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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TF현장] 양승태의 14시간 심야 재판…"구치소로 보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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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6차 공판은 14시간 가까이 걸렸다. 사진은 2017년 9월22일 대법원장 퇴임식에 참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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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안 된다" 재판부에 퇴정명령 요청…22일 보석 여부 결정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19일 오후 11시 5분. 재판이 시작된지 13시간이 넘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제가 한 말씀 드리겠다"며 돌연 일어섰다. 노곤했던 법정과 방청석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마이크를 대지 않고 재판부를 향해 뭔가 열심히 얘기했다. 제법 큰 중법정 방청석에서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감이 먼 무전기 너머 소리처럼 띄엄띄엄 들렸다.

"체력이 따라가지 못 해서...더이상 여기 앉아있을 수가...반대신문 하려면 최소 2~3시간 이상...재판에 방해되기 싫습니다. 제가 없어도 변호인도 있고 진행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법정에 폐를 끼칠 수 없습니다...퇴정 명령을 내려주시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농단' 16차 공판은 강행군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는 양 전 원장 재판에 나온 4번째 증인이었다. 검찰이 신청한 증인은 무려 211명. 지금까지 피고인 측이 요구한 '초고강도' 서증조사에 시간을 빼앗겨 증인신문을 2%도 마치지 못 했다. 어느덧 양 전 원장의 구속기간 6개월은 다음달 10일로 끝난다.

검찰은 증인신문에 목말랐는지 오전 시작된 주신문을 오후 7시가 돼서야 끝마쳤다. 고영한 전 대법관의 변호인도 4시간 가까이 증인과 씨름했다. 비교적 젊은 편인 증인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방청객도 하나둘 종종걸음으로 빠져나갔다.

양승태 전 원장 변호인은 오후 9시가 넘을 무렵 "양 전 원장이 취침시간인 10시까지는 구치소에 귀소해야 한다고 한다"고 재판부에 운을 띄웠다. 박남천 부장판사는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피고인의 수면권도 보장해드려야 하지만 오늘은 될 때까지 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오후 11시가 돼가자 변호인은 재판부에 "오늘 재판 진행 일정을 밝혀달라. 알아야 집에 전화라도 하지 않느냐"고 거듭 물었다. 박 부장판사는 "오늘은 증인신문을 모두 끝낼 때까지 하겠다"고 대답했다. 아직 박병대 전 대법관과 양 전 원장의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남았으니 적어도 4~5시간은 더 남았다는 얘기였다. 결국 양승태 전 원장이 일어나서 이제 구치소에 돌려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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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의 최고 책임자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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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반발했다. 그동안 피고인 측의 재판 지연성 전략에 심기가 불편할 만 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고도 재판이 가능한 근거 조항인 형사소송법 제 277조 1항을 들며 재판 속행에 기대를 걸었다.

'피고인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개정하지 못하는 경우에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박주성 부부장 검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궐석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했다"며 "피고인의 재판거부는 부적절하며 공판 절차는 흔들림없이 진행돼야 한다. 피고인의 구속기한 만료 전에 주요 증인의 신문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전 원장 측 이상원 변호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게 재판 거부인지 의문입니다. 검찰도 야간 조사를 할 때는 피의자 동의를 받습니다. 주심 예정시간이 3시간이었는데 오전 11시에 시작해 오후 7시에 끝낸 검찰이 말할 상황입니까?"

검찰은 여전히 쌓인 게 많았다.

"피고인은 양해를 구하는 것을 넘어 재판부에 퇴정 명령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피고인은 본 적이 없습니다. 본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재판부는 결국 공판 종료를 선언했다. 퇴정명령 근거도 불분명하고 형소법 277조를 적용하기도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대신 8월 5일 기일을 잡아 김민수 판사의 남은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김민수 판사는 2015년 2월부터 2년 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제1, 2심의관으로 일하면서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에 따라 수많은 문건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양승태 대법원의 숙원이던 상고법원 설치를 반대했던 대한변호사협회를 압박할 수단을 담은 '대한변협 압박 방안 검토' 개혁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견제 방안을 담은 '전문 분야 연구회 구조개편 방안', 유신 정권의 긴급초지를 불법으로 간주해 국가 배상을 판결한 판사들의 징계를 검토한 '대법원 판례 정면 위반한 하급심 판결 대책' 등이다. 김 판사는 임종헌 전 차장이 불러주거나 메모해준 것을 정리하고 보태 대부분 문건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또 이 문건이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과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에게도 보고됐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기간 만료 전 재판부 직권보석도 가능성이 높아졌다. 양 전 원장 측은 "보석보다는 구속취소로 석방하는 게 타당하다"며 "보석을 하더라도 피고인에게 특별히 불이익되지 않는 쪽으로 조건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재판부는 22일 보석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주십시오!"

법정 경위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교도관의 뒤를 쫓았다. 오후 11시 46분이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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