것"이라며 "정책별로는 부동산 개혁과 민생회복, 방역 과제 등 정책별 과제를 선정해 4월 임시 국회 때 어떤 입법 과제를 선정할지 세부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구체적인 안을 설명했다. 당원과 지지층 이야기만 듣다 활동을 끝내진 않을지 우려된다. 국민의힘 의원들처럼 토론장에 진보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초청해 신랄한 비판을 들을 정도의 각오가 있어야 진정성이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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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이라고 지적받았던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집단행동에 나섰다. 9일 국회에서 오영환, 장철민, 장경태, 이소영, 전용기 의원 등 2030 의원들과 간담회 하는 도 위원장.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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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패배 요인으로 '벌거벗은 임금님론'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민주당 2030 모임 장철민 의원은 지난 9일 도 위원장을 만나 "국민 모두 알고 있고 우리 스스로도 알고 있는데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것 아닌가"라며 "최근에 가장 많이 느껴진 것은 부끄러움"이라고 고백했다. 맞다. 그동안 민주당이 경청과 소통 형식을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1대 총선 과정에서도 전국을 돌며 소통했다고 자평했었다.

언론만 하더라도 2019년 조국 사태, 2020년 검찰-법무부 갈등,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쓴소리했다. 그럴 때마다 당 지도부와 지지자들은 언론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언론 개혁'을 외쳤다. 재보선 직후 김종민 전 최고위원도 "(언론 편파성 문제는) 꼭 이번 선거만이 아니라 꽤 오래됐다"며 "보궐선거에서 이 정도였는데, 대선에서까지 '언론이 편파적이다'는 느낌을 주게 되면 민주주의에 큰 침해요소나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제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당 지도부 태도의 저변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쌓아온 '피해의식'과 '과잉 위기의식'이 있는 게 아닐까.

비대위가 '민심 청취' 모습만 보이다 끝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지만 새 원내대표가 선거 참패 분석과 쇄신 방안을 잘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원내대표 경선에는 윤호중·안규백·김경협·박완주 의원 등이 출마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하다고 관측되는 윤 의원은 '이해찬계 친문'으로, 지난 21대 총선 때 사무총장으로서 공천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김경협 의원도 대표적인 친문으로 분류된다. 당내에선 벌써 공개적으로 친문 후보는 원내대표·당 대표 출마를 자제해야 한다는 쇄신론이 분출되고 있지만, 당 주축인 이들이 스스로 기득권을 놓을지 회의적이다.

또한 비대위가 현재 공석인 최고위원을 당초 중앙위원회에서 선출하겠다고 결정했다가 3일 만에 다음 달 2일 전당대회에서 뽑기로 말을 바꾼 것만 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차기 당권 주자인 홍영표·우원식 의원을 비롯해 황운하·박주민·김용민·정청래 의원 등 친문 의원들과 강성 당원들의 영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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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반성문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9일 오후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하는 민주당 초선의원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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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상대적으로 기득권이 적고 계파성이 얕은 당 초선의원들은 정신을 차린 모양새다. 반성문도 당 지도부와 중진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뭉뚱그린 것과는 달리 구체적이다. 81명의 초선의원들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후보 공천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며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과신, 일단 시작하고 계획을 만들어가면 된다는 안일함, 그리고 우리의 과거를 내세워 모든 비판을 차단하고 나만이 정의라고 고집하는 오만함"을 반성했다.

또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현장을 도외시한 채 일방적으로 정책 우선순위를 정했고, 민생과 개혁 모든 면에서 청사진과 로드맵을 치밀하게 제시하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2030 의원들은 한발 더 나아가 당내 '2차 가해'를 막을 조처를 하지 않은 점, 검찰 개혁 과정에서 국민 공감대를 잃은 점, 조국 전 장관을 검찰 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던 점, 여당 인사들의 재산증식과 이중적 태도를 변명했던 점, 초선의원을 핑계 삼아 용기 있게 나서지 못했던 점 등을 고백했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당은 이미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해왔는지 잘 알고 있다. 굳이 민심경청투어를 할 필요도 없다. 비대위가 새로운 '친문' 지도부 탄생 전 보궐선거 참패의 욕받이 역할을 자임한 게 아니라면 뼈를 깎는 행동과 실천을 보여야 한다. "제 살 깎는 일을 감내하겠다"고 했는데, 제대로 한다면 진짜 꽤 많이 아플 것이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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