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헌법불합치 이후 해결해야 할 과제
낙태죄 폐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결정이 11일 내려진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피켓(왼쪽)과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피켓. [연합뉴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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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269조 1항과 270조는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과 수술한 의사를 각각 1년 이하,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모자보건법은 ▶유전적 장애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 ▶혈족ㆍ인척 간 임신 ▶모체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여기에 해당하면 임신 6개월(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런 합법 낙태는 2017년 기준 3787건(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불과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추정한 전체 낙태 건수는 연 5만건이다.
손문금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형법 낙태죄를 어떻게 할지, 별도의 인공임신중절법을 만들지, 모자보건법의 예외적 낙태 허용 규정은 어떻게 할지 먼저 검토해야 한다”며 “특별법을 둔 나라가 있고, 형법으로 규정하는 나라가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형법과 특별법 둘 다 두고 있으며 임신 12주 이전에 대해서만 허용한다. 또 임신갈등상담소에서 상담하고 확인서를 받아야 낙태 시술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절차 없이 낙태를 허용하되 환자가 원하면 상담을 받도록 하는 나라가 있다. 이 중 우리 나라에 맞는 현실을 찾아야 한다. 손 과장은 “다양한 요소들이 있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치권에서 법을 개정해줘야 한다. 일단은 헌재 결정 취지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덧붙였다.
낙태죄를 둘러싼 논쟁이 20여년 계속되면서 낙태 허용 범위를 넓히자는 데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된 상태다. 하지만 어디까지 넓힐지는 의견이 다양하다. 현재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합법적 낙태는 임신 24주까지다. 이를 따를지, 낙태 사유에 따라 허용 주수를 달리할지 논란이 예상된다. 임신 주수가 길수록 후유증과 사망 위험이 커진다. 게다가 의학이 발달하면서 임신 24주 태아를 낙태하지 않고 출산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 생명윤리 논쟁이 따를 수밖에 없다.
태아 초음파 사진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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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산모 안전을 위해 사회ㆍ경제적인 낙태를 허용하되 주수 제한을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현행 모자보건법 기준은 24주 된 신생아도 치료가 가능한 현재 실정과 맞지 않다. 대체로 해외에서는 12주~16주까지 낙태수술을 가능하게 해놨다. 12~16주라면 낙태수술을 하더라도 산모에 큰 위험이 없다고 보는 것이 산부인과 의사들의 의견이다”라고 말했다.
산모 안전을 위해 8주로 제한하자는 의견도 있다. 낙태로 인한 신체적인 후유증은 10%정도다. 사망 등 중증 합병증은 2% 수준이다. 미국 연구에 따르면 임신 8주부터 2주가 지날 때마다 낙태로 인한 산모의 사망률이 2배씩 증가한다.
개인적 신념에 따라 낙태 시술을 의사가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진료를 거부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낙태는 일반적 진료와 다르기 때문에 의사의 시술 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본은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를 허용한다. 일본은 지역별로 낙태 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지정하고 거기서만 시술하도록 한다.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한본 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부위원장은 "낙태는 형벌로서 죄가 아니라 행정적인 규제로 다스려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외국 사례를 보면 임신 초기 12주 정도는 낙태를 무조건 허용하고 13~24주는 사회경제적 사유 등을 고려해서 허용하고, 24주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방식으로 국회가 논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비급여로 풀어놓으면 지금처럼 무분별한 낙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낙태 주수 기준, 상담 절차 등을 애써 만들어봐야 사문화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최안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현재도 합법적인 낙태는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앞으로 낙태 허용 범위가 넓어지더라도 지금처럼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한다”라며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 비급여로 풀어놓으면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임신 주수나 절차를 만들어봐야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낙태 시술은 국공립 병원이나 지자체에서 허가된 병의원만 하도록 제한해야 실효성 있는 상담이 이뤄지고 숙고 절차와 보고 체계를 갖출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충분한 정보 제공과 지원 없이 낙태를 하면 여성의 권리가 보호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강요 행위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이제 낙태가 합법화됐으니 고민하지 말고 낙태해라'고 강요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압박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최 전문의는 “의료인이 낙태 관련 객관적 정보를 자세히 제공하고 낙태하지 않는 경우 어떤 지원을 받는지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이런 걸 듣고 숙고 과정을 거쳐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국가가 지원하지 않고 ‘나는 허용했으니 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내버려 두면 저소득층, 취약계층은 계속해서 위험에 내몰린다”라고 말했다. 이한본 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부위원장은 “건강보험은 당연히 급여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가 동일하게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출산할때만 급여가 적용되면서 낙태는 급여화 안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본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6개 국가 중 경제ㆍ사회적 이유로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는 31개국이다. 프랑스ㆍ독일ㆍ덴마크ㆍ오스트리아ㆍ노르웨이에서는 임신 12주까지는 임부의 요청만 있으면 낙태가 합법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5월 발표한 ‘낙태죄에 대한 외국 입법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우 임신 12주의 기간 안에는 곤궁한 상황에 부닥쳐있는 임부가 의사에게 임신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임신 여성이 낙태를 행하기 위해서는 1주일의 숙려기간이 필요하다. 의학적 필요에 의한 경우엔 숙려기간이 필요없다.
독일은 임신 여성이 낙태 전 의사와 상담을 해야한다. 시술 3일 이전에 상담사실증명서를 받아야 낙태 시술을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도 의사의 상담을 거쳐야 낙태를 할 수 있다. 영국은 2명의 의사 의견이 있으면 24주까지 임신 여성 요청으로 낙태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낙태를 제한하는 법안이 대거 채택되고 있다. 올해들어 조지아, 텍사스, 미시시피 등 11개 주에서 의사가 태아의 심장 박동을 확인한 이후 낙태를 금지하도록 한 태아심장박동법을 채택했거나 논의 중이다.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돼 초음파로 심장 박동을 확인할 수 있는 6주경부터는 낙태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6주 이전에는 임신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낙태를 금지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스더ㆍ이승호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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