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각적 왜곡은 인식의 영역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아는 것은 중요해 보이고, 모르는 것은 하찮게 보인다. 아는 사람 말은 귀 기울여 듣고, 모르는
사람 말은 흘려듣는다.
인식의 왜곡은 다시 판단의 왜곡으로 확장된다. 우리편 주장은 옳고, 반대편은 틀리다. 내 편은 정의롭고, 반대편은 사악하다. 내 편이 고난을 당하면 탄압이고, 상대편이 고난을 당하면 정의구현이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도를 넘고 있다. 온라인에서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친구 정리하기가 유행이다. 심지어 오래된 오프라인 지인까지 정리한다는 이들까지 보인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한다. 문제는 반대의 주장을 하는 사람 역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두 개의 상반된 주장이 동시에 옳을 수는 없다. 인식의 왜곡에 의한 착각일 뿐이다. 인식의 왜곡이 발생하는 이유는 시점의 유한성 때문이다. 고정된 나의 망막에 맺히는 사물의 크기는 거리에 반비례한다. 내 시선을 기준으로 현상을 이해하려 하니,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내 편을 옹호하고 상대편을 배척하는 성향은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계층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고치기도 어렵다. 배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수록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식의 왜곡을 극복하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500년 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 해법을 제시했다. 1498년 프랑스의 루이 12세가 이탈리아 밀라노를 침공하고 그곳을 통치하던 스포르차 가문을 퇴출시킨다. 당시 밀라노에 머물며 스포르차 가문의 후원을 받던 다빈치는 또다시 후원자를 잃어버린다. 20년 전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끊긴 악몽이 재현된 것이다.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야하는 다빈치의 눈에 밀라노에 입성한 젊은 야심가가 눈에 띈다. 그의 이름은 체사레 보르자.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셋째 아들인 그는 급사한 형 대신 아버지의 대망을 실현할 임무를 맡는다. 아버지의 대망은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것. 체사레는 아버지가 18세에 임명한 추기경 자리를 스스로 반납하고, 프랑스 루이 12세의 절대적 신임을 얻는데 성공한다.
1502년 체사레는 이탈리아 통일의 첫걸음으로 전략적 요충지 이몰라를 쳐들어간다.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인 이몰라는 프랑스와 교황의 지원을 받는 체사레에 대항할 수 없었다. 백기 투항한 이몰라로 무혈 입성하는 체사레의 곁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었다. (이몰라는 F1의 전설 아일톤 세나가 사고로 사망한, 그가 마지막 레이스를 펼친 포뮬라 1의 성지이다.)
1502년 다빈치가 완성한 최초의 평면도인 ‘이몰라의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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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다빈치는 체사레의 수석 군사 엔지니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그의 영속적 후원을 얻기 위해서는 절대적 신임이 필요했다. 다빈치는 이몰라의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체사레를 위해 누구도 보지 못한 가장 정확한 지도를 헌정하기로 한다. 당시만 해도 조감도(鳥瞰圖: 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3차원 지도, 영어로 bird-eye-view)가 일반적이었다. 컴퓨터와 항공기로 제작되는 현대의 조감도를 상상하면 오산이다. 당시의 조감도란 화가가 산에 올라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지도라기보다는 세밀한 풍경화에 가까웠다. 정확도가 형편없을 수밖에 없었다.
다빈치는 정확한 지도를 구현하기 위해, 거리측정기와 나침반을 사용해 이몰라의 모든 거리와 지형을 정확하게 측량했다. 이렇게 모아진 정보들을 정확한 비율로 한곳에 모아 역사상 최초의 평면도인 ‘이몰라의 지도’를 완성한다.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평면도가 혁신적이었던 이유는 ‘시점’의 객관성 때문이다. 다빈치는 어떻게 시선의 왜곡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나는 이 글 첫머리에 인식이 왜곡되는 이유로 ‘관찰자 시점의 유한성’을 들었다. 다빈치의 평면도는 관찰자 시점을 무한대로 떨어뜨려 객관적 시선을 확보한 것이다. 평면도의 객관성을 설명하는 또 다른 방법은 ‘무한한 수의 관찰자’를 가정하는 것이다. 지도상의 좌표 하나마다 바로 위에 하나의 관찰자가 존재한다. 수많은 관찰자로부터의 정보를 모으면 평면도가 완성된다. 결국 객관적 인식을 위해서는 무한한 수의 관찰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객관적 현실 인식은 새로운 창조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즉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면 객관적인 현실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말 뜻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다빈치의 시대로 돌아가자.
체사레가 추진하던 이탈리아 통일이라는 원대한 목표의 중심에 밀라노가 있었다. 수석 군사 엔지니어 다빈치는 후원을 얻기 위해 그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다빈치는 이몰라 지도 제작 경험을 토대로 밀라노의 평면도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평면도가 완성되면, 밀라노의 수로를 개선하는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르네상스 맨’ 다빈치의 천재적 상상력은 밀라노의 평면도 제작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평면도를 완성한 후, 이를 기반으로 조감도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평면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다빈치의 조감도는 눈으로 보고 그린 조감도와 정확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비록 밀라노 프로젝트는 체사레의 몰락으로 중단되었지만, 다빈치가 고안한 조감도 제작법은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까지 널리 사용된다. 다빈치는 객관적 인식의 결과로부터 더욱 가치 있는 새로운 창조물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다빈치의 이몰라의 지도는 혼란의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간결하면서도 무거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갈등의 시작은 ‘객관적 인식’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객관적 인식을 외면한 대화는 파국으로 갈수밖에 없다. 또한 새로운 것의 시작은 ‘객관적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객관적 인식 없이 만들어진 계획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이러한 다빈치의 교훈은 개인과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영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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