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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박정희 긴급조치 발령은 불법행위” 양승태 대법원 반대 판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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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재판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 행위 자체가 불법이므로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긴급조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한 양승태 대법원 판결에 배치되는 1심 판결로,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양승태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지 못한다고 결정한 이후 이같은 판결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7부(재판장 임정엽 부장판사)는 김모씨와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근 김씨 등 승소 판결을 내렸다. 소송이 제기된 지 6년만에 나온 결론이다.

김씨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4년 1월 선포된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시민들이 연행·구속되자 ‘개헌 청원 운동 성직자 구속 사건 경위서’를 작성해 널리 알리고 긴급조치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독재적인 악법이라고 주장하며 긴급조치 철회 운동을 벌였다. 그러다 김씨는 자신이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비상보통군법회의로부터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확정됐다. 2014년 김씨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이후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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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 긴급조치 4호 사건을 맡은 비상고등군법회의 모습. 오른쪽 변호인석에 선 인물이 한승헌 변호사다. 출처 : 경향신문 ‘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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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양승태 대법원’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 위헌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동한 것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불법행위는 아니라며 국민 개인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도 지난해 8월30일 민주화운동법에 의한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별도로 받을 수 있다고 해 과거사 피해자 구제의 범위를 넓히면서도,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했다.

헌재 결정 이후 일선 법원의 국가배상 소송에서 과거사 피해자들 손을 들어주는 판결들이 많이 나왔지만 대부분은 긴급조치 발령 자체가 아니라, 수사·재판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점에서 불법행위라고 인정하는 경우였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양승태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해 패소 판결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판결은 고문 등 가혹행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긴급조치 발령 자체가 불법이므로 긴급조치가 적용돼 수사·재판을 받은 피해자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긴급조치가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기존 대법원 입장에, 공무원의 ‘고의’에 의한 위법행위라는 점을 더했다.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하려면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돼야 한다.

재판부는 “당시 대통령은 긴급조치 1호 발령이 유신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요건과 한계를 준수하지 않았고, 긴급조치 1호에 의한 수사·재판 등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1호를 발령했다”며 “이러한 대통령의 긴급조치 1호 발령행위는 대통령의 의무를 위반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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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30일 오후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긴급조치’ 판결 관련 기자회견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민변을 비롯한 긴급조치피해자모임등 시민단체들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 행위를 국가배상법상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본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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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측은 김씨 등을 불법으로 구금하거나 고문 등 가혹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상관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1호 발령행위가 공무원의 고의에 의한 위법행위에 해당하고, 김씨 등이 긴급조치 1호에 의한 수사·재판에 의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인정한 이상 수사기관이 김씨 등을 불법으로 구금하거나 이들에게 가혹행위를 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했다.

2016년에는 광주지법 민사13부(재판장 마은혁 부장판사)와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재판장 김기영 부장판사)가 양승태 대법원에 배치되는 판결을 한 적이 있다. 두 재판부도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직무상 의무를 가진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령한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국가가 국민 개인에 대한 배상책임을 진다고 했다.

이혜리·유설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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