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한 두 가지 측면에서는 소수자입니다. 자신의 불편은 크게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의 소수자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인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화요일 한국 사회에서 유독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장애인 형제를 둔 비장애인 형제, 자매들이 15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있다. 왼쪽부터 고지유(가명)씨, 함소현씨, 이상훈 사회복지사. 홍인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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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면 (동생을) 탓하는 것 같잖아요. 힘들다는 말이나 생각만으로 죄책감이 드니까 내가 더 잘 해야지. 하면서 넘어가는 거죠.”
세 살 터울의 남동생을 둔 직장인 박혜연(27)씨. 어린 시절 그의 남동생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말로 표현하지 않고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막무가내로 울곤 했다. 그런 동생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동생이 자폐성 장애가 있다거나, 그것이 어떤 장애인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동생의 장애를 알게 된 박씨는 ‘착한 아이’가 되기로 했다. 동생이 아프니 부모님이 자신보다 더 신경 써주고 돌봐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주변 어른들도 그에게 ‘너라도 엄마한테 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드러내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동생의 장애 때문임을 박씨는 알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착한 아이는 ‘거짓말쟁이’가 됐다. 부모님께 자신 만큼은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어도 무조건 “괜찮다, 좋다”고만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 때도 집에는 꼭꼭 이 사실을 숨기다 한 학기가 다 지나서야 털어놨을 정도였다. 박씨는 그렇게 씩씩하고 당차고 무엇이든 다 잘하는 ‘○○이 누나’로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무살이 넘어 엄마와 말다툼을 하다가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엄마가 쟤(동생)한테 만큼 나한테 신경 써준 게 뭐 있어.” 그제서야 박씨는 깨달았다. “고개만 돌리면 나보다 더 힘든 애가 있고, 또 고생하는 엄마가 있고. 그래서 ‘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내 안에도 나도 모르던 어떤 억울함이나 답답함이 있던 거에요.”
◇사랑 못 받고…철드는 비장애 형제ㆍ자매들
형제ㆍ자매는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는 인간관계 중 하나다. 아동기에서 시작, 성인이 되고 나서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 발달(지적ㆍ자폐성)장애인을 형이나 동생으로 둔 비장애 형제ㆍ자매들에게 이 관계는 더욱 특별하다.
보건복지부의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2000년 10만6,802명이었던 발달장애인은 지난해 2배가 넘는 23만3,620명으로 껑충 뛰었다. 그리고 이들 자폐성장애(100%)와 지적 장애(97.6%)를 가진 사람 거의 대부분은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 2014년에야 발달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장애인과 가족을 위해 정부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돌봄은 여전히 가족의 몫이다. 자폐성 장애인의 98.5%는 부모가 돌보고 있고, 지적 장애인의 경우에도 부모(72.8%)가 대부분 도움을 줬다. 그 다음으로는 형제ㆍ자매(8.2%)였다. 자녀가 태어나 발달장애 진단을 받게 되면 부모는 재활치료 교육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아이 곁에 붙어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비장애 형제ㆍ자매는 상대적으로 ‘덜 아픈 손가락’ 신세가 된다.
가족뿐 아니라 사회적인 관심도 적다. 비장애인 형제ㆍ자매에 대한 현황조사와 연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한국학술정보(KISS)에 따르면 장애인 본인이나 부모에 대한 학술연구는 수만건이지만, 이들의 형제ㆍ자매 관련 연구는 100여건에 불과하다. 호주 출신으로 뇌병변장애가 있는 언니를 둔, 장애인 형제ㆍ자매 상담가인 케이트 스트롬에 따르면 비장애 형제ㆍ자매들은 장애아에게 관심과 보살핌이 집중되는 사이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어린 시절에 혼자 방치되었다는 소외감이나 우울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가질 수밖에 없는 장애가 있는 형제ㆍ자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죄책감에도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들의 소외감과 분노, 우울, 두려움, 죄책감 같은 복잡한 감정은 언제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물론 박혜연씨처럼 모두가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로부터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기억에 아예 ‘가족이 없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지적장애 1급 여동생이 있는 유문형(가명ㆍ32)씨는 “초등학생 때 철 없는 마음에 엄마에게 나도 장애인이었으면 좋겠다고 투정을 부렸다가 ‘넌 멀쩡하니 행복한 줄 알아라’고 크게 혼난 기억이 있다”면서 “부모님은 동생을 돌보느라 바빠 나와 하루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게 보통이었고, 생일이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에도 선물 달란말 한번 못했다”고 돌아봤다. 유씨는 부모로부터의 애정을 기대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 독립자금을 모아서 집과 멀리 떨어진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가족과는 사실상 연을 끊었다. 그는 “부모님이 내게 해준 것이 없으니 내게도 무언가를 기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고아’라고 한다”고 말했다.
지적ㆍ자폐성 장애인 등록자 추이 및 발달장애인 돌봄 유형 조사 결과. 그래픽=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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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바깥에서도 ‘장애인의 동생’ 꼬리표
가족 울타리 밖에서도 ‘장애인의 가족’ 이라는 꼬리표는 비장애 형제ㆍ자매를 따라다닌다. 성장과정에서 상처를 남긴 것은 형제의 장애 그 자체보다는 주변의 부정적 시선 혹은 태도였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일상적인 욕설인 ‘○신’ ‘(장)애자’ 라는 말에 장애인 본인보다 더 상처를 받기도 한다.
두 살 많은 오빠가 자폐성장애를 가진 대학생 송서원(25)씨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장애는 부끄럽거나 숨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오빠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송씨에게도 잊히지 않는 차별의 기억이 있다. 송씨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오빠가 장애인 등록을 하자 한 여자아이가 ‘너희 오빠 장애인 등록했으니 이제 공식적으로 바보가 됐다’는 말을 한 것.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송씨는 “그러자 그 아이가 ‘역시 바보 동생이라 때리지도 못 한다’고 하더라”며 씁쓸해했다.
주변의 시선이 이렇다 보니 인간관계를 맺을 때도 장애를 제대로 이해해주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지나치게 시혜적이거나 동정적인 시선도 이들에게 불편하다. 취업준비생 고지유(가명ㆍ22)씨는 “중학생 시절 친구가 오빠의 장애를 얘기했더니 너무 불쌍해하고 안쓰럽게 여겨 그 이후로는 어쩐지 그 친구를 전처럼 대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고씨는 “사람을 새로 사귀면 2, 3년 이상 지켜보고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면 (오빠의 장애를) 말하는데, 이야기를 꺼내기 전 반응에 따라 관계를 끊을 결심까지 한다”고 말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 시각 때문에 이성교제나 결혼 등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아예 포기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이상훈(29)씨는 “누나의 경우는 7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큰 형의 지적 장애 때문에 ‘장애인 가족과 함께 살기 힘들 것 같다’고 얘기해 헤어진 적이 있다”면서 “저도 전 여자친구가 같은 이유로 결별을 통보한 적이 있다”고 씁쓸해 했다. 윤미래(33)씨는 지적 장애인인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비자발적인 비혼주의자를 택했다. 윤씨는 “만약 배우자가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이후가 문제”라며 “내가 먼저 죽기라도 하면 남편이 동생을 돌봐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생 진로에 영향을 미치는 장애형제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도 장애를 가진 형제ㆍ자매의 존재는 영향을 준다. 장애인 가족으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사회복지나 특수교육 등으로 진로를 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상훈씨는 “성인기의 비장애 형제ㆍ자매 모임을 16명 정도가 같이 하는데 나를 포함한 6명이 사회복지사나 관련 학과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함소현(21)씨는 “일 자체가 잘 맞았고 흥미가 있어 진로를 결정했다”면서도 “동생과 평생 살아가야 하는데 전공 덕분에 동생의 삶을 더 이해할 수 있게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이들은 장애 형제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부모를 대신한 돌봄과 부양은 자신들의 몫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함소현씨는 “취업할 때도 정말 하고 싶은 일보다는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며 “저는 자립할 수 있지만 장애를 가진 동생은 자립하는데 시간이 걸리다 보니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고지유씨는 “중학교 때 공부가 너무 하기 싫을 때면 ‘이러면 오빠를 못 먹여 살린다’고 스스로에게 목적의식을 불어넣곤 했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가질 수 있는 일자리는 일할 수 있는 시간도 그렇고 벌 수 있는 돈도 적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 월급의 일정부분을 오빠를 돌보는데 쓸 예정”이라고 했다.
형제자매의 버팀목이었던 부모님들이 먼저 세상을 뜨는 것도 이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이상훈씨는 “부모님이 내겐 형을 걱정하지 말라면서 짐이 되지 않게 준비하고 있다고 하시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부모님 역시 막연하기는 마찬가지”라며 “부모님이 당장 돌아가신다고 했을 때 앞으로 형제ㆍ자매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는 장애가족을 둔 우리 모두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상황은 이렇지만 현재 한국에서 비장애 형제ㆍ자매를 위한 복지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올해 6월에 영유아 보육법 개정으로 장애인의 형제ㆍ자매가 어린이집 우선 입소 대상이 된 게 지원이라면 유일한 지원이다. 복지부도 현재 다른 지원책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 장애 형제를 둔 비장애 형제라는 이유로 이들이 떠 맡아야 할 부담은 예상보다 훨씬 무겁다. 사회적 편견의 개선과 함께 장애인을 위한 충분한 사회적 지원이 이들의 어깨에 놓인 짐을 덜어줄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복천 한국장애학회장은 “다수의 비장애인 형제에게 우리 사회 전반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장애 형제들과 살아 가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비장애 형제ㆍ자매가 장애 형제의 부양자 및 옹호자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 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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