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민주주의 시대로]
리퀴드 데모크라시를 지향하는 비영리 단체 테모크라시 어스의 공동 설립자 허브 스테판이 9일 미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진행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이동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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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데모크라시 어스’는 ‘리퀴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선두주자로 꼽힌다. 2015년 설립된 이 단체는 블록체인 기반 투표 시스템을 오픈 소스로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데모크라시 어스 공동 설립자인 허브 스테판은 9일 미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지금의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며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기술을 제공하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말했다.
-왜 블록체인이고, 리퀴드 민주주의여야 하는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투표는 기본권 중 기본권이다. 그런데 너무 경직돼 있다. 한번 대표자를 뽑으면 4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주권자는 민주주의의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대의민주주의 구조적 한계인데, 해법은 간단하다. 주권자의 의사를 직접 물으면 된다. 정치적 유동성을 키우는 거다. 지금까지는 물리적 한계로 불가능했다면, 지금은 블록체인 기술로 가능해졌다. 우리는 21세기를 사는데, 선거를 비롯한 사회제도는 19세기 그대로다. 그마저도 15세기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상하지 않나.”
-지금도 모바일 투표시스템이 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중앙집중화 한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모바일 투표는 수정과 삭제가 가능하다. ‘빅브라더’가 데이터를 조작하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블록체인 투표는 다르다. 수정과 삭제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시스템은 투명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투표 과정을 감시하고, 결과를 집계하고 또 검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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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은 실리콘밸리에서 잔뼈가 굵었다. 1998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온라인 상거래 기업 인터샵의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성공을 맛봤고, 이후 IBMㆍGE 등 굵직한 기업도 거쳤다. 그가 삶의 행로를 급격하게 바꾸게 된 건 2012년 아르헨티나 출신 사회운동가 산티아고 시리, 피아 만치니와 함께 ‘데모크라시OS’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다.
-정치제도를 바꾸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데모크라시OS는 상시적 투표로 시민의 뜻을 모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아르헨티나는 유독 정치부패 문제가 심각하다. 2013년 직접 ‘네트워크당(Partido de La Red)’을 만들어 지방선거에 참여해 1% 득표율을 기록하자 정치적 탄압이 시작됐다. 박해를 피해 시리와 만치니가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데모크라시 어스를 공동 설립하게 됐다.”
-데모크라시 어스가 꿈꾸는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인가.
“2016년 콜롬비아 정부가 최대 반군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52년간의 내전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블록체인 투표를 통해 600만명에 달하는 피난민이 평화협정 체결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노르웨이 난민위원회를 도와 난민들을 돕는 일도 하고 있다. 신분을 보증해 줄 정부가 없어 투명인간이 된 난민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신분을 부여하는 일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다면 국경의 장벽에 갇히지 않는 자기 주권의 시대를 열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글ㆍ사진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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