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는 국회가 국민 의사를 대표해 국정을 감독하고 조사하는 일이다. 그러나 국감 첫날인 10일, 국회는 국정이 아닌 엉뚱한 문제들만 화제에 올렸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왼쪽부터), 김명수 대법원장,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문병희·남용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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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1일 차, 보좌진 준비 '무색' 의원들 소모적 논쟁만
[더팩트ㅣ국회=임현경 인턴기자] 마침내 10일 오전 10시 국정감사의 막이 올랐다.
이날 법제사법·정무·기획재정·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외교통일·국방·행정안전·문화체육관광·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보건복지·환경노동·국토교통 등 13개 위원회가 동시다발적으로 국회 또는 대상 기관에서 국감을 시행했다.
국정'감사(監査)'는 말 그대로, 국회가 국정 전반을 감독·조사하는 일이다. 국회는 입법 기관이기 이전에 대의제의 상징 기관으로서 국정감사를 실시하며 국민의 의사를 대표한다.
국감은 국회가 빛을 발할 수 있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다. 이 때문에 세상에 보탬이 되는, 그러면서도 참신하고 재치있는 '의원의 질문'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보좌진들은 국감을 두고 '정기국회의 꽃'이라 부른다. 그러나 국감은 첫날부터 국정과 거리가 먼 소모적인 논쟁으로 귀결되며 보는 이에게 실망을 안겼다. 20일간 화려하게 피어있어야 할 꽃은 개화 하루 만에 꺾인 듯 보였다.
'국회의 꽃' 국정감사를 준비한 보좌진의 노력이 자료 곳곳에서 엿보였다. 국정감사를 위해 각 의원실에서 보내온 보도자료(위)와 손금주 무소속 의원실에서 제작한 자료집. /임현경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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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좌진의 피와 땀, 그 많던 자료는 다 어디로 갔을까
앞서 각 의원실에서는 국감을 위해 관계 당국에 사전 요청해 받은 자료를 속속 발표했다. 취재진이 아무리 공문을 보내고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해봐도 세월아 네월아 오지 않던, 사회 여러 분야에 걸친 민감하고 중요한 자료들이었다. 의원들은 이 자료들을 근거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과거·현재·미래의 국정 운영을 두루 살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국감이 시작된 뒤에는 국회 곳곳에 깃든 보좌진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진이 머무는 정론관 앞에는 정책·통계·대안 등 국정감사를 위해 정갈하게 준비된 자료들이 즐비했다. 단순 보도자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방대한 자료 조사와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손금주 무소속 의원실에서 펴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자료집은 알찬 구성에 세련된 디자인까지 더해져 눈길을 끌었다.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은' 보좌진의 정성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이날 국회 보좌진과 관계 기관 공무원들은 실시간으로 감사를 살피고 도왔지만, 정작 감사는 일차원적인 질답에 그쳤다. 의원석 바로 뒤에 앉아 의원들을 돕는 보좌진(위)과 국회 로비에 임시 사무실을 차린 공무원들. /임현경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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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진의 활약은 국감장 안에서도 계속됐다. 대부분 몇 초 이내로 넘겨질 PT 자료였지만, 각종 그래픽과 사진을 첨부해 소속 의원을 돋보이게 했다. 보좌진의 엉덩이가 감사 내내 들썩거렸다.
그들은 의원석 뒤 보좌진석에 앉아 즉각적인 상황에 대처하고 실시간 여론 반응을 살폈다.흐름에 따라 부족한 자료는 새로 보완해 건넸고, 발언 중 수정 사항이나 대처 방안을 전하기도 했다. 또, 해당 의원이 질문할 때면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관계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국감장 밖에는 하룻밤 사이 사무실이 차려졌다. 각 기관에서 국감장과 가장 가까운 로비와 복도에 '출장'을 온 이들은 정장을 차려입은 채 업무를 수행했다. 앉을 자리가 없어 콘센트 근처 바닥에 주저앉거나 복도에 서 있기도 했다. 여행용 가방 가득 인쇄 자료를 들고 온 사람도 드물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휴대폰, 모니터 등으로 감사 상황을 살피며 대응책과 관련 자료를 마련했다. 그들이 가져온 수십 대의 노트북과 휴대용 인쇄기가 쉴 새 없이 작동하며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의원들은 보좌진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사회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와 대안 보다는 '자극적인 순간'을 위한 소품을 원하는 듯 보였다.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 도중 맷돌을 꺼냈다.
박 의원은 "보좌진에게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을 상징할 수 있는 걸 준비하라고 했다"며 맷돌 손잡이인 '어처구니'를 빼들었다. 그는 "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어 상징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김진태 의원은 이날 벵갈 고양이를 감사장에 데려와 화제의 중심에 섰다. 김 의원이 벵갈 고양이를 바닥에 두고서 질의를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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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광경에 가려진 '익숙한' 국회
이날 국감에서는 이색적인 증인과 풍경만이 화제에 오르며 '튀어야 산다'는 명제를 입증했다.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대전동물원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당한 퓨마 뽀롱이 문제를 논하기 위해, 새끼 벵갈 고양이를 감사장에 들여왔다.
김 의원은 "남북회담회담을 하는데 눈치도 없는 퓨마가 출몰해 인터넷 실검 1위를 계속 장식했고,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소집됐다"며 '남북정상회담에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마취총을 사용하지 않고 빨리 사살한 것이 아니냐'는 '청와대 배후설'을 제기했다. 그는 "퓨마가 불과 3시간 만에 사살되고 NSC 소집은 1시간 35분 만에 열렸지만, 지난해 5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는 2시간 33분 만에 열렸다"며 "북한에서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보다 훨씬 더 민첩하게 청와대가 움직였다"고 주장했다.
겁에 질린 고양이는 국회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으나, 김 의원의 발언은 익숙한 모습이었다. 김 의원은 이날 '퓨마가 얼마나 불쌍한지'를 알리기 위해 고양이를 직접 불쌍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 반면, NSC 소집과 가설에 대한 실증적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이에 대해 "NSC를 소집한 바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제가 NSC 멤버인데, 사실이 아니다"며 "처음에 마취총을 쐈지만, 사살하지 않았을 때 울타리 밖 인근 주민에 피해를 끼치면 정부를 얼마나 비난할까 하는 것을 더 염려했다"고 밝혔다. 또, "현장 사살은 정부와 동물원 관계자들이 협의해 이뤄진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국감이 시작되고 나서도 평소 국회의 불필요한 정쟁과 이념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국감 출석 여부를 놓고 여야 대치가 계속되자 여상규 위원장(오른쪽)이 정회를 선포하고 있다. /문병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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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 역시 국정과는 무관한 이념 논쟁을 벌였다. 조 의원은 이날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남측 대통령'이라 부르며 "미국 가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평양 가서 남측이라고 하면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 실수도 한두 번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조 의원은 앞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 때 체결된 군사협약을 두고 '여적죄'라 주장했다. 조 의원은 "대통령이 헌법에 명시된 영토보존 의무와 국가보위 의무를 위반했다"며 "장관은 문 대통령의 여적죄를 조사할 것이냐"고 물었다. 김 장관이 이에 답하려 했지만, 조 의원은 "쓰레기 같은 언론들이 (기사) 한 줄도 안 내주지만"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통상적으로 통일과 관련해 한민족을 강조하기 위해 남측·북측 용어를 써왔다. 노태우나 전두환 정부에서도 다 그렇게 해왔다"며 "그걸 가지고 국감장에서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발언을 하느냐"고 반박했다. 이에 회의장에는 5분 이상 고성이 오갔고 인재근 위원장의 제지 끝에 가까스로 국감을 진행할 수 있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출석을 두고 기 싸움을 하다 파행을 맞았다. 한국당 의원들은 김 대법원장이 춘천지방법원장 시절 공보관실 운영비를 현금으로 받은 것을 두고 김 대법원장이 직접 출석해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당 의원들은 그간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현직 대법원장 대신 법원행정처장을 출석시켜온 만큼, 김 대법원장이 직접 답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여상규 위원장이 "김 대법원장이 인사 말씀 때 관련 사항에 답변해 달라"며 중재안을 냈지만, 한국당 의원들은 아예 회의장을 나가버리는 '파행'을 빚었다. 결국 법사위 국감은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정회, 한참의 실랑이 끝에야 재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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