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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눈 감고 '벚꽃축제'에 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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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마주한 삶, 집안에서조차 불편…철저한 비장애인 위주 환경, 그나마 '사람들 도움'이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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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벚꽃을 보러 가기 전, 아내와 함께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를 찾았다. 미리 연습을 하고, 사전에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아내가 옆에 있음에도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사진=벚꽃보다 아름다운 남형도 기자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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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뺨에 무언가 사뿐히 스치는 게 느껴졌다. 간지러운 감촉에 놀라 발걸음을 멈칫했다. 뒤이어 비슷한, 살가운 촉감이 왼뺨에도 느껴졌다. "와아, 눈 오는 것 같다." 12시 방향 즈음에서, 누군가 탄성을 내뱉었다. '아, 벚꽃잎이구나' 그제서야 짐작했다. 그 자리에 잠시 섰다. 적당히 기분 좋은 봄바람이 온몸을 감쌌고, 등엔 오후 햇살이 따스히 쏟아졌다. 스쳐가며 잠시 귀에 머물러 있던 한 여성 웃음 소리는 맘을 같이 들뜨게 했다. 아마 20대쯤 됐을까. 코끝을 찌르는 고소한 군밤과 번데기 냄새는 잊고 있던 허기를 돋궜다.

낭만은 그리 오래 못 갔다. 발걸음을 옮기니 다시 오감(五感)이 곤두섰다. 사람들 말소리는 어디랄 것도 없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위치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앞을 살펴야 할 흰지팡이(시각장애인들 보행 도구)는 누군가 발에 계속 걸렸다.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 외에도 벚나무나, 노점상 리어카로 추정되는 장애물을 피하기 바빴다. 혹여나 넘어질까, 부딪힐까, 살금살금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쿵' 하고 뭔가에 머리를 박았다. 만져보니 벚나무였다. 얼굴 높이에 있는 굵은 가지라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고개가 뒤로 꺾이는 순간, "아이고!"하는 주위 사람들 걱정이 들렸다. 이마도, 마음도 쓰려왔다.

눈을 감고 '벚꽃축제'에 갔었다. 16일 오후, 벚나무만 1000그루가 넘는다는 여의도 윤중로로.

'벚꽃을 못 보는데, 뭐하러 가냐' 반문할 수 있다. 실제 나도 비슷한 물음을 던졌었다, 시각장애인에게.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집에서 뉴스로 '벚꽃이 폈다, 봄이 왔다'고 듣는 거랑, 축제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맑은 공기를 쐬는 건 다르다"고. 지극히 내 위주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얘기가 이어졌다. 혼자서 가는 건 엄두를 못 낸단다. 활동 보조인하고 가야 한단다. 홀로 간단 생각 자체를 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편하다"면서도 "근데 뭘 하나 먹더라도 누군가에게 노출이 되는 거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어렴풋이 짐작이 됐다, 어떤 얘기인지. 편의점에 캔맥주 하나를 사러 가도, 집 앞 분식점서 떡볶이 한 접시를 먹으려 해도, 활동 보조인이 필요하단 얘기였다. 하물며 벚꽃 구경을, 혼자 가면 안되냐 했으니 헛웃음이 나오는 게 당연지사. 그런 얘길 들으며 맘이 씁쓸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봄바람 한 번 쐬러 가는 게 그리 큰 욕심을 부리는 것일지.

그런 생각들을 거치고 나니, 흰지팡이 하나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노원서울시립시각장애인복지관서 약 일주일(4월10일~18일) 동안 빌렸다. 복지관 관계자가 "혼자 다니면 위험할 것"이라고 했다. 의욕에 넘쳤던 맘이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 도전해보기로. 위험하다면 위험한 이유를 밝혀야, 조금이라도 바뀔테니.




집안이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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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보행할 때 기본자세.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부딪치지 않도록 오른쪽 팔꿈치를 가슴 높이로 들고 걷는다. 집안은 훤한데도 눈을 감으니 긴장하게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바깥에 나가기 전, 충분한 교육과 연습이 필요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제작한 영상들을 봤다. 보행 기초 기술, 지팡이 기술 지도, 실외 보행 기술 등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많이 낯설었다. 사실 좀 긴장이 됐다. 앞을 안 보고 다니는 건 해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어서.

집에서 먼저 연습하기로 했다. 눈 감고도 다닐만큼 익숙한 공간이라 생각했다.

근데 막상 눈 감으니 그게 아녔다. 보행 기본 자세를 먼저 취했다. 영상에서 배운대로 팔꿈치를 꺾고, 어깨 높이까지 들어올려 걸었다. 그리고 그게 왜 필요한지, 이유를 금세 알게 됐다. 세 발자국 만에 콘크리트 벽에 '쿵' 하고 부딪혔다. 하마터면 얼굴을 박을 뻔했다. 몸이 다치지 않게, 보호하기 위한 거였다. 한 번 부딪치고 나니 두려움에 휩싸였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걷게 됐다. 이미 내가 잘 알던 편안한 공간이 아녔다. 그만큼 방향과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방에서 거실까지 나가는 것도 힘들었다. 몇 발자국 안되는 데도. 방 입구에선 아내가 아끼는 화분을 발로 찼다. 놀라서 황급히 눈을 떴다. 다행히 눈치채지 못한듯 해 얼른 흙을 주워 담았다. 생존이 걸린 일이었다. 다시 눈 감고 걷다, 한두 걸음 가서 눈을 떴다. 많이 움직인 줄 알았더니 코 앞이었다. 또 눈을 감았다. 앞에 뭔가 있을 것 같고, 부딪칠 것 같고, 그래서 온몸이 뻣뻣해졌다. 한 시간 정도 연습하고 나니 목과 어깨가 뻐근했다. 그나마 조금씩 익숙해졌다.




동네는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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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이 계단인데, 정지하란 경고를 줄 점자블록 하나 없었다. 우리 동네지만 창피하다. 기사에 쓰기 위해 사진 찍을 때만 잠시 눈을 떴다. 정말이다./사진=남형도 기자




그 다음 날엔 동네로 나갔다. 현관문이 닫힌 뒤 눈을 감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손으로 더듬어 1층 버튼을 눌렀다. 공동 현관 출입문으로 엉거주춤 나갔다. 공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지자, 긴장이 배가 됐다.

침착하게 흰지팡이를 펼쳤다. 오른쪽·왼쪽을 번갈아 가며 터치하듯 짚었다. 양쪽 어깨 폭보다 조금 넓게 짚으라 했다. 웬만큼 익숙할 거라 생각했는데, 초반부터 머리가 새하얘졌다. 어디가 어딘지 가늠이 전혀 안 됐다. 방향도, 거리도. 몇 발자국 떼다 그대로 멈췄다. 망망대해(茫茫大海) 속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긍정적인 성격이라 웬만한 난관도 잘 헤쳐왔다. 근데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이 생각 뿐이었다. 이리 막막한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점자블록 읽는 법을 배워뒀지만 소용 없었다. 동네엔 점자블록이 엉망이었다. 아예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끊겨 있는 곳도 많았다. 동네를 그리 많이 다녔으면서, 그걸 처음 알았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유일하게 의지할 건 흰지팡이와 감(感) 뿐이었다. 어디까지 왔는지, 여기가 맞는지 생각하는 통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영 힘들었다. 10분을 헤맨 뒤 눈을 더보니, 고작 아파트 한 동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 와 있었다. 30여미터에 불과한 거리였다.

평소 다녔을 땐 몰랐는데, 길이 참 불친절했다. 폭도 일정치 않고 쭉쭉 뻗은 직선도로도 아녔다. 같은 방향이라도 자주 틀어야 했다. 잘 가고 있나 싶으면, 흰지팡이 끝이 뭔가에 계속 걸렸다. 오토바이인지, 자전거인지, 뭐가 뭔지. '장애물' 투성이었다. 도로 경사와 굴곡도 민감하게 느껴졌다. 몸이 기우뚱 할 때마다 불안했다. 또 흰지팡이가 알아챌 수 없는 '사각지대'가 많았다. 가슴 높이로 삐져 나온 나뭇가지 같은. 부딪칠 때마다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1시간 뒤엔 몸이 통나무 마냥 딱딱해져 있었다. 뒷목은 뻣뻣하고, 허리는 욱신거렸다. 발엔 촉각이 곤두서고, 입은 바짝바짝 마르고, 숨이 가빠졌다. 흰지팡이를 하도 꽉 쥐어서 손목이 아팠다.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맘까지 들었다. '이건 체험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란 생각에 견뎠다. 쥐똥 만큼이라도 나아지려면, 짐작하고 이해하고 공감(共感)해야 했다. 동네를 꾸역꾸역 한 바퀴 돌고 나니, 등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래도 꽤 익숙해졌다. 흰지팡이를 툭툭 놓으며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어디선가 달려오던 '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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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당당히 세워져있던 노란 차. 흰지팡이를 짚고 가다 머리를 박을 뻔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16일, 벚꽃을 보러 가기로 맘 먹은 날이 됐다. 벚꽃이 만발하는 여의도 윤중로로 갈 참이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또 1킬로를 넘게 걸어야 했다. 긴 여정을 예상하니 긴장이 됐다. 그래도 날씨가 참 좋았다. 아침 7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이젠 정말 시작이었다.

나갈 채비를 하는데, 평소보다 아무래도 더뎠다. 단순한 동작도 주저하고, 손을 여러 번 내디딘 뒤에야 할 수 있었다. 샤워하고, 몸을 닦고, 밤에 챙겨둔 옷을 휘리릭 입고, 머리는 만지기 힘들 것 같아 모자를 쓰고. 바삐 움직였는데도 시간이 꽤 흘렀다. 스마트폰을 향해 "시리(인공지능)야, 지금 몇 시지?"하고 5번이나 외쳤는데 답이 없었다. 건방졌다. 어쩔 수 없이, 눈을 떠서 시간을 봤다. 1시간 정도 흘러 있었다.

바깥으로 나왔다. 동네는 그간 보행 연습을 했을 때와 달라진 게 있었다. '사람' 과 '차(車)' 였다.

연습했던 밤 시간은 한적 했었는데,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시간은 달랐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멈춰 있는 것들은 조심조심 피하면 됐는데, 움직이는 것들은 대비가 잘 안 됐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적잖게 예민해졌다. 갑자기 뛰어 오는 소리에 흠칫 놀라 멈춰섰다. 어디선가 자전거가 튀어나왔을 땐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더 놀랐다. 스스로 가둔 어둠 속에서, 차가 내는 소리는 '굉음' 처럼 들렸다. 조심조심 가다가, 12시 방향에서 '쌩'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얼음이 됐다.

그나마 인도 위를 걸을 땐 안전(安全)하다고 의지 했는데, 그마저도 깨졌다.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가는 데 옆으로 오토바이가 스쳐 지나갔다. 일상에서 자주 접한 풍경인데도 주저 앉을만큼 놀랐다. 분명 인도가 맞는데, 세워 놓은 듯한 자동차 소리가 들려 의아하고 불안했다.

눈을 감고 보니, 상식에서 벗어난 거리 광경들이 뚜렷히 부각됐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건 마치 위협적인 '괴물' 들로 느껴졌다.




버스 10대를 그냥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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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야할 버스가 왔는데, 그게 몇 번 버스인지 알 길이 없었다. 눈을 감고 찍었다./사진=버스 10대 보내고 추위에 떠는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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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서 가까스로 벗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길 위에서 씨름하느라 이미 지쳐 있었다. 그 와중에 얼굴에 쏟아지는 햇살이 자그마한 위로가 됐다. 까만 어둠보단 뭔진 몰라도 노랗게, 빨갛게 일렁이는 것들이 더 좋았다. 그 속으로 그림자가 드리울 땐, 무언가 앞에 다가왔다는 것도 가늠할 수 있어서.

"잠시 후 도착 버스는…" 멀리서 버스 안내 멘트가 들려 그쪽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 번호를 떠올리고, 오는 지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듣는 것만으로 정보를 확인하기엔 안내 멘트가 작게 들렸다. 도로 위 차가 오가는 소리에 묻혀,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들어야 겨우 들렸다. 집중하려다 보니, 미간이 나도 모르게 찡그려졌다. 약 5분 뒤 버스 여러대가 온다는 안내 멘트가 들렸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버스가 도착한 뒤에도 탈 수 없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와, 그렇지 않은 버스가 동시에 오니 뭘 타야 하는지 분간이 안 됐다. 당황해서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버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그렇게 버스 10대를 넘게 떠나 보냈다. 아직은 서늘한 아침 날씨에, 봄바람에, 몸이 차갑게 식어갔다. 으슬으슬하고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괜한 자존심에, 사람들에게 "버스가 몇 번이 맞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사실 사람이 어딨는지도 잘 몰라 물어보기 힘들었다. 먼저 물어봐주길 기다렸지만, 그런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불안해져 더 이상 보내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간 버스 정류장서 오늘 체험이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작정하고 용기를 냈다. 버스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OOO번 버스가 맞느냐"고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1시 방향에서 "네, 맞아요"하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스 기사였다.

그리로 걸어가 가까스로 버스에 올랐다. 카드를 어디 찍을지 몰라 헤매니, 버스 기사가 오른팔을 당겨서 찍게 해줬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니 그제서야 한숨이 나갔다. 자리에 앉을 생각도 못하고, 앞문 쪽에 그냥 서 있었다. 버스 안 따스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긴장이 풀리며 나른해졌다. 졸음이 밀려왔다.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싶어졌다.

그때 버스 라디오에서 가수 성진우의 "포기하지 마" 노래가 흘러나왔다. "다 포기하지마. 또 다른 모습에. 나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걸."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다.




지하철의 이름 모를 아저씨, 감사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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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탄 모습. 빨리 못 내릴까 걱정이 돼 문 근처에 서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버스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친절한 버스 기사는 내릴 때도 왼팔을 끌어당겨 카드를 찍게 해줬다. 재차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길에서 이동할 때 그나마 의지가 되는 건 '점자블록' 이었다. 평소 어딨는지도 몰랐는데, 도로 한가운데에 있었다. 세로로 길게 나 있는 건 그 길로 가라는 뜻이고, 동그랗게 여러개 있는 건 방향을 바꾸거나 멈추라는 뜻이다. 발 감각을 곤두세웠지만, 바닥을 느끼는 게 쉽잖았다. '신발창이 좀 더 얇은 걸로 신고 올 걸', 그런 후회가 들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하나씩 내려갔다. 역안에서도 점자블록을 따라갔다.

개찰구서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데, 목소리가 50대쯤 돼 보이는 남성이 뒤에서 등과 팔을 붙잡더니, "지하철 타실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도와주겠다"며 몸을 이끌었다. 그는 성큼성큼 걷고, 예고 없이 방향을 휙 틀었다. 순간 어지러워 휘청거렸다. 흰지팡이가 공중에 붕 뜬 채 바삐 따라다니느라 놀이 기구를 타는 것 같았다. 도와주려는 마음은 정말 감사했지만, 몹시 불안했다.

안내를 해주니 걱정 안해도 된단 생각은 눈이 보일 때 가능한 거였다. 앞이 안 보이는 상태로 그리 급히 따라다니는 건 힘들었다. 차라리 방향만 잡아줬음 좋았겠다 싶었다. 가끔 지하철서 시각 장애인을 봤을 때 어떻게 할 지 몰랐던 게 떠올랐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것 같았다.

이윽고 지하철이 도착했다. "승강장 발 빠짐에 유의하라"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흰지팡이로 여러번 짚었지만, 구멍이 어디쯤인지 가늠이 잘 안 됐다. 찰나의 순간, 긴장도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몇 번을 망설이다, 거의 뛰듯이 점프를 해서 겨우 탔다. 지하철 안에서도 계속 불안에 사로잡혔다. '내릴 때 발이 빠지면 어떡하지. 살짝 눈을 뜰까. 다시 점프를 할까.' 승강장 발판이 있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됐을텐데. 다행히 내릴 때도 무사히 내렸다.




윤중로로 가는 1km, '미로'를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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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역 1번 출구로 나와 걸었다. 여의도공원 근처 벤치에 스마트폰을 놓고 사진을 찍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도와준 사람 덕분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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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역에 도착했다. 1번 출구로 나가 윤중로까지 약 1km 남짓한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여러번 왔던 곳이지만 기억이 안나 낯선 곳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 '길 찾기'가 고난이었다. 점자블록은 길을 헤매지 않게만 해주지,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는 건 아녔다. 그나마 동네에선 어림짐작이라도 하고 다녔는데, 여긴 아녔다. 무작정 걸어가긴 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막막했다.

도시 거리의 민낯은 갈수록 고스란히 드러났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몹시 불친절하다는 게. 모든 설계가 아무 불편도 모르는 비장애인들이 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인도 위엔 흰지팡이에 걸리는 것 투성이라 몇 번씩 부딪치고 넘어질 뻔했다. 코 앞이 횡단보도인데 이를 몰라 그냥 건너갈 뻔했고, 차가 지나가는 소릴 듣고 깜짝 놀라 겨우 멈췄다. 횡단보도 음성 안내기는 어디 붙어 있는지 몰라, 누군가 눌러주길 간절히 기다려야 했다. 녹색불로 바뀐 뒤에도 모르고 멍 하니 서 있었다.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홀로 떨어져 있었다. 외로웠다.

이상한 길로 한참 가다가, 지나가는 이에게 물어보고 겨우 알아차렸다. 다시 흰지팡이에 의지한 채 한참을 되돌아갔다. 점심 시간인지 직장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까지 겹치니 더 진땀이 났다. 마음을 다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이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같았다.

도착 장소를 말하고, 안내를 음성으로 해주는 앱 같은 게 있으면 좋을텐데, 내비게이션처럼. "여긴 OOO입니다. 윤중로까진 100m 남았습니다. 앞쪽에 횡단보도가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12시 방향으로 계속 가십시오." 이런 식으로. 그런 기술을 만들어 줄, 고마운 이는 없을지.



벚꽃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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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이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한 장은 벚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곳으로 찍고, 또 다른 한 장은 뒤돌아서 찍었다. 예쁘게 찍어준, 얼굴 모를 누군가에게 감사하다. 혹시 이 기사를 본다면 댓글을 남겨주기를./사진=고마운 윤중로 행인




"여기가 윤중로가 맞나요?"

"네, 맞아요. 이쪽으로 쭉 가세요."

지나가는 이에게 물어 도착한 걸 알았다. 시간도 같이 확인했다. 낮 12시30분쯤이라 했다.

잠시 가만히 서서 숨을 돌렸다. 그제서야 봄날 오후 풍경이 느껴졌다. 따스한 햇살, 적당한 바람이 불어 마른 땀을 다시 식혀줬다. 사람들 웃는 소리, '찰칵찰칵' 사진 찍는 소리, 소풍을 왔는지 아이들 떠드는 소리, 고소한 번데기 냄새(별로 좋아하진 않음), 새가 지저귀는 소리, 이런 것들이 봄나들이 기분을 충분히 느끼게 해줬다.

벚꽃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녔다. 마음으로 보는 것도 좋았다. 오히려 상상할 수 있어 좋았다.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 하얀 바탕에 내 마음대로 그림을 그렸다. 수많은 인파는 좀 줄이고, 한적한 윤중로를 걷는 모습으로. 벚꽃은 지금쯤 사선으로 흩날리겠지, 저 목소리를 낸 아이는 장난꾸러기겠네, 저 연인은 사귄지 얼마 안된 것 같네, 군밤은 노랗게 잘 익어 고소하겠네. 눈으로 볼 때보다 더 생생했다. 시각장애인에게도 벚꽃놀이는, 봄에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어, 허공을 향해 "죄송한데,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누군가는 대답하겠지 싶었다. 20대 후반 정도 될 법한 여성이 "제가 찍어 드릴게요"라고 흔쾌히 응했다. "어떻게 하면 예쁘게 나올까"하며 혼잣말을 하며 찰칵, "뒤를 완전히 돌아보세요"하며 또 찰칵, 그렇게 두 장을 찍어줬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가슴부터 찍혀 있었다. 혹여나 흰지팡이가 맘에 걸렸던 것일지. 그의 맘이 느껴졌다.




점심 먹으려 안내판 점자 읽으니, '음식점'이라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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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복합 쇼핑몰 지하 푸드코트. 어느 음식점으로 가야할 지, 어디가 어딘지. 눈 감으면 아무 것도 모른다. 바닥엔 점자블록도 없다./사진=배고픈 남형도 기자




몹시 허기가 져서 인근 대형 복합 쇼핑몰로 향했다. 그 과정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험난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다행히 점자블록이 있었다. 이를 따라가니 '점자'로 된 안내판이 나왔다. 집에서 연습을 좀 했던터라 단어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5시 방향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지하 3층엔 영화관이 있다' 정도만. 아래 부분을 더듬어보니 '음식점'이라고만 써 있었다. 죄다 '음식점'이라 돼 있고, 어떤 음식점인지 설명이 없었다.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으란 뜻인지.

지하 3층으로 가서, 또 어디로 갈 지 몰라 잠시 서 있었다. 바닥엔 점자블록도 없었다. '맥OOO' 햄버거 가게가 있단 게 생각났다. 간단히 그냥 때워야겠다 맘 먹고, 묻고 또 물어 찾아갔다. 도착해선 점원 안내를 받았다. 주문하며 시간을 물으니 오후 3시, 첫 끼니였다.

햄버거를 기다렸다 받은 뒤,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거의 처음 앉는 거였다. 허겁지겁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어치웠다. 손에 잔뜩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만큼 배가 고팠다.

다 먹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고였다. 지독하게 몰랐었다. 시각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지. 갑자기 오래 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녹내장을 앓다 시력을 잃었다. 앞을 못 본 채 수십년 세월을 견뎠다. 유일한 낙(樂)이 라디오였다. 중2 때인가 하모니카를 샀었는데, 할머니 방에 들어가면 가끔 불어 드렸다. '고향의 봄', '오빠생각' 같은 동요들을. 그때 할머니가 왜 좋아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우리 집도 못 들어가는…스마트 기술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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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스크린은 시각장애인에겐 최악이다. 아무 것도 가늠할 수 없다. 집에 온 손님 문을 열어줄 수도 없다. 요즘 다이어트를 했더니 턱선이 되살아났다(tmi)./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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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선 축 늘어져서 뻗어 있었다. 덜컹대는 버스에 고단한 몸을 맡긴 채 단잠에 빠졌다.

집 앞에 도착해 현관문 앞에서 또 한 번 당황했다. 터치 스크린 방식, 번호키였다. 미리 카드키를 챙겨왔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 못했다. 눈 감은 채 몇 번을 시도했다가 틀렸다. '삐비비비' 하며 오류음이 계속 울렸다. 어쩔 수 없이, 눈을 뜨고 번호를 누른 뒤 들어왔다. 이미 너무 지쳐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스마트 기술은 편리한 줄만 알았지, 이처럼 예기치 못한 쪽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소외시킬 줄은 몰랐다.

집안에서도 난처한 게 많았다. 싱크대 앞에 붙어 있는 TV도, 인터폰도 모두 터치 스크린 방식이었다. 공동 현관을 들어오려면 위에서 열어줘야 하는데, 그마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단지 앞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집 방문객도 못 맞아주는 것이다.

스마트폰 화면도 터치 스크린이라, 눈을 감은 뒤엔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메시지 소리를 듣고, 연락이 왔다는 것 정도만 짐작할 뿐.

다음날 한 번 더 찾은 '맥OOO' 햄버거 가게도 그랬다. 입구에 들어서니 사람이 꽉 찼는지 엄청 웅성거렸다. 흰지팡이로 주위를 살핀 뒤 키오스크(무인 주문기)로 향했다. 매끄러운 화면만 만져졌다. 터치 스크린이었다. 혼자선 아무 것도 주문할 수 없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실제 겪는 현실이라 했다. 앞을 못 보는 이준범씨는 "신축 아파트들은 온도조절 장치나 이런 것들도 터치 스크린으로 돼 있어서 집에서 일상 생활조차 너무 어렵다"며 "새벽에 추워서 온도를 올리려 해도 몇 도 인지 알 수가 없다. 겨울에 실수로 다른 버튼을 눌러 추위에 떤 적도 있다"고 했다.


열악한 환경, 그걸 메워주던 건 '사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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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일이 이리 힘든 줄 몰랐다./사진=남형도 기자




체험이 끝난 뒤 쓰러지듯 지쳐서 잠들었다. 밥도 안 먹고, 너댓 시간쯤 내리 잠든 것 같다. 그간 평범하게 누려왔던 걷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일이, 시각장애인들에게 그렇게 힘든 건줄 몰랐다. 아니 짐작도 했고, 연습도 했지만, 상상했던 걸 훨씬 뛰어 넘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시각장애인 숫자가 25만2132명(지난해 보건복지부 통계)이나 되는데, 주위에서 왜 찾아보기 힘든지. 바깥에 나오지 않는 게 아니라,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는 거였다.

사실상, 홀로 어딘가를 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그만큼 모든 환경이 열악했다. 점자블록은 엉망이었고, 다니기 쉽게 곧게 뻗은 직선 도로도 얼마 안 됐으며, 그마저도 곳곳에 장애물이 있어 불안한 것들 천지였다. 지팡이 끝은 고르지 않은 보도블록에 계속 걸렸고, 울퉁불퉁한 탓에 점자블록과 구분도 잘 안 됐다. 자전거며 오토바이는 인도 위로 질주했고, 불법 주·정차 돼 있는 자동차도 골칫거리였다. 여긴 어디인지, 어디로 가면 되는지는 고사하고, 당장 내 앞에 뭐가 있는 지도 알 수 없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도저히 못하겠다며, 그냥 포기하고 싶었던 게 한 두번이 아녔다.

불편함을 메운 건 오직 '사람'이었다. 여의나루 역에선 1번 출구를 찾아 헤맬 때, 20대나 30대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다가와 "저도 거기로 나가니 함께 가면 된다"며 안내해줬다. 그는 천천히 내 왼편을 걸으며, 몇 발자국 앞에 계단이 있는지, 손잡이는 어딜 잡아야하는지, 따스히 알려줬다. 바깥에 나간 뒤엔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물어서, 죄송해서 "혼자 갈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땐 한 아주머니가 "신호 바뀌었어요. 건너가세요"하며 "41초 남았어요"하고 알려주기도 했다. 지긋한 목소리의 한 외국인 여성은 영어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걸 친절히 알려주더니, 헤어질 땐 "Good luck(행운을 빌어요). God bless you(그대에게 행운이 있기를)"라고 했다.

평소 무심코 스쳐갔던 이들의 정(情)을 느끼는 건 감사했다. 그리고 좋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운에 따라 달랐다. 좋은 이를 만나면 그리 도움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도로서 한참 헤맸다. 시각장애인들 삶이, 운에 따라 편하고 불편할 순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도 각자 삶을 오롯이 누릴 권리가 있다. 누군가 도움 없이도, 맛있는 걸 먹고 원하는 걸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내겐 하루였지만, 시각장애인들은 평생 겪을 일이다. 그리고, 누구나, 어느날 갑자기 시각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들이 뭔가를 잘못해서 그리 된 것도, 운이 지독하게 나빠서 그리 된 것도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리 됐을 뿐이다. 그렇다면 남일이라 여기지 않고, 언젠가 혹시 닥칠 불행을 위해서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든다면 어떨지. 그런 가정(假定)이 아니더라도, 그냥 서로 보듬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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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봄 벚꽃은 누구에게나 아름답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벚꽃을 보러 윤중로를 다시 찾았다. 그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맘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 세밀하게, 생생하게, 그곳에서 본 것들을 기록했다. 그리고 녹음을 했다. 봄 벚꽃이 핀 풍경을 들을 수 있도록, 그리고 짐작할 수 있도록. 작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눈을 감고 다녔던, 그날 하루 내 맘이 그랬다. 다음은 그때 남긴 기록들이다.




윤중로에 간다면, 어느 벤치 하나에 앉으세요. 햇살에 얼굴이 따스해지는 좋은 자리에. 그럼 맘이 좀 편안해져요. 그리고 고개를 0.5초 정도만 살짝 뒤로 젖혀요. 그럼 벚꽃이 가장 잘 보여요. 하늘이 한 눈에 들어와요. 온통 연분홍빛인데, 사이사이가 언뜻 파래요. 마치 꽃들이 파도 소리를 품은 것처럼. 연분홍빛은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요. 촉감으로 치면 마시멜로랑 비슷한 것 같아요. 말랑말랑한데 그렇다고 흐물흐물하진 않은. 음악이라면 지금 흐르는 '조금씩 천천히 스며들어'란 피아노 연주곡이 그런 색을 띠고 있어요. 향기는 아무래도 복숭아를 닮았어요.

벚나무는 두꺼운 건 팔로 다 못 안을 만큼 굵어요. 굵다란 나뭇가지가 서너 갈래로 뻗어 있고요. '브이' 하는 손가락 모양처럼 갈래갈래 갈라져 쭉쭉 위로 뻗어요. 가지가 엄지 손가락 정도 얇아지면 꽃이 있어요. 15개 정도 되는 꽃들이 한데 모여 동그랗게 펴 있어요. 벚꽃 하나엔 꽃잎이 다섯 개씩 달려 있어요. 가운데 부분은 노란 빛을 띠고 있는데, 뭐랄까 여러 갈래의 팽이 버섯처럼 솟아 있어요. 하얗고 가느다란 줄기 끝에 동그랗고 노란 게 달려 있는. 꽃잎은 새끼 손가락 손톱 정도 크기에요. 동그란데 위아래가 길고, 바깥 끝부분이 살짝 갈라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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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이 내리던 윤중로./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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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은 앞구르기를 하듯 빙그르르 돌면서 떨어져요. 봄에 눈이 내리듯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7cm래요. 눈길에 닿을 때부터 땅에 내려올 때까지, '벚꽃'을 발음하면 시간이 얼추 비슷해요. 차도 위에 떨어진 꽃잎들은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졸졸졸 따라가요. 어찌 그리 달리냐는 듯. 바람이 살짝 불면 벚꽃이 소나기처럼 내려요. 혹시 우산 없이 비 맞아본 적 있나요? 그 느낌하고 비슷해요. 저마다 사진기를 들고 그걸 찍기 바빠요.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거든요.

벚꽃 앞에서 사람들은 설레보여요. 대부분 입꼬리가 엄지 손톱 정도는 올라갔어요. 누구나 주인공이라서 그래요. 새삼 어색한 포즈도 취하고,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도 다시 만져보고요. 다리도 살짝 들어보고, 엄지와 검지를 교차시켜 손으로 하트도 만들고. 남자친구는 여자친구를 위해 기꺼이 무릎을 굽히고요. 사진을 서로 보곤 "이게 뭐야" 하거나 "잘 나왔네"라고 해요. 둘다 웃는 건 똑같아요. 50대로 보이는 어떤 아저씨는 벚꽃잎 다섯 개를 스마트폰 투명 케이스에 넣어가네요. 봄이 가는 게 아쉽나봐요.

꽃잎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떨어져요. 젊은이에게도, 할아버지·할머니에게도,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에게도, 군밤을 파는 아주머니에게도.

그리고 세상의 빛을 잃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눈부신, 당신에게도.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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