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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TF현장]'위풍당당' 양승태, 여전히 대법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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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의 최고 책임자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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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혐의 1차 공판 …박병대·고영한도 여유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겉옷도 벗어주세요.", "어서 올라가세요."

2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1회 공판기일 취재를 위해 417호 형사대법정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통상 법정 방청을 위해서는 어느 법정인지에 따라 각 법정 출입구(1~6번)에서 소지품 검사에 응해야 하는데 이날 5번 출입구는 평소보다 더 엄격히 소지품 검사가 진행했다. 지난 수개월간 검사에서 겉옷을 벗은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는 재판을 앞둔 오전 9시 45분께였다. 때마침 불구속 상태인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이 1차 공판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5번 법정 출입구로 들어서자, 법원직원들은 검색대에서 소지품 검사를 받던 사람들을 재촉했다. 한 직원이 "저쪽에 가서 잠시기다리세요"라고 해서 그 지시에 따랐더니, 다른직원이 어서 올라가라고 부추겨 5번 법정출입구가 있는 2층에서 4층까지 뛰어 올라가야 했다.

417호 형사대법정 분위기도 여느 때보다 삼엄했다.

23일 김경수 경남지사 항소심 5차 공판에서는 재판이 거의 끝날 무렵 갑자기 한 여성이 법정에 들어와 앉더니 신문을 꺼내 10여 분간 보다 나갔지만, 당시 법원직원들은 그냥 놔뒀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전 대법원장과 전 대법관들을 맞는 법원직원들의 태도는 예우를 넘어 비장하게 느껴졌다.

박병대,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이 먼저 법정에 들어섰고, 구속 상태인 양 전 대법원장이 모습을 보였다. 양 전 대법원장이 법정에 들어서자 두 전 대법관을 비롯한 피고측 변호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우를 갖췄다. 양 전 대법원장이 법정에 출석한 것은 지난 2월 26일 보석 심문기일 이후 3개월여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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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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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첫 공판은 시작부터 검찰과 변호인들의 날선 공방이 이어졌다.

검찰이 먼저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등 당시 박근혜 정부의 관심 재판 정보를 청와대와 교류하고 선고결과에 개입한 정황 등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 증명과 관련된 입증계획 등을 설명했다. 그러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검사의 모든 설명과 모두 진술 중 공소장 낭독 등은 피고인의 모두 진술이 끝나고 해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고,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측 손을 들어줬다.

양측의 신경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피고인과 변호인의 모두진술 순서를 놓고도 의견이 달랐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변호인이 먼저 모두진술을 한 뒤 양 전 대법원장이 보충해서 하겠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피고인이 우선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양 전 원장의 짧은 모두진술 후 변호인의 모두진술이 이어졌고, 오후에 진행된 보충진술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며 작정한 듯 20분 넘게 검찰에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법관생활을 42년 했지만 이런 공소장은 처음봤다. 법률가가 쓴 법률문서라기보다는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자문을 받아 한편의 소설을 쓴 것이라 생각될 정도다."

"이 사건 공소장 맨 첫머리에는 흡사 피고인들이 엄청난 반역죄를 행한 듯이 아주 거창한 거대담론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결론 부분에 공소사실을 축약해야 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재판 거래는 온데간데 없고 겨우 휘하 심의관들한테 몇가지 문건과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것이 직권남용이란 것으로 끝을 낸다. 저를 찾아오는 여러 동료 법률가들도 공소장 읽고, 이런 공소장이 다 있냐며 깜짝 놀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마음을 조오현 시인의 시 '마음하나'를 통해 드러냈다.

<마음하나>

그 옛날 천하장수가 천하를 다 들었다 놓아도

모양도 빛깔도 향기도 무게도 없는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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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고영한 전 대법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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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전 대법원장은 "최근 저를 비롯한 몇몇 사람에게 쏟아지는 도를 넘는 공격에 이런 마음 하나로 견뎌왔다"면서도 "그러나 요즘 보면 이런 마음 하나로 견뎌야 할 사람은 저 뿐은 아닌 것 같다. 이 사건 공소에서 나타난 여러가지 문제점, 재판부에서 잘 관찰해 피고인들 마음에 지장이 없도록 적절하고도 강력한 소송 지휘를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병대, 고영한 두 전직 법원행정처장도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박 전 처장은 "법원행정처장으로 있는 2년간 사법부의 자존심에 한치라도 금이갈까 늘 경계했다. 더 나은 사법시스템을 만들려고 했는데, 공소장에는 부적절한 보고서가 작성됐다고 쓰여져 있다"며 "이 자리에서 모든 과대포장과 견강부회를 일일이 꼬집어 말할 생각은 없지만, 사안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 역사의 페이지에 정확히 쓰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후배 법관들로 구성된 재판부에는 "피고인이 법조 선배라는 생각은 접고 사리를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고 전 처장도 "공소사실을 보면 그토록 노심초사하며 행정처장 직무를 수행한 것이 모두 직권남용을 했다고 쓰여져 있다. 헌법적 긴장상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재판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부당한 이익도모, 반헌법적 재판개입으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법원 위기상황에서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한 행동들을 부당한 조직보호로,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을 인사불이익 조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단행했던 조치들이 사후에 보기 부적절한 측면이 있더라도 권한을 남용하거나 직무유기를 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 사람의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발언을 할 때도 큰 목소리로 정확하게 말했다. 모든 범죄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니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모두진술을 마친 뒤 오후에는 서증조사를 진행하며 본격적인 심리를 시작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양측의 공방이 매 사안마다 계속되면서 입장차를 정리하는데 진땀을 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 박남천 부장판사는 "분량이 방대한 만큼 오늘과 31일과 6월 5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검찰측 서증조사를 진행하고, 6월 7일부터 증인신문 절차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happ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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