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지오는 장자연 사망 전 작성한 문건을 봤다고 주장한 뒤 '핵심증언자'로 연일 뉴스의 중심에 섰다. 사진은 지난 4월 윤지오가 국회에서 열린 북콘서트 도중 파안대소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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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의원들, 선의로 도움 주려다 난처해진 상황 직면
[더팩트|강일홍 기자] "우리 사회의 큰 잘못이었던 장자연 사건의 진상을 밝혀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고 가해자들을 찾아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증언자로 자처한 윤지오 증인을 만나게 됐다. 윤지오 출판기념회는 성직자 한 분께서 선의로 도와달라고 요청하셔서 제가 도와 준 것이니 다른 국회의원들과는 상관없음을 밝힌다. 저 역시 두 달 전 출판기념회 이후 윤지오와 접촉하지 않았다. 그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안민석 의원)
이른바 '고 장자연 사건'의 증인을 자처한 배우 윤지오의 편에서 도움을 주다 '실체'가 하나씩 벗겨지며 역풍을 맞은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자기반성 고백'이다. 안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한 의도로 윤지오 증인을 도우려 했던 여야 국회의원들이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면서 "모두 제 탓"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4월 8일 윤지오를 국회로 초청해 여야 의원들과 함께 배우 장자연 사건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윤지오와 함께하는 의원 모임'을 결성했다.
같은 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장자연 증언자, 윤지오 초청 간담회'에는 안 의원과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의원,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 그리고 권미혁·이종걸·이학영·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일주일 뒤인 4월 14일, 윤지오는 안 의원 등의 도움으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자신의 저서 '13번째 증언' 북콘서트를 열어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윤지오는 다수 국회의원들의 '병풍'을 등에 업고 연일 뉴스의 중심에 섰다.
'윤지오 스포트라이트'엔 막강 '의원 파워'도 한몫. 사진은 지난 4월 8일 고 장자연 사건의 증인을 자처한 윤지오가 안민석, 김수민, 추혜선 등 여야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서 열린 초청 간담회에 참석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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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오의 이중적 행태, 장자연 '불행한 죽음' 진실규명 기대와 거리감
故 장자연은 2009년 3월 자택에서 사망한 채 언니에 의해 발견됐다. 구체적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범한 죽음은 아니었다. 실명과 지장이 찍힌 문건의 사본으로 추정되는 자필 문서가 발견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신인 여배우 신분으로 성상납 강요와 폭력 등에 시달렸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해당 문건에는 방송 및 언론계와 금융계 등 일부 유명 인사들이 언급돼 있었고,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강한 분노 표출과 함께 이들의 처벌을 주장했지만 수사는 아무런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와중에 윤지오의 등장은 10여년간 덮여 있던 고 장자연 사건의 관심을 되살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듯했다.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장자연 사망 전 작성한 문건을 봤다고 주장했다. 용기있는(?) 그의 폭로는 언론의 조명을 받기에 충분했다. 온갖 의혹을 남긴 채 봉합된 '억울한 사망'의 진상을 다시 파헤쳐줄 핵심 증언자로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윤지오는 지난 3월 '장자연 사건'의 새로운 핵심증인으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대검 진상조사단 조사를 받기 시작한다.
여성가족부는 3월 12일부터 윤지오에게 산하 기관에서 운영하는 '안전 숙소'를 제공하고 한 술 더 떠 윤지오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 3월 14일부터는 경찰의 보호 아래 서울 시내 호텔에 머물렀다. 경찰청에 따르면 그는 서울 강남 등지의 호텔 3곳에서 방 2개를 사용했다. 4월23일까지 숙박비(1실당 9만9000원~13만5000원)를 지원받아 총 927만4000원이 지출됐다. 범죄 피해자가 아닌 그가 단순히 증언자 신분으로 이런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뒤늦게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윤지오와 함께하는 의원 모임'과 북콘서트가 열리던 무렵은 이미 언론으로부터 그의 행적이 하나둘씩 의심받던 시기다. 하지만 윤지오는 막강 '의원 파워'를 앞세우고 다니며 걸핏하면 파안대소했다. 윤지오의 이런 모습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바란 사람들의 기대와는 처음부터 거리가 멀어보였다. 심지어 장자연을 언급하며 보여주는 심각한 모습조차 '일종의 표정관리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고 장자연의 불행한 죽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윤지오는 지난 4월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1소회의실에서 자신의 저서 '13번째 증언' 북콘서트를 열어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덕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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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과 없는 들러리, '대중적 이슈 vs 정치인 인지도' 유혹의 상관관계
믿음과 신뢰는 한 번 잃으면 좀처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설령 좋은 취지로 나섰더라도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끼었다면 종국엔 박수가 아닌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 윤지오는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이 더 주목받아야 한다"며 폭로를 자처했지만 앞 뒤 안 맞는 행적으로 자가당착의 결과를 자초했다. 그는 사건조사가 마무리되기도 전 돌연 캐나다로 출국한 뒤 김수민 작가 명예훼손과 사기혐의, 후원금 모금 형사피소 및 범죄피해자보호기금 반환 고발 등 각종 소송에 휘말렸다.
캐나다 출국 후 "한국 미디어가 창피해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하겠다"고 주장한 윤지오는 여전히 SNS에 숨은 채 자신의 주장과 반하는 기사를 쓰는 국내 언론을 향해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윤지오는 지난 1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늘 김00 기자를 상대로 제1차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힌 뒤 "진실을 왜곡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저작권 침해, 영상조작, 인신공격과 명예훼손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빠짐없이 순차적으로 추가 고소를 진행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안민석 의원은 2016년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 의혹'을 주도적으로 제기하면서 국민적 조망을 받은 바 있다. 대중적 이슈는 정치인의 인지도를 높이는 좋은 먹잇감이고, 이번 '윤지오 건'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는 듯했다. 장자연 사건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다시 묻혔다. 결과만 놓고 보면 되레 발등을 찍은 셈이 됐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도 북치고 장구치는 요란한 가장행렬에 들러리를 선 듯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배는 바다로 가야지 산으로 가서는 안 된다. 이제 장자연 사건보다 윤지오의 실체를 더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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