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처럼 느껴졌던 온라인 공간, '사람'으로 대하게 돼…'실명제 운영 카페'는 97.3% '만족']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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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 '남형도'로 바꿨다. 내 이름이다.
그리고 기사 댓글 창으로 갔다. 최근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 기사였다.
이미 댓글창은 싸움터가 돼 있었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을 싸잡아 비하하고, 비난하고, 출연한 배우들을 욕하고 있었다. 거기에 여성들이 반박하는 댓글을 달았다. 서로 간의 인격 모독과 공격이 끊이지 않았다.
커서는 깜빡거렸고, 이름 석 자가 그 위에 있었다. 난 머뭇거렸다. 평소 같으면 생각과 동시에, 아니 생각도 별로 안 하고 써재꼈을 터였다. 그런데 주저하고, 고민하게 됐다. 300자는커녕, 한 글자도 나아가기 힘들었다.
생각한 끝에 이렇게 남겼다. 그냥 "힘들었겠구나" 얘기하면 안 되겠느냐고. 그렇게 충분히 알아준 다음에, 또 충분히 얘기하면 어떻냐고. 이런 식으론 갈등이 나아지는 게 없다고. 좋든 싫든 함께 살아가야 하니, 서로 힘든 부분을 보듬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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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실명 댓글' 50개를 한 주(21일~25일) 동안 달았다. 포털 사이트 세 곳에서.
'악성 댓글(이하 악플)' 100개를 읽으며, 해결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이 컸다. 지난주에 나간 기사다. 근거도 논리도 없이 못된 감정을 꾹꾹 눌러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이 글들을 어떻게 나아지게 할지. 실제 겪어보니 더 심각했다. 불과 하루였어도. 화남과 무기력함이 뒤섞여 후유증이 남았다. 다른 독자들 응원에 힘을 내게 돼 감사했지만. 기사 쓰는 것 자체를 주저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러면 이런 반응일까’ 생각하며 안전 범위를 찾게 됐다. 답답한 시간이었다.
덧붙여 설명하면, 내가 말하는 악플은, 기사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타당한 비판은 감사하다. 잘 몰랐던 걸 알게 해주니까. 그런 글을 보면, 항상 겸허하게 돌아보고 받아들이고 반성하게 된다. 스스로 부족한 걸 잘 알기에 더 그렇다.
그래서 이름을 밝히고, 댓글을 써보기로 했다. 이게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서. 장·단점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는 사안이기에, 신중할 필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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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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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점은, 온라인이란 무형의 공간에서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단 점이다.
댓글을 쓰는 나부터 인식하게 됐다. 댓글 창에 내 이름 석 자가 뜨니, 허상처럼 느껴졌던 내 존재가 명확히 느껴졌다. 상처를 받는, 혹은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새삼 들었다. 단지, 이름 석 자만 드러냈을 뿐인데도.
그러니 내 글이 향하는 곳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생각하게 됐다. 그 종착지 또한 사람이었다. 댓글을 읽고, 그에 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화가 나거나, 기뻐하거나, 속상해하거나, 심하면 눈물까지 흘릴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사람 대 사람'으로 생각하니, 저절로 조심하게 됐다. 감정이 100만큼 차올라도, 최대한 이성적인 비판을 하게 됐다. 댓글을 썼다가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고 했다. 그러는 동안 감정이 어느 정도 내려갔다. 그러니 댓글을 좀 더 논리적으로 쓸 수 있게 됐다.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는, '인면수심' 아버지 기사를 봤다. 가해자 나이가 40살인데, 징역 15년이었다. 평소 같으면 댓글에 욕설을 퍼부었을 거였다. "야, 이 판사야"라던가 하는 식의. 하지만 침착하게 이 형량의 부조리함을 설명했다. 55살에 다시 저 금수만도 못한 X과 딸이 마주하라는 거냐고, 어떤 식으로든 사회와 격리해야 한다고.
택시기사 1만명이 국회 앞에 집결했단 기사도 봤다. '타다' 서비스를 반대한단 거였다. '승차거부' 당했던 일이 생각나 비난하고 싶은 맘이 쑥 솟았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한 비판을 하게 됐다. "택시기사들은 승객들이 택시에 대해 왜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됐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검찰이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에 항소했단 소식에도 댓글을 달았다. "범행을 한 게 아니더라도 의도가 뻔히 보이는 일이었다"며 "이 사례가 앞으로 범죄를 억제할지, 아니면 더 부추길지 잘 판단해 합당한 판결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댓글은 추천 366명, 반대 4명으로 '베플'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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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자체를 자제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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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댓글 실명제'서 단점으로 언급하는 게 '표현의 자유'다. 그 말이 좀 거창해서 별로 안 와닿았는데, 직접 해보니 뭔지 알게 됐다.
댓글 쓰는 것 자체를 잘 안 하게 됐다. 댓글을 쓰려고 기사에 들어갔다가, 주저하며 그냥 나오게 됐다. 그 마음이 뭔지 가만히 들여다봤다. '괜히 잘못 썼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이름 불리며 욕먹기 싫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불이익을 당할까 고민되고, 법적 시비에 휘말릴까 걱정되고, 그러는 새 그냥 댓글 쓰는 걸 포기하고,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게 됐다. 몸을 사렸다. 하고픈 말은 분명 있었음에도.
감정도 시원스레 드러내지 못했다. 자제하고 다듬어진 말들만 댓글에 남기게 됐다. 이는 좋게 말하면 존중과 배려이지만, 안 좋게 보면 진짜 하고픈 말들이 답답하게 눌려 있는 것이다. 판단하기에 비난받아 마땅한 상황이라 여길 땐, 터놓고 일갈해야 속이 뻥 뚫리는데 그게 잘 안 됐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촌철살인이 아닌, 동글동글 매만져진 글만 남았다. 뼈 아픈 댓글이 약이 될 때가 있다. 혹시나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려워질까 걱정이 됐다.
물론, 이건 아직 '실명 댓글' 자체가 익숙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단 생각이다. 존중하면서도 얼마든 정교하게 비판할 수 있으니까.
포털 사이트마다 시스템이 달라 불편한 것도 있었다. 어떤 곳은 닉네임을 실명으로 바꿀 수 있는데, 또 다른 곳은 아예 아이디만 나오게 돼 있었다. 그런 곳에선 댓글에 [남형도]라고 쓰고 실명 댓글을 달았다. 또 하나 우려되는 건, 마음먹기에 따라 실명을 거짓으로 쓸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단 점이다. 혹시 실명제를 시행하더라도, 정교한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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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를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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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로 운영하고 있단 온라인 카페 사례를 들여다봤다. 수소전기차 '넥소카페'다.
지난해 4월 개설된 이 카페 회원수는 총 9374명. 회원들은 모두 지역과 실명을 닉네임에 써야 한다. 예컨대, 기자를 예로 들면 '서울N남형도'라고 다는 식이다. 이렇게 변경하지 않으면 게시물 열람과 작성 권한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게시글은 반드시 '존댓말'만 쓰도록 했다.
카페 운영자인 정응재씨는 "과거 동호회를 운영했을 때 별명·닉네임을 쓰도록 했더니 막말, 욕설, 악플이 꽤 많았다"며 "인터넷 실명제로 했더니 커뮤니티가 상당히 깨끗해졌다"고 했다.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정씨는 "오프라인에서도 서로 이름을 부르니 더욱 더 친목을 다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 카페 회원들 생각은 어떨지 궁금해 설문 조사를 해봤다. '실명제'가 카페 활동에 더 좋냐는 물음엔 총 114명 중 111명(97.37%)이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다'라고 답한 회원은 3명(2.63%)에 불과했다. 10명 중 9명 이상이 실명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실명제'가 더 도움이 되는 이유로는 △게시글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어서(51명·47.22%)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할 수 있게 되어서(39명·36.11%) △비방이나 인격 모독 등을 줄일 수 있어서(18명·16.67%) 순이었다.
마지막으로 '댓글 실명제'가 악플을 줄이는데 기여할 거라 보느냐는 물음엔 총 111명 중 102명(91.89%)이 '그렇다'고 했다. '아니다'는 4명(3.6%), '잘 모르겠다'가 5명(4.5%)이었다. 악플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명제 등 법규를 강화하면 분명 악플이 줄긴 하겠지만, 그 전에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선행됐으면 한다"며 "포털사이트에서 악플을 달면 패널티를 준다던지, 필터링을 강화하는 등 노력을 하는 식이다. 이게 법규 강화보단 선진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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