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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장애인 엄마, 세상에 외치다] “평생교육센터가 또 다른 보호소가 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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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발달장애인 평생교육
한국일보

발달장애인 평생교육. 삽화=김경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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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엄마들에게 그렇겠지만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방학은 유독 더 힘든 시기다. 집에서 알찬 시간을 보낸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쌍둥이지만 비장애인인 딸은 집에서 할 게 많다. 책도 읽고 숙제도 하고, 엄마랑 수다도 떨고, 슬라임도 갖고 놀고, TV도 보고 피아노도 친다. 집에만 있어도 할 일이 많다.

지적장애 2급의 아들은 집에서 마땅히 놀 만한 게 없다. 대머리 해골 인형 외엔 일체의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질 않는다. 그 인형마저 손에 들고 다닐 뿐 인형을 이용한 역할놀이 등은 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자 해도 색연필을 휙 던져버리고, 책을 읽어주려 하면 귀를 막아버리고, 슬라임을 손에 쥐어주면 기겁을 한다. 그러다 보니 엄마인 내가 몸으로 놀아주는 것 위주로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아이고~ 한 살 더 먹은 내 몸뚱이가 곳곳에서 비명을 지른다.

아들은 밖에 나가고만 싶다. 다른 이들과 함께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곁에서 뛰어다니는 것뿐이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 군중 속에 어우러지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매일 아침 밥 먹기 바쁘게 밖에 나가자고 조른다. 양말을 잔뜩 꺼내와 현관 앞에 늘여 놓기도 하고, 워터파크 갈 때 입는 구명조끼를 들고 와 거실에 내려놓기도 한다. 말을 못하는 대신 행동으로 나가자는 의사표현을 하는 중이다.

그러면 나는 아들을 데리고 키즈카페도 가고, 지하철 여행도 하고, 대형 쇼핑몰도 가는 등 사람 많은 곳을 찾아 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은 또 어디를 가야 하나’ 매일 고민한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건 아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개학을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도 보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학교에 다니는 학령기 동안은 얼마든지 괜찮다.

◇고교 졸업 이후엔 ‘끝나지 않는 방학’

문제는 9년 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9년 뒤부터, 아들은 그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방학에 들어서게 된다. 아직 어린 초등학생 자식을 키우고 있으면서도 발달장애인의 평생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평생교육. 인간의 교육은 가정, 학교, 사회에서 전 생애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육관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불혹을 넘긴 나도 여전히 교육을 받는다. 배워야 할 필요성이 있는 부모교육을 찾아 다니며 듣기도 하고, 독서 모임 등을 통해 개인적 ‘앎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이러한 일들이 아들에게로 가면 꿈같은 얘기가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 발달장애인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다. 취업해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장애인은 소수에 불과하며, 취업을 못한 대부분의 장애인은 갈 데를 찾아 헤매다 집에만 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장애인의 많은 수는 주간보호소에 들어가 낮 시간을 보내곤 한다. 문제는 보호소가 말 그대로 ‘보호만 하는 곳’처럼 운영되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예산일 것이다. 이용자 중심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만한 충분한 예산이 없다.

이런 상황인데도 보호소는 없어서 못 들어가는 형편이다. 몇 년씩 대기하다 연락이 오면 들어가게 되는데, 그마저도 이용 한도가 있어 몇 년간 다니고 나면 다시 ‘컴백홈’이다.

집으로 돌아오고 난 뒤엔 갑갑한 현실이 이어진다. 이미 늙어버린 부모는 더 이상 덩치 큰 자식을 집에서 감당할 기력이 안 되니 멀리 지방에 있는 시설에 입소 대기를 신청해 놓았다가(서울은 시설입소가 금지돼 있다) 연락이 오면 시설로 보낸다. 또는 늙은 노모가 옆에 끼고 집에만 있는 삶을 살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보호소 대신할 평생교육센터 인력 태부족

이런 현실을 바꿔보자고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가 개관을 했다. 최중증, 중복 장애인도 집이 아닌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2016년 서울시에서 먼저 시작한 이 사업은 현재 전국으로 확대되는 추세에 있으며, 현재 서울엔 10개구에 센터가 들어서 있다.

‘교육’이라는 말이 들어가니 교육부에서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터. 지난해 1월1일부터 평생교육법을 제정해 별도의 팀을 꾸리고 국립특수교육원 내에 국가장애인평생교육센터를 만들어 프로그램 개발 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는 얘기다.

그러면 평생교육센터에서는 그 이름에 걸맞게 발달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을까? 아쉽게도 기대에는 못 미치는 모습이다. 이번에 발달장애인 폭행 사건이 일어난 곳도 평생교육센터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원인을 찾다 보면 인력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말은 평생교육인데, 센터에서 일하는 종사자의 대부분은 교육과 무관한 사회복지사들이다. 발달장애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 연수 등을 통해 ‘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차원에서 보수 교육을 받지만 몇 시간의 연수로 특정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는 건 사실상 무리다.

이런 경우엔 발달장애인이 이해 못할 행동을 하면 그것을 의사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일단은 다잡아야 할 문제행동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 아들이 양말을 신발장 앞에 놓으면 그건 밖에 나가자는 의사표현의 한 방식이지만,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어지르는 행동처럼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설령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치료사라도 제대로 교육하기 힘든 환경인 것 또한 사실이다. 보통 치료사 1인당 4명의 성인 장애인을 담당하고 있는데, 중증 장애인이 다수인 만큼 맡은 인원이 최소 2명으로 줄어야 무엇이라도 해볼 수 있다. 키도 크고 힘도 센 4명의 성인 장애인을 혼자서 감당하려면 매 순간이 전쟁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요구하는 건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다. 이러다 보니 좋은 취지로 설립된 평생교육센터마저 또 다른 형태의 보호소가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드는 게 사실이다.

◇발달장애인도 평생교육 받는 게 당연

상황을 개선하고 평생교육센터가 본래의 제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선,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을 학령기 교육의 연장 선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개선이 먼저 필요하다. 비장애인인 내가 스스로의 욕구에 따라 얼마든지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듯, 발달장애인도 평생교육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관점에서 접근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 분야를 관리 감독할 국가 차원의 강력한 구심점이 필요하다. ‘교육’이라는 개념에서 다가가는 것이니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그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한다. 학령기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것처럼 성인기의 평생교육도 교육부가 주관해 달라는 요구다.

그렇게 되면 인력구성 또한 현재와는 달라질 것이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특수교사가 평생교육센터에 상근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다니는 학교처럼 학령기 교육의 연장선상으로 전문 교육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발달장애인의 평생교육이 보편화하려면 비장애인이 평생교육을 받고 있는 모든 곳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과정이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누구나가 집 가까운 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따로’가 아닌 ‘같이’,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평생교육이 될 수 있다.

혹시 그렇게 되더라도 물론 현재와 같은 시스템의 평생교육센터 역시 더 늘어나고 체계적으로 보강되어야 한다. 장애의 특성과 정도에 따라 각각의 욕구는 천차만별이며 전문적인 시설이 갖춰진 곳에서만 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달장애인의 평생교육은 현재 그 인프라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선택지를 넓히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평생교육센터는 앞으로 더 확충되어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막대한 예산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왜냐면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갈아엎으려면 수고가 많이 들지만 새롭게 만들어가면 되기 때문에 아직 희망이 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9년 남았다. 9년 뒤 미래사회에선 엄마인 내가 평생교육을 받고 싶을 때 마음껏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아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장애’가 교육의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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