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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脫일본산’ 하루… 국산 커피에 일제 향료, 佛 화장품 ‘메이드 인 재팬’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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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때 쓰는 카메라 캐논ㆍ니콘, 필기구도 일제 익숙

발품 팔아 국산으로 대체… 불매 넘어 가치 소비로 확산

지난 7월 4일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조치로 촉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3개월째 진행중이다. 일시적 현상으로 ‘찻잔 속 태풍’이 될 거란 예상과 달리 불매운동의 열기는 쉽게 식지 않고 있다. 일본 기업 유니클로 매장엔 소비자의 발길이 끊어졌고, 일본 맥주 판매량은 반토막 났다. 일본 여행업계는 한국 관광객의 급감으로 비상이 걸렸다.

과거에도 일본의 역사왜곡 등에 항의하는 불매운동이 여러 차례 벌어졌지만, 감정적으로 타올랐다 곧 식어버렸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이성적ㆍ분석적 대응이 눈에 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능숙한 젊은 층의 ‘재치’도 곁들여졌다. ‘일본 맥주 마시지 맙시다’가 아닌 ‘일본 맥주 한 잔 100만원에 팝니다’라는 식이다.

그런데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는 일본제품을 쓰지 않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일본제품 불매운동 100일을 앞두고 두 명의 한국일보 기자가 하루(9월19일) 동안 일본제품 없이 생활해 봤다. 40대 윤태석 기자와 20대 이주현 인턴기자는 이날 하루만큼은 일본 제품을 소비하지 않고, 갖고 있는 일본 제품이 있다면 사용하지 않는 ‘일본제품 탈출기’에 도전했다. 완제품뿐 아니라 일본산 첨가물이 함유된 식품도 대상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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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매를 의미하는 '보이콧 재팬' 문구.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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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자마자 마주치는 일본제품들(40대 윤태석 기자)

일어나서 휴대폰을 보니 오전 7시다. 전날 과음한 탓에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술 마신 다음 날 가장 먼저 찾는 건 ‘달달한’ 커피. 냉장고를 여니 ‘카라멜 마끼아또’ 캔 커피가 있다. 캔을 따 마시려는 순간 커피에 들어가는 향료는 대부분 일본산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노트북을 열어 식품안전나라 포털로 검색해보니 실제 제조사의 ‘캬라멜향’ 수입처가 일본이다. 낭패다. 숙취 해소에는 당분이 필수인데. 그저 냉수를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씻기 위해 욕실 세면대로 갔다. 평소 쓰던 세안제를 손에 들었다가 움찔했다. 이름이 ‘센카’? 뒷면을 보니 ‘Made in Japan’ 표기가 선명했다.

사실 이번 체험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한일 갈등 때문이 아니더라도 평소 일본 제품을 거의 구매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어린 딸을 위해 아내는 먹거리를 선택할 때 국내산 친환경 제품을 구매한다. 즉석밥에 일본산 미강 추출물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평소엔 먹을 일이 거의 없다. 일본산 식품이 많은 편의점에도 잘 가지 않는 편이다.

유니클로 등 일본 의류만 입지 않으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일어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체험에 위기가 닥쳤다.

옷을 입으려니 유니클로의 에어리즘이 눈에 걸렸다. 여름철엔 10개 가량 한꺼번에 구입해 매일 입었다. 물론 불매운동이 벌어지기 전에 산 것이다. 에어리즘을 대신할 걸 찾기 위해 서랍을 뒤지니 ‘트라이’ 흰색 셔츠가 하나 나왔다. 쌍방울 제품이다. 토종기업이니 괜찮을 거란 생각에 얼른 입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름 내내 편하게 입었던 유니클로 폴로 셔츠의 대체재를 찾아야 했다. 얼마 전 복합쇼핑몰에서 구입한 셔츠를 꺼냈다. 확인해 보니 판매원이 ‘케이브랜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국내 기업이다. 가슴을 쓸어 내렸다.

평소 즐겨 신는 운동화 브랜드는 ‘아식스’다. 발 볼이 높은 편이라 꽉 맞는 운동화는 불편한데 일본 브랜드가 동양인 체형에 맞게 디자인됐다는 이야기에 신어 봤더니 편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식스 안녕. 대신 알도 구두를 신었다. 스페인산이다.

오후엔 인터뷰가 있어 서울 강남으로 이동했다. 박형기 사진부 인턴기자가 동행했는데 손에 든 카메라가 ‘니콘’이다. 니콘은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계열사다.

카메라 시장은 니콘과 캐논, 소니 등 일본 기업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박 기자는 “스웨덴의 ‘핫셀블라드’나 독일의 ‘라이카’ 같은 브랜드가 있긴 하지만 가격대가 높은 편이라 사실상 카메라는 일본 대체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난달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앞두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양국 취재진 앞에서 “캐논? 니콘?”이라며 카메라 브랜드를 물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고노 외무상이 한국 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의식해 일본 카메라 브랜드를 확인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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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일본산 탈출기'. 세안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에어리즘, 트라이 셔츠, 니콘 카메라, 유니클로 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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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탈출기. 그래픽=김경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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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일본산 탈출기'. 색조화장품(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화장솜, 기초화장품, 인공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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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도 맘 놓고 먹지 못해(20대 이주현 인턴기자)

눈을 떴다. 오늘은 ‘일본 제품 없이’ 하루를 보내는 날인데, 화장대를 보니 출근 준비부터 어려울 것 같다. 시세이도 아네사 선크림, 슈에무라 하드 포뮬러 아이브로, 키스미 헤비로테이션 아이브로, 안나수이 립스틱, 캔메이크 파우더….

색조 화장품이 모두 일본 제품이다. 피부에 익숙해진 화장품을 오래 사용하는 편이라 불매운동이 한창일 때도 쉽게 바꾸지 못했다. 당장 대체할 화장품을 구할 순 없었다. 할 수 없이 안방으로 건너가 엄마가 쓰는 제품들을 몇 개 골랐다.

그러고 보니 화장솜도 일본 ‘시루콧토 솜’이다. 일본 제품이라는 걸 알았지만, 뭐랄까 스킨로션을 경제적으로 잘 흡수한다고 할까.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 쭉 써 왔다. 이 참에 다른 국산 제품을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침식사 대신 마시는 아몬드 우유. 그런데 음료에 들어가는 향신료가 일본 사이타마에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넷에는 제조사에 직접 문의해 사실을 확인까지 했다는 네티즌의 글이 올라왔다. 그래서 오늘 아몬드 우유는 패스. 앞으로도 마실 때마다 마음이 뜨끔할 것 같다.

가방에 든 펜은 학생 때부터 10년 넘게 사용해온 ‘제트스트림’이다. 유명한 일본 필기구다. 필기감을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라 이 펜을 주로 썼다. 소셜커머스 사이트를 통해 두 박스나 구입했는데, 한숨이 나온다.

선배가 취재원의 점심 식사 자리에 함께 가자고 한다. 명함을 챙기려고 보니 명함집이 거슬린다. 일본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에서 산 제품이다. 지퍼케이스가 편리해 늘 들고 다닌다. 고백하자면 깔끔한 디자인, 군더더기 없는 품질에 끌려 ‘무인양품’에 빠져있던 적이 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된 후엔 발길을 끊었다.

점심 식사 후 국회 기자 휴게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렌즈를 낀 채 자고 일어나면 눈이 뻑뻑하다. 필수품으로 들고 다니던 인공눈물을 보니 일본 제품이다. ‘이렇게 많은 일본 제품을 쓰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 인공눈물을 넣지 못해 하루 종일 눈이 아팠다.

퇴근길에 약국에 들러 방부제가 들어있지 않으면서 렌즈 착용과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인공눈물을 달라고 하니 약사가 일본 제품을 추천한다. 국산 제품과 품질 차이가 크냐고 묻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 제품이 괜찮다”고 말한다. 그래도 국내산을 구입했다.

저녁 식사 후 입가심으로 먹는 아이스크림도 나를 괴롭혔다. 원산지 표시란에 ‘Made in France’라 적혀 있었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 해보니 일본산 녹차 파우더를 쓴 제품이었다. 결국 냉장고를 뒤져 녹차성분이 ‘국내산’이라고 명시돼 있는 아이스크림을 찾아냈다.

세수 후 꺼낸 기초화장품은 ‘아벤느’다. 아벤느는 프랑스 온천수 성분 화장품 브랜드라 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뒷면을 보니 ‘Made in Japan’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검색해보니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제품 중 일부가 일본 공장에서 생산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난감하다.

침대에 누워 아이패드를 켰다. 애플 제품이 일본산 부품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 생각나 관련 기사를 찾아봤다. 디스플레이와 오디오 코일이 일본산이다. 아이패드를 끄니 뭔가 허전하다. 잠이 잘 안 온다.

◇불매운동 넘어 윤리ㆍ가치 소비 확산

단 하루였지만 이번 체험을 통해 일본 제품이 우리 생활 깊숙한 곳까지 이미 들어와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또 제품과 원료의 원산지를 확인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초코우유나 딸기우유에 들어가는 향신료에 일본산이 많다고 하는데, 한 국내 브랜드의 초코우유 ‘원재료 및 함량’ 표기란엔 ‘원유(국산), 코코아분말(싱가포르산), 카라기닌, 합성향료(초콜릿향, 바닐라향)’이라고만 표시돼 있다. 국내 유명 화장품 브랜드의 바디샤워 성분란에도 ‘정제수,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 암모늄라우릴설페이트...’처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만 나열돼 있다.

이들의 원산지를 확인하려면 하나하나 검색을 하거나 판매사에 확인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일본산 원재료에 대한 표기를 명확하게 해 달라’는 취지의 청원이 올라와 1만명 넘는 사람들이 동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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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품 불매운동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번 불매운동의 성공이 한국 사회에 안겨준 자산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지난 28일 ‘3.1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숭실 평화 대행진’ 참가 학생들이 서울 숭실고등학교에서 녹번 평화의 공원까지 행진하는 모습.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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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품 불매운동은 당분간 지속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박나영 정책개발팀장은 “소비 행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과 품질 등의 경제적 요인으로, 신념이나 지식, 태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은 게 일반적”이라며 “그러나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한국 소비자들의 신념이 바뀌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일본 방사능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불매운동은 명분(무역보복)과 실리(건강)가 합쳐져 저항하는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 팀장은 “무역보복 직전의 일본제품 불매운동 지수를 1, 최고조에 올랐던 시점을 10이라 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둔화돼 4~5 정도로 떨어지게 되겠지만, 무역보복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불매운동이 윤리소비, 가치소비 확산으로 이어질 거란 분석도 나온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나 하나의 불매운동이 일본에 어떤 타격을 줄 수 있겠느냐’는 열패감을 극복한 개인들이 많을 것”이라며 “또 이번 불매운동을 주도하며 소비 윤리, 가치 소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2030 세대들이 앞으로 한국 소비의 주력 세대로 커 나간다는 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불매운동이 단순히 외국 브랜드에 대한 저항을 넘어 가치 있는 소비를 증진시키는 국내 기업, 국내 브랜드를 소비자들이 직접 발굴하고 그들의 물건을 사주는 구매 운동으로 전환된다면 그 또한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이주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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