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아시안게임 여자배구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경기가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배구장에서 열렸다. 차해원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 도대체 무슨 일이?
2018 국제배구협회(FIVB) 세계배구선수권대회(9월 29~10월4일 ·일본 고베) 참패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여자 배구대표팀이 성추문에 휩싸였다. 대회를 앞두고 열린 합숙훈련에서 코칭스태프 내에서 성추문이 터졌고 이에 따라 해당 코치가 전격 교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성추문에 대한 진실은 내밀한 조사가 필요한 사항이라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겠지만 국가대표의 요람인 진천선수촌에서, 그것도 대표팀 지도자가 여성 스태프를 상대로 성추문을 일으켰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 출국에 앞서 코치가 전격 교체된 것은 대한배구협회(회장 오한남)도 이 사실을 인지했음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성추문 사건은 단순히 배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대표 선수의 훈련과 관리·감독을 책임져야 할 대한체육회 시스템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어 사안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 요람인 진천선수촌에서 성추문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한국 스포츠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중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재근 진천선수촌장은 스포츠서울의 사실 확인 요청에 “그런 사실이 보고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현재까지의 정황을 종합해보면 여자 배구대표팀 A코치가 여성 트레이너와 선수촌 숙소에서 함께 술을 마신 뒤 성추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여성 트레이너는 서울에 있는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진천으로 급히 내려온 남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서울로 상경했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다. 해당 코치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성추행 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실은 다음날 대표팀 선수단에도 퍼져 나갔다. 큰 대회를 앞둔 대표팀 분위기는 급락했고 여자배구 대표팀은 그야말로 어수선한 상태에서 세계선수권대회를 치른 것으로 확인됐다.
2018 세계배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여자배구 대표팀은 1승4패로 예선 탈락하며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1974년 이후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본선 1라운드 탈락이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든 여자 배구대표팀에 쏟아진 비난은 거세고 매서웠다. 더욱이 ‘배구 여제’ 김연경(30·터키 엑자시바시)까지 출전한 터라 예선 탈락이라는 결과는 팬들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매스컴에선 감독의 전략 부재와 계획성없는 대표팀 선발과 운영에 대해 강도높이 비판했다. 이번 실패를 ‘고베 참사’로 표현하며 배구계에 자성과 성찰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이유외에 어처구니 없는 추악한 스캔들이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수단 분위기를 흐트러뜨리고 사기를 꺾을 수밖에 없었던 성추문이 대회 직전에 터졌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확대될 조짐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향후 대표팀 운영과 협회 행정에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여자 배구대표팀의 몰락은 어쩌면 예고된 사태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사상 최초로 전임 감독제를 도입했지만 감독 선임 과정부터 마찰음을 노출했고 우여곡절끝에 선임된 차해원 감독과 협회 수뇌부의 갈등은 이번 사태를 불러 일으킨 보이지 않는 원인이 됐다고 배구계는 바라보고 있다. 여자 배구계는 특정파벌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상존했다. 이번 사태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성추문이 파벌싸움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졌다면 그건 교활하기 그지없는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번 사태를 결과로서 예단하기 보다는 균형잡인 접근과 면밀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대한배구협회 오한남 회장은 10일 차해원 감독을 면담한 뒤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차 감독의 자진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차 감독은 그동안 자신은 전임감독이기 때문에 임기가 보장돼야 한다며 사퇴를 거부해왔다는 후문이다. 특히 그는 문제를 일으킨 코치는 자신이 원했던 코치가 아닌 만큼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서 치열한 파벌 갈등의 단면을 드러내보이기도 했다. 차 감독은 결국 이날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협회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협회는 “아직 최종 수리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혀 묘한 여운을 남겼다.
성추문과 골깊은 파벌싸움으로 여자배구는 엉망진창이 됐다. ‘고베 참사’로 추락한 여자배구 대표팀의 부끄러운 자화상에 팬들의 마음이 하나 둘씩 떠나가고 있다. 배구계의 슬픈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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