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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진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황새는 멸종위기종 1급에 천연기념물 199호로 지정된 귀한 새다. 매년 10월 말쯤 러시아에서 날아와 서해 천수만 간척지 등에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 다시 번식지로 떠난다.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살았던 황새가 자취를 감춘 것은 반세기 전이다. 1971년 충북 음성을 마지막으로 야생에서 멸종된 것이다.
텃새로 살았던 황새의 빈자리를 채운 건 러시아에서 나고 자란 황새였다. 1992년 늦가을 충남 서산 천수만 간척지에 겨울철새 황새가 내려앉았다. 국내에서 사라진 지 20년 만이다. 그 뒤 해마다 겨울철이면 황새 10~20여 마리가 천수만을 중심으로 서해안 들녘과 갯벌을 찾아오고 있다.
그런데 4년 전부터는 겨울진객 황새가 봄철에 번식지로 떠난 뒤에도 충남 예산을 중심으로 서해안을 따라 호남과 경기지역에서 황새를 볼 수 있다. 하천과 논, 갯벌에서 미꾸라지와 개구리 등을 잡아먹으며 사시사철 살고 있다. 한국교원대와 충남 예산군이 사라진 황새를 복원하기 위해 2015년 9월 2일 8마리를 야생으로 날려 보낸 것을 시작으로 올 초까지 3년간 11마리를 추가로 방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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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돌아간 황새들에게 남한 서해안지역은 서식장소로 좁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황새 7마리가 북한을 자유롭게 다녀온 것으로 위치추적 결과 확인됐다. 날개 달린 새가 어디든 날아가지 못할까 만은 허리 잘린 분단국의 반쪽 북한이어서 더 반가웠다. 북한으로 첫 비행에 나선 황새는 A30개체다. 2013년 교원대에서 태어났고, 2015년 9월2일 예산군에서 첫 야생방사 때 자연으로 돌아간 새다.
이 황새는 6개월 뒤인 2016년 3월 14일부터 23일까지 열흘간 북한 황해도 일대를 다녀왔다. 안타깝게도 A30황새는 그해 10월 1일 예산군에서 전신주에 내려앉다가 감전돼 죽었다. 뜻밖의 사고는 안전한 서식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고, 예산군 황새공원일대 전신주에 절연 장치를 보강하는 대책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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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0 황새가 길을 트자 이듬해인 2017년부터 최근까지 6마리의 황새들이 줄줄이 북한으로 활발하게 여행을 오가고 있다. 2년 연속 북한을 다녀온 황새도 4마리다. 이 가운데 A83개체는 지난해 9월 1일 황해도 해주를 거쳐 평양 하늘을 날아 중국 단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2주가량 머문 뒤 평양 위쪽인 평안남도 숙천군으로 돌아왔고, 다시 남한으로 내려왔다. 황새들은 서해 쪽으로만 가는 게 아니다. 동해에 있는 강원도 원산지역도 황새가 살아갈 서식환경이 갖춰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7월 26일 황해도 연안군 바닷가로 올라간 A85황새가 1주일 뒤인 8월 3일 강원도 원산으로 이동해 3주간 머물다 돌아왔다. 이 황새는 원산과 문천 사이 농경지에서 주로 먹이활동을 했다. 단둥까지 갔다 온 A83과 원산을 다녀온 A85는 지난해 봄 한 둥지에서 태어난 남매 사이다. A83은 수컷, A85는 암컷으로 방사개체 부모로부터 예산군 들녘 야생둥지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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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는 다리에 인식표를 달고, 등에는 발신기를 붙인 채 야생으로 돌아간다. 자연 속에서 잘 살아가는지, 또 어느 지역으로 이동을 하는지 관찰하기 위해서다. 발신기는 위성이 아닌 이동통신사 기지국 위치정보를 활용하는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위성의 경우 황새위치 오차범위가 2km가량 되지만 기지국을 활용할 경우 20m 이내일 만큼 정확하다고 한다. 황새가 남한에서 북한으로 이동할 경우 위치 신호가 일시적으로 끊기고 남한으로 돌아온 뒤 저장된 기록이 재생돼 황새의 이동 경로를 확인한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북한을 오가며 우리나라에서 텃새로 자리를 잡고 있는 황새들의 뿌리도 사실은 러시아다. 한국교원대 박시룡 교수 연구팀이 멸종된 황새를 복원하기 위해 1996년 러시아에서 황새 한 쌍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박 교수팀은 황새 인공번식에 성공한 뒤 충남 예산군의 황새공원 사업에 참여해 야생방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야생에 방사한 황새는 19마리, 이 가운데 5마리는 감전사 등 사고로 폐사해 현재 14마리가 생존해 있다. 자연으로 돌아간 이들 황새가 야생에서 부화한 새끼는 4년간 12마리다. 안타깝게도 1마리는 폐사해 현재 11마리가 살아있다. 방사된 부모개체를 포함해 텃새로 살아가는 황새는 25마리에 이른다. 서식지는 예산을 중심으로 호남에서 경기까지 서해안 벨트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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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된 황새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한지 22년, 그 사이 박 교수는 이미 정년퇴임을 했지만, 교원대 황새연구팀의 열정은 계속 이어져 결실을 맺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은 멀고 이제 시작이라고 연구팀은 말한다. 충청, 호남과 서해안뿐 아니라 영남과 영동, 남해와 동해까지 황새가 골고루 터를 잡고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방사지역을 확대하고 서식환경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황새들은 발목 가량 잠기는 얕은 물 속이나 습지에서 먹이활동을 한다. 주로 어류를 많이 잡아먹지만 파충류, 양서류, 설치류까지 먹이자원은 다양하다. 농약 대신 친환경 농사를 지어 황새 먹이가 부족하지 않게 해야 한다. 또 전신주 등에 절연 장치를 갖추고 전선에 부딪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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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가 2년 전부터 길을 뚫고 남과 북을 왕래해서인지 꽁꽁 얼어붙었던 동토의 땅 한반도에도 봄이 오고 있다. 남북 평화와 번영, 더 나아가 통일의 길을 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황새가 북한에 더 자주 날아가 더 오래 머물고, 아예 새끼를 낳아 살아갈 날도 기대해본다.
[이용식 기자 ys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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