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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기고] 미세먼지 정책, 장기적 안목을 / 지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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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현영 ㅣ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가 버스 정류장에 미세먼지를 피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앞 버스 승강장에 설치된 ‘미세먼지 프리존 셸터’는 전기집진기와 활성탄으로 도로변 미세먼지를 90% 이상 제거한다. 내부에는 온열의자, 냉난방기, 실내외 미세먼지 측정기, 태양광 시설, 미세먼지 측정자료 안내판 등을 갖춰놓았다. 앞서 지난 2월 서울 서초구는 서초문화예술회관 앞 정류소 등 2곳에 세계 최초 청정 버스정류장 ‘스마트 에코셸터’를 설치했다. 버스 정류장 천장과 벽면을 강화유리 소재 벽으로 감싸고 그 안에 냉온풍기와 에어커튼, 공기정화 식물, 온돌의자, 스마트 터치스크린 등을 갖추었다.

이른바 미세먼지 해결사들인 대중교통 이용 시민들에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피난처를 제공한다는 그럴듯한 정책이다. 그러나 아무리 민간 지원을 받는다 해도 시설당 설치비가 6천만~7천만원이 든다고 하니 혜택을 보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이런 ‘피난’ 대책이 미세먼지는 어느 날 외부에서 떨어진 재난이고, 우리 시민들은 그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무의식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미세먼지는 연료를 태우는 등 인위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산업화의 부산물이다. 따라서 원인인 배출을 줄이면 결과인 미세먼지는 줄어든다. 배출은 그대로 유지하고, 배출된 것을 줄이려고 하면 훨씬 어렵다. 도심형 대형 공기청정기를 만들거나, 인공강우를 뿌리는 등 전세계적으로 획기적인 기술을 동원하고 있지만 아직 별 성과가 없다.

이 때문에 우리보다 앞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한 선진국들은 배출원 통제 정책에 집중한다. 상업·주거 시설 위주인 도심에선 교통수단이 가장 큰 배출원이기 때문에 강력한 교통량 억제 정책을 펼친다. 도로 내 속도를 20~30㎞로 제한하는 감속 운행 지역을 확장하는 한편, 도심 내 주차료 인상, 노후차 통행 제한, 차량 등급제 운영 등을 하고 있다. 이미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선 보편적으로 실시되는 제도들이다. 인구가 많은 도시 내에선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더 불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 공유 전기자전거 등의 이용 편의를 확장하는 한편 대중교통비도 지원한다.

독일 베를린의 경우 지난해 ‘모빌리티(이동성) 보장을 위한 법안’이 통과됐다. 모든 사람이 도시의 다양한 이동수단을 공정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환경과 이동수단 간 균형을 맞추는 도시계획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도시 내 자전거, 스쿠터 등 자동차 외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안전한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자전거 이용자가 차도나 인도를 공유하지 않도록 별도의 도로를 달릴 수 있도록 보장하고, 2030년까지 대중교통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처럼 우리 생활에서 좀더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흔히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도 말하지만 좋은 공기와 푸른 하늘이라는 상시적인 반대급부가 돌아오기 때문에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런 시민의식과 더불어 장기적 안목에서 일관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이벤트성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국고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지난 10일 내년 환경부 예산이 9조5394억원으로 확정됐다. 증액률이 21.5%로 역대 최고다. 이 중 미세먼지 저감 대책 관련 예산이 2조2639억원으로, 전체 사업비 중 가장 높은 비중인 23.7%에 이른다. 배출원을 직접 타깃으로 삼는 적극적 정책을 펼쳐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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