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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장하준 “앞으로 3~4년 적자 보더라도 복지지출 과감히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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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인터뷰

“세금은 부담 아닌 회비, 복지서비스 공동구매하는 것”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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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 그가 본격적으로 한국경제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한 건 외환위기 직후의 일이다. 장 교수의 발언은 입맛에 따라 숱하게 부풀려지거나 일방적으로 매도되기 일쑤였다. 2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가 몇차례 강연에서 풀어놓은 이야기도 적잖은 화제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소득주도성장 정책기조에 미묘한 변화 분위기가 감지되는데다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논란이 일던 와중이라 파장이 더 컸다.

그의 주된 연구 분야는 한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경험 속에서 산업정책의 역할. 엄밀히 따지자면, 한국 경제의 ‘현재’와는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차이가 난다. 짧은 시간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뤄낸 한국 경제의 과거를 복기하는 차원에선 유용할 지 모르나, 분석(현재)과 전망(미래)을 위한 소중한 시사점을 곧장 끌어내는데는 한계를 지닌다는 반론도 나올 법하다. 그는 과연 지나간 시절의 레퍼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만 있는 걸까.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장 교수를 만났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는 한국 사회에 던진 그의 문제제기를 비판적으로 되짚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장 교수는 이틀날인 24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새경제규칙포럼(준),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가 공동주관해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초청포럼에서도 산업정책의 부활과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한 복지지출의 확대를 거듭 강조했다.

“아무리 재벌 총수 집안이 밉더라도…”

- 오늘 이야기는 크게 세묶음 정도로 나눠봤으면 한다. 첫째는, 지금 우리가 어디 서 있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일이다. 그 다음은 한국 경제 현주소에 대한 정확한 진단,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장하준식 경제민주화 2.0 버전’이랄까, 2018년 시점에서 업데이트된 처방이 있다면 그게 뭔지 궁금하다. 우선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2018년 한국 경제를 규정하는 외적 조건은 장 교수가 학문적 성과를 쌓던 시기는 물론이고,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 논쟁에 끼어든 20년 전과도 완전히 다르다.

“물론이다. 옛날 이야기에 매달려선 안 된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언제나 정부주도의 산업정책 연장선에 놓여 있다. 과거 나의 발언 중 가장 논란이 됐던 재벌개혁 문제와 관련해서도 내 생각은 재벌 문제 역시 전반적인 산업정책 틀에서 접근하자는 거였다. 어찌하다 보니 전공은 산업정책인데, 기업정책이나 금융정책 온갖 얘기를 다 했다.

국적 자본 보호하자고 했다가 재벌 앞잡이로 몰렸고, 국민연금 역할 강조하니 연금사회주의자란 비판도 따라왔다. 내 입장에선 답답해서 자꾸 같은 얘기를 이렇게 해봤다가 저렇게 해봤다가 한 거다.”

내 관심은 정부주도 산업정책
재벌문제 산업정책 틀로 접근해야
아무리 재벌총수 집안 밉다고
해외 금융자본에 넘기는 건 잘못
미국도 공적자금 투입
금융위기 GM·크라이슬러 살려


경제민주화 핵심은 보편적 복지국가
복지국가 제대로 하려면 40년 걸려
앞으로 3, 4년 적자 보더라도
복지지출 과감히 늘려야
노동자간 격차 줄이는 게 경제민주화


세금, 문제는 가성비
정부 서비스 질이 높다면
흔쾌히 세금 더 낼 수 있다
복지국가 만들어 비용 낮추게
기본적인 접근법 바꿔야


- 오락가락한다는 인상도 줬다.

“쟤는 왜 이 얘기 했다 저 얘기했다 한다고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난 수단은 부차적 문제라고 본다. 아무리 재벌 총수 집안이 밉더라도 해외 금융자본에 넘긴다는 건 잘못됐다 생각한다.”

“WTO야말로 게으른 공무원의 절친”

- 근본적 질문부터 하겠다. 줄곧 산업정책을 강조해왔는데,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 과연 지금 시대에 한 국가가 산업정책을 펴는 게 가능하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지 않나.

“과거보다 어려워진 건 분명하다. WTO 체제에선 한 나라의 정부가 꺼내들 수 있는 카드가 많이 줄어들었다. 과거엔 외국인 투자 받을 때 국내 부품이나 원료 조달비율을 제한조건으로 붙일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불가능하다. 기업들의 활동무대가 글로벌해지면서 통제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다른 나라라고 산업정책 안 하는 거 아니다. 미국도 냉전 시기에 국방 연구 등에 엄청난 투자했다. 사실상 공짜 기술을 기업들에게 나눠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정부주도적이었다 하지만, 연구개발(R&D)만 놓고 보면 미국이 훨씬 더 국가주도적이었다.”

- 그건 과거의 일이고.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터지고 나서 어떻게 했나. 지엠(GM)과 크라이슬러에 공적자금 투입해 살려놨잖아.”



- 실상은 우리나라도 산업정책 쓸 여지가 많다는 뜻인가?

“WTO야말로 게으른 공무원의 절친이다. 자기가 하기 싫으면 금지돼 있다고 주장하니까. 적극적으로 파헤쳐서 쓸 수 있는 거 없는 거 따져봐야 하는데 마냥 손 놓고 있다.”

- 우리나라도 이제 민선7기 지방자치정부가 출범했다. 산업정책과 관련해 지방정부에게 조언을 한다면.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지방정부가 주로 산업정책의 열쇠를 쥐고 있다. 지방정부가 비영리은행이나 조합 같은 걸 동원해 기업에 금융을 제공해 준다거나 연구소를 만들고 기술학교나 노동자훈련기관을 운영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일률적으로 보지 말라는 거다. 산업정책이란 건 특수성 때문에 존재하는 정책이다. 지금도 하지 않으려니 안 보일 뿐 할 게 얼마나 많은데.”

- 언제 기회가 되면 친절하게 정리해주는 게 좋지 않나.

“글쎄. 솔직히 지쳤다. 얘기해서 하나라도 들어주는 게 있어야지….”

이 대목에서 장 교수는 불쑥 ‘반성’을 한다고 했다. “나 역시도 중국이 이 정도로 빠르게 쫓아올지 과소평가했다.” 그는 “맨날 중국이 쫓아온다, 샌드위치 신세다 타령만 했지, 기업이나 정부가 한 게 뭐가 있냐”며 “지금 고용대란이라고 떠들지만 정작 공격하는 사람이나 방어하는 사람이나 기껏해야 경기를 탓하거나 최저임금 탓만 하고 있는 게 슬픈 현실”이라 꼬집었다.

“몇 년은 적자재정 갈 수도 있다”

- 자연스레 한국 경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사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의 여건은 아주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 나쁘다는 데야 모두들 동의했고 경기사이클상으로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런데도 출범 뒤 1년을 뒤돌아보면 경제 분야에선 딱히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 1년을 평가한다면.

“이유가 어쨌건간에 너무 소극적인 것 같다. 백번 양보해 과거 개발독재나 군부독재 시절의 잔재랍시고 산업정책이 정 싫으면 복지국가라도 확실히 밀어붙여야 할텐데. 경제발전 하는데 30,40년 걸렸듯이 복지국가 제대로 하는데도 그 정도 시간 걸린다. 정부가 지금 해야할 일은 담론구조 바꿔놓는거다. 우리 생각엔 해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을 1%포인트씩 올리겠다, 뭐 이런 식으로.”

- 보다 공세적으로 가야 한다?

“세금 개념부터 바꿔야지. 왜 조세부담이라고 말하나. 복지국가는 사회서비스를 공동구매하자는 거다. 단기적으로 몇 년은 적자재정 갈 수도 있다. 돈이 없다고 병이 났는데 병원 안가는 것보다는, 돈을 꿔서라도 병을 고친 뒤에 열심히 일해 갚는 게 맞는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한국 정부보고 돈 더 쓰라고 충고하는 마당에, 앞으로 3,4년 적자 보다라도 복지지출 과감히 늘려 국민 생활 안정시키겠다 적극적으로 나섰어야지.”



-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은 어떻게 봐야 하나.

“우리나라는 생계형 자영업자 비중 너무 높다. 유럽 복지국가들 중에서도 자영업자 비중 높은 나라 많다. 재미있는 게 스웨덴이 창업 성공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힌다. 스웨덴 사람들이 특별히 똑똑해서? 천만에. 생계형 창업을 안 해도 되니까 될만한 사람만 뛰어드는거지. 자영업자를 포함해 광의의 노동자간에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복지지출을 늘려야 한다. 그게 경제민주화다.”



스웨덴에 로보트가 유독 많은 이유

- 많은 이야기 나눴다. 결론은 해법이다. 과거에 견줘 업데이트된 장하준식 해법은 과연 뭔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재벌 얘기에서 좀 더 나아가자. 진정한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시민권에 기반한 보편적 복지국가다.”

- 결국 세금 더 내자는 얘기?

“핵심은 가성비다. 세금이 높아도 정부 서비스의 질이 높다면, 그래서 행복한 사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흔쾌히 세금 더 낼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세금은 부담이 아니다. 회비다. 복지국가 만들어 공동구매함으로써 복지서비스 비용 낮추는 거다. 돈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쓰는 방법을 바꾸는 것. 기본적인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 로보트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가 스웨덴이다. 이게 뭘 뜻하나? 노동자들이 실업을 좋아할 리 만무하지만, 복지망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목숨 걸고 저항도 안한다. 구조조정하기도 쉽고 경제성장에도 도움 된다. 왜 복지국가를 해야 하는지 개념 자체를 바꿔야지.”



- 진정한 의미의 복지국가 이루기 위해서도 여전히 대타협 필요하다?

“그렇다. 먼저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정해야 한다. 수단은 타협할 수 있다. 그런데 원칙 차원에서 대립하니까 도무지 타협이 안돼.”

- 냉정하게 말해 지금 재벌이 사회에 뭘 줄 수 있나?

“구체적인 걸 받아내야지. 지금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이 주요기업의 주요 주주다. 경영권 보호해줄테니 너희는 앞으로 몇 년간 어떻게 투자하겠다, 아주 구체적으로 딜한다거나 해야겠지. 가령 삼성특별법 같은 거 만들어서 이재용이 상속받는 주식을 국민연금에 신탁한다면 상속세 낮춰주겠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게 안하면 그룹 해체될 수도 있으니.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2년 이상 주식 가지고 있는 투자자들한데 가중의결권 주기로 한 것도 눈여겨 볼 필요 있다.”

- 그 문제는 현실성에 의문이 든다. 주주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합리적 해법을 찾자는 고민의 산물인 건 알겠으나, 우리나라 경우엔 일반투자자들이 대부분 단기투자자다. 기관투자자가 더 장기투자에 나서는데 이들이야말로 재벌의 영향력 아래 노출된 거 아니냐.

“개인 투자자 입장에선 단기투자자로서의 행동이 더 유리하겠지. 하지만 전체적으론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오히려 기업이 노동자나 협력업체를 더 쥐어짜게 만들잖아. 개인들한테만 책임을 돌리지 않는 묘안을 짜내자는 얘기다.”

- 일종의 인센티브란 의미?

“그렇지. 투표권이 적절하지 않다면 배당금을 더 준다거나. 예컨대 5년 이상 갖고 있다가 팔면 자본이득세를 대폭 감면해준다거나.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총수이건 개미투자자이건 무조건 개인의 희생만 강요할 순 없다. 양보하면 우리도 얻는 게 있겠구나 느끼게 해줘야지. 그게 바로 타협이다.”

“수익률 떨어지면 재정으로 메꿔줄 수도”

- 국민연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물어보겠다. 의도는 좋다 해도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개입한다는 게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당장 수익률이 떨어진다거나.

“난 분명하게 말한다. 연기금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걸 원칙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국민들의 노후생활을 고삐 풀린 자본시장에 묶어놓음으로써 결국 온 국민을 자신들의 이웃을 착취하는 악랄한 자본가로 만드는 거 아니냐. 미국 캘리포니아 교직원 연금(캘퍼스)를 봐라. 캘리포니아 교사라면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인데, 다른 나라에 투자해 못할 짓 하고 있잖아.”

- 원칙적으론 옳지 않으나, 현실적 해법을 찾자?

“그렇지. 국민의 돈이니 최대한 활용을 하자는 얘기지. 이 점에서 연기금사회주의의 운운하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논리 따라 행동하는 걸 두고 사회주의라니.”

- 현실적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텐데.

“수익률이 떨어진다면 재정으로 어느 정도 메워주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정부가 산업정책으로 해야할 일을 국민연금이 대신 하는거니까. 노후자금 보장과 국민경제에 기여라는 두가지 분명한 역할을 제시한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구체적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수익률만 생각해 연금 조금 더 받을 진 몰라도….”

- 극단적으로 보자면, 연금받을 사람들이 미리 직장에서 쫓겨나는 일도 생기겠지.

“목표가 상충될 때 교통정리하라고 정부가 존재하는거 아니냐.”

진행·정리/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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